1편. 슬픔이 찐 몸

나를 미워하지 않기까지

by 유옥

©pinterst


그 애가 세상을 떠난 건 생일 하루 전이었다. 축하 메시지를 적던 손끝에 장례식장을 알리는 부고문자가 닿았다. 익숙한 이름 세 글자에,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소리를 나는 귀로 듣지 않고 온몸으로느꼈다. 계절은 막 봄의 문턱에 서 있었다.


햇살이 창틀을 타고 방 안까지 스며들었지만, 나는 그 따스함을 단 한 줌도 느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내 안의 계절은 겨울에 멈춰버렸다. 쌓이지도 녹지도 않는 눈이 내 몸 어딘가에 붙어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몸은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더 이상 나에게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배고픔도, 피로도, 졸음도 사라졌다. 마치 감각이 꺼진 세계에 홀로 남겨진 듯했다.


오직 먹고 있다는 감각만이 나를 현실에 붙들어 두었다. 그건 식사라기보다는 일종의 의식 같았다. 입안 가득 무언가를 채우는 일만이, 그 막막한 시간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그 뒤를 따라오는 건 늘 죄책감뿐이었다.


포만감에 부풀어 오른 배를 안고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차가운 타일 바닥의 냉기는 얇은 옷을 뚫고 피부까지 스며들었고, 그 감촉은 내 몸에 남은 마지막 체온마저 앗아가는 듯했다. 구부정한 자세로 허리를 숙인 채, 조용히 두 손가락을 목구멍 깊숙이 밀어 넣었다.


입안 가득 고인 타액과 위 내용물이 좁은 식도를 거꾸로 흘러나왔다. 위산이 식도 벽을 긁고, 목구멍을 할퀴며 지나가자 타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그제야 나는 생의 감각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발 끝에 퍼진 미세혈관까지 타고 흐르는 선명한 고통에 살아 있음을 감지했고, 목젖까지 치미는 음식물은 마치 억눌렀던 감정을 토해내는 것 같았다.


©pinterst


바닥엔 토해낸 것들과 함께 어지럽게 흩어진 머리카락, 젖은 티셔츠 소매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욕조에 반쯤 기댄 채 숨을 몰아쉬며 혀끝으로 입가를 여러 번 닦았다.


혀에 감도는 쓴맛은 위산의 맛이자, 나 자신에 대한 혐오의 잔향이었다.


폭식.

구토.

무기력 다시 폭식.


이 순환은 조용했지만 나를 내면부터 철저히 파괴해 갔다. 몸은 점점 무거워졌고, 옷장을 열 때마다 옷을 입기 보다는 죄책감을 걸치는 느낌이었다. 바지는 허벅지 에서 멈췄고, 셔츠는 단추를 끝까지 잠그지 못했다.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은 매일 조금씩 달랐다. 익숙한 얼굴 같으면서도 낯선, 분명히 내 몸인데 엉뚱한 껍 질을 뒤집어쓴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점차 '나'를 놓아버리기 시작했다.


외출은 미뤄졌고, 거울은 더는 친숙한 물건이 아니었다. SNS 속 사람들의 몸은 조각처럼 매끈하고 정제되어 있었고, 나는 매일 그 그림자에 눌려갔다. 반짝이는 화면 속 그들은 슬픔과 무관한 사람들처럼 보였고, 나는 그 옆에서 점점 투명해져 갔다.


그때 들려온 목소리.


"그 몸으로 밖에 나가서 뭐 하니, 사람들이 보면 놀라."


엄마는 무심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가장 나를 사랑해 줄 거라 믿었던 입술에서 가장 날카로운 말이 튀어 나왔다. 그 말은 단순한 외모 지적을 넘어 내가 망가진 존재임을 증명하는 낙인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깊이 고장 났다. 사랑이라 믿었던 것이 얼마나 손 쉽게 폭력으로 변할 수 있는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존중이 언제든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살이 쪘지만, 여전히 나는 나였다. 내 안에는 여전히 감정이 살아 있었고, 그리움과 기억은 살이 차올라도 덮이지 않았다.


때때로, 사람들은 내 몸에 대고 너무도 쉽게 살이 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쪄 있었던 건 '슬픔'이었다.


나는 떠난 이를 온전히 애도하지 못한 채, 그 애를 가슴 한가운데 붙잡고 있었다. 생일 하루 전날, 홀로 세상을 떠난 그 친구를. 그리움과 죄책감, 분노와 무기력. 감당할 수 없었던 감정들의 무게가 내 몸 어 딘가에 고스란히 눌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스스로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그저 홀로, 너무 조용히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스스로를 위해 용기를 내어 요가 매트 위에 섰지만, 내 몸은 굳어 있었고 호흡은 여전히 매우 짧았다.


바로 그때 깨달았다. 몸과 마음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둘을 너무 오래 떨어뜨려 놓고 살아왔다는 것을.

요가원의 도반들과 나.

요가는 나에게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방법이 아니 라, 고통과 공존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지금도 아사나의 피크 포즈를 하다 보면, 가끔 내 몸이 싫어 지는 날이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조심스레 내면 을 들여다본다.


"지금의 이 감정은 정말 나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은 마음일까?"


나는 천천히 배워가고 있다. 단순히 가벼워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무너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내면의 단단함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나도 사랑하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 변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존재 그 자체로 존중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보다도, 내가 더이상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비록 엄마는 내 슬픔을 이해하 지 못하더라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그 마음을 공감해 줄 수 있기를.


아니, 제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 편집 | 유옥(瑜)​
@0k.Y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