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아닌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의견
대학생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개별 학습 멘토.
지역아동센터에서 지역 사회와 연계하여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주변에 대학들이 많기에 지역의 자원을 잘 활용한 듯했다. 나는 훈이 자신감을 느끼고 있는 분야인 영어의 교과 예습과 짧은 글을 읽고 느낌과 생각을 나누어보는 정도의 독서 활동을 멘토 선생님께서 함께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말씀드렸다. 센터 선생님에게는 아이에게 이 지원이 조금이라도 더 유익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저는 훈이가 센터 여느 아이들처럼 같이 어울리고, 싸워보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학습보다는 친구에게 다가가는 법이라던지 그런 걸 선생님하고 같이 이야기하면 어떨까 싶기도 해요."
여느 아이들처럼 어울리고, 싸우고, 장난치고…. 그건 누구보다 내가 원하지 않았을까?
이동 중이신 선생님의 사정상 긴 대화는 하기 어려워 나의 입장을 정리해서 톡에 남겼다. 멘토 시간에 또래 관계 개선에 너무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관계란 한쪽의 노력뿐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와 이해가 맞물려야 한다는 점 등, 결론은…
"아이가 선생님과 만나는 시간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무엇이라도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친구를 집에 초대해서 대접하고 같이 어울리게 해라, 말을 많이 시켜라, 주변 엄마들하고 가깝게 지내라…
훈이 어릴 때, 다소 내향성이거나 사회성 발달이 느린 아이들에게 흔히 적용하는 방법들을 내게 조언하는 이들이 있었다. 적용 가능하다면 해서 나쁠 건 없다. 하지만 그 정도 개인적인 노력으로 쉽게 극복될 일이라면 장애가 아니겠지. 아이의 신경다양성이 가진 특징을 충분히 파악하고 이해하여 받아들인 상태가 아니라면 곧 막연한 노력은 부질없다고 느끼게 된다. 노력을 배신하는 아이는 밉상일 것이고, 엄마의 여유 없는 마음이 아이와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사회성을 타고나 가만둬도 알아서 하는 아이들을 가진 엄마들을 부러워하며 내심 질투하고 노력만큼 채워지지 않는 결과에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아이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막연한 사회성 기르기 노력에 매진하는 엄마 또는 양육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Stop please!"
장애 비장애를 떠나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하는 내향인, 말수가 적은 사람, 주변 분위기에 천천히 스며드는 사람, 느린 학습자… 나라가 급속도로 도시화되고 경제 활동 중심의 인간관계를 지향하면서 이런 이들의 특성은 고쳐야 할 점쯤으로 치부되어 왔다.
난 초등학교 다섯 군데를 다녔다. 아버지의 직업적 이유로 거의 1년에 한 번 전학을 다니는 일이 내향성인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 번은 전학을 손꼽아 기다린 적도 있긴 하다. 당시 짝꿍 여자애는 뒷자리에 앉은 자기 친구와 함께 줄곧 나에게 함부로 말하고 거칠게 대했다. 어느 날은 "늬네 집에 천만 원 있어?" 물어서 없다고 했더니 "야, 얘네 집은 천만 원도 없데." 하며 친구랑 죽이 맞아서 쓸데없이 재미있어했다. 천만 원이 집에 있는지 없는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어서 대충 대답한 거였다. 그 아이가 날 싫어하게 된 계기는 모르겠지만 내가 전학 간다니까 그 애도 좋아했고 나도 기뻤다. '이제 쟤 안 봐도 되네!'
서울에는 늘 그런 아이들이 반에 몇 명 정도 있었다.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좋아하는 친구 싫어하는 친구 편 가르기 하며 싫은 티 팍팍 내는 아이들. 지방에서 학교 다닐 때는 거의 못 봤었다. 선생님들은 서울보다 지방이 다소 거친 느낌이었지만, 아이들은 더 착하고 둥그스름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위축되었던 탓일까? 6학년 이후 서울에 정착하게 된 난 학교에서 말수가 눈에 띄게 적었고 싫고 좋음도 잘 표현하지 않았다. 오직 단짝인 친구에게만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모습이 스스로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우연한 기회에 어른 두 명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두 분의 답은 비슷했다. 네가 먼저 다가가고 말을 하라는 거였다. 그게 쉬웠으면 진작 했을 텐데. 그 후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따위는 털어놓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의 정확한 공감과 지지를 얻는 경험을 했더라면 아마도 이후 삶에서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훨씬 덜했을 것이고, 인생 전반의 선택과 집중이 한결 가뿐하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다.
