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그리고 체중계에 갇힌 나
그날도 한참을 변기와 씨름하고 있었다. 목에서 비릿한 피맛이 올라오자, 문득 아래로 처박았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퉁퉁 부은 채 낯설었고, 속은 텅 비어 있는데 몸은 납처럼 무거웠다. 나는 생각했다.
‘나 지금,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곱씹을수록 알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단지 방아쇠였다. 그 전부터 내 안에는 곪아 있던 상처들이 쌓이고 있었고, 그날 이후 그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슬픔과 혼란은 방향 없이 몰려왔고, 나는 그것을 붙잡는 대신 내 몸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내가 유일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몸뿐이라고 믿었다. 입안 가득 음식을 밀어 넣으면서도 스스로를 속였다. ‘아직 통제하고 있어. 이것만 먹고 내일부터는 굶으면 되니까.’ 그렇게 자꾸만 무너졌다. 죄책감은 커졌고, 물 한 모금조차 삼키지 못한 채 극단적인 거식으로 몸을 벌주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물 한 모금도 삼키지 않은 채 거실로 향했다. 잠옷과 속옷을 발치에 벗어둔 채 가지런히 놓여 있는 체중계 앞에 서는 의식. 마치 어제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욕망을 확인하듯, 나는 늘 나신으로 그 위에 올랐다. 발바닥에 닿는 유리판의 차가운 감촉은 곧 내 죄를 고발하는 법정 같았다. 숨을 억지로 멈춘 채 질끈 감은 눈꺼풀을 슬며시 열어 눈금을 응시하는 순간. 그 몇 초가 얼마나 질긴 고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숫자가 멈추는 순간, 내 하루의 성패가 정해졌다.
숫자 하나가 그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전날 저녁 늦게 떠넘긴 국물 한 모금,
친구가 건넨 과자 한 조각.
혹은 약속 자리에서 웃으며 남긴 파스타 반 접시.
모두 체중계 위에서는 변명 없는 증거물로 변했다. 나는 한밤중에도 공연히 깨어나 양치질을 하고, 빈속으로 억지로 뜀박질을 했다.
배가 고픈데도 이를 악물고 잠든 밤. 새벽에 눈을 떴을 때는 물 한 모금조차 내일 붓지는 않을까 마음으로 저울질하다 이내 다시 눈을 감았다.
식탁에 앉아도 음식은 음식이 아니었다. 접시에 놓인 밥알 하나마저 칼로리라는 숫자로 보였으니까.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을 때는 더 괴로웠다. 숟가락을 드는 손끝이 떨렸고, 상대의 시선이 목구멍 속까지 따라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나는 웃으며 “난 괜찮아, 이미 배불러”라고 대답하고 접시를 멀리 밀어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 빈속의 허기와 다 들킨 듯한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와 내 안을 갉아먹었다.
거울 앞에 서면, 눈에 보이는 건 현실이 아니었다. 뼈가 도드라져도 살이 붙어 보였고, 남들이 “너 보기싫게 말랐어”라 말해도 나는 여전히 비대한 그림자만을 보았다.
내 몸은 왜곡된 초상화였고, 나는 늘 그 그림에 붙잡힌듯 살아갔다.
섭식장애는 단순히 ‘먹지 못하는 병’이 아니었다.
먹을까 말까의 갈림길 앞에서 매 순간 심장이 조여 오고, 씹는 횟수를 세며 숫자에 매달리고, 결국 토해내거나 굶어내며 죄책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맛보는 병이었다. 몸의 싸움 같았지만 사실은 마음의 전쟁이었다. 그리고 체중계 위에서 나는 매일 이 전쟁의 패배자였다.
그런데도 나는 체중계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그 위에서만 내가 존재한다고 믿었으니까.
웃음, 목소리, 꿈 같은 건 모두 겉껍질처럼 가볍게 흔들리는 장식에 불과했다. 오직 숫자만이 나를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서 있을수록, 나라는 존재는 점점 희미해졌다.
체중계 위에서는 날카로운 현실과 맞닿아 있었지만, 내려오면 나는 마치 그림자 없는 몸처럼 방황했다. 만약 이 끝도 없는 집착을 내려놓고 숫자가 사라진 세상에서도 , 나는 다시 내 혀끝의 맛과, 손끝의 온기와, 배 속 울렁임을 믿을 수 있을까? 숫자에서 해방된다면, 과연 내가 진정으로 음식과 스스로의 신체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잃어버린 나를 되찾을 수 있을까?
글, 편집 | 유옥(瑜)
@0k.Y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