그 시절과 달리 요즘은 상담을 받을 기회도 많고, 좋은 상담자를 만날 수 있는 확률도 높아졌다. 설령 마음에 안 드는 상담을 경험했다 할지라도 이젠 '내 마음의 어디에 부딪혀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생각해 보고 그 또한 자신을 이해하는 토양으로 섞어 넣을 수 있는 여유가 있기에 괜찮다.
어느 상담자가 말했다. 자폐인은 사회성이 '0'인 거라고. 제로 베이스라…
'사회성'을 막연한 주관적 기준이 아닌, 관찰 가능한 구체적 행동으로 나열하면 '0'인 사람은 없다. '0'에 가까운 사람이 있겠지만, 그에게 가능한 사회적 행동을 발견하고 거기서부터 사회성의 단계를 채 썰듯 잘게 나누어 조금씩 손을 잡아 이끌 수 있다. 다가오는 속도와 범위는 모두 다르다. 지금 걷는 정도의 파악, 나아갈 수 있는 적당한 한 발이 어느 정도 넓이인지 가늠하고 걸리는 턱을 낮추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
자폐인의 사회성 향상을 위해선 '사회성이 0이기에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섣불리 고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태주 시인의 시구를 극대화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필요를 채우기 위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껌 씹듯 잘근잘근 씹어 생각하며 바라보아야 한다. 주변의 협조도 중요한 요인이다.
이런 작업을 굳이 한정된 기간 만나는 대학생 자원봉사자 선생님과 해야 할까? 일방적인 또래 관계 지침이나 조언은 내가 중학교 때 느낀 것처럼 이해받지 못한 마음이나 수치심, 좌절감, 압박감…그 외 어떤 부정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 오히려 선생님과 함께하는 아이의 시간 자체가 만족스럽다면 자원봉사자 선생님의 열정과 선한 마음이 아이에게 가 닿지 않을까? 또래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라는 이상향에 대한 막연한 노력보다는, 의미 있는 하나의 관계 경험이 다른 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비록 그 속도가 더디더라도 말이다.
'네가 고쳐야 해.'라는 메시지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대인 관계로 나아가는 걸음을 주춤하게 하는 목소리로 깊은 뿌리처럼 오래오래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주춤거리며 잃은 관계의 기회들이 사회성 발달을 더 가로막는다. 내가 타인의 사회적 행동들을 관찰하고 '어, 저럴 때 저렇게 하는 거 괜찮은데?' 느낀 부분을 나의 삶에 적용하기 시작한 건 내가 할 수 있는 사회적 행동에 대해 사람들의 인정과 지지를 받으면서였던 것 같다. "넌 이게 안되니 이렇게 고쳐야 해."라는 일방적 피드백이 아닌, 잘하고 있는 점을 인정해 주고 "그런데 선물을 받고 기쁘면 조금 더 활짝 웃으면 좋을 것 같아."라고 얘기하면 바로 적용은 안 하더라도 '아, 그런 방법도 있겠구나.' 정도로 받아들여졌었다.
아이가 아직 어릴수록 취약한 사회성이 눈덩이처럼 커 보이고, 양육자(특히 엄마)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과제감에 부대낄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주변에서도 이런저런 막막한 잔소리를 할 것이다.
아이의 사회성을 끌어올리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엄마들이여! 잘 어울려지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조마조마해하며 눈을 떼지 못할지언정 친구를 초대하고 싶다면, 그것을 하는 스트레스보다 안 하는 스트레스가 더 클 것 같다면 그냥 하라. 무엇이든 양육자가 조금이라도 더 쉽게, 편하게,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이를 도우라. 주변에서 잔소리한다면 내가 할 수 없는 그 일을 대신해 달라고 부탁하라. 안 해줄 거면 조용히 지켜봐 주는 게 도리다. 아이와 친구와의 관계 이전에, 양육자와 아이의 관계를 견고하게 다지는 것도 중요하다. 가족이 함께 있을 때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려면 우선 양육자의 마음부터 편안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격려하는 데 집중했으면 좋겠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면 보람이 있는지 꼭 발견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생겨난 마음의 공간 안에서 아이도 자라날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 돌이키게 된다. 나도 모르는 새 고치려 든 적이 없었는지. 이론과 실제는 달라서 살다 보면 뜨끔할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