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산 Jul 27. 2024

그들은 악마일까?

가해와 피해의 그 너머

몇 달 전, 언어치료사가 자신에게 치료받는 아동을 신체적으로 학대한 뉴스가 있었다. 치료받는 아동에게 보여줘서는 안 될 영상을 보여줬다는 뉴스도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언어치료사뿐 아니라 활동보조인에 의해, 시설 직원에 의해 장애인 학대가 발생한 소식을 가끔 접한다. 반대로 발달장애인 때문에 아기가 다치고, 활동보조인이 피해를 입는 사례들도 있다. 이런 일들이 기사화되면 사람들이 한동안 화만 내다가 끝나기 마련이다.

장애인이 피해를 본 기사에는 약자에게 몹쓸 짓을 한 것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고, 비장애인이 피해를 본 기사에는 '발달장애인이 위험하니 격리하자', '부모가 데리고 있어라' 등의 댓글이 달린다. 한결같이 가해자 마녀 사냥하기 바쁘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본질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에 집중하는 의견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주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양쪽의 입장은 생략한 채 '피해'와 '가해'의 시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드러난 사건의 이면을 잘 들여다보고 예방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학대는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유아기 자녀를 둔 한 엄마가 '다 따지면 내가 얘를 어디 맡길 곳이 없어서 어느 정도의 학대는 그냥 받아들인다.'는 말을 할 정도로 장애인 관련 학대는 드물지 않은 일이라 여겨진다. 

왜 그럴까? 왜 장애, 특히 중증 장애인은 어느 정도의 학대는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들을 학대하는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악마의 탈을 쓴 인간인가? 아니면 중증 장애인은 타고난 천사 같은 심성을 지닌,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 케어해야 하는데 성격도 별로 좋지 않은 사람들이 케어를 해서인가? 그렇다면 현재 언어재활사 자격증을 비롯하여 특수 교사, 장애인 시설 직원, 활동보조인력 등 장애인을 돌보는 관련 직업군이라면 필수적으로 인성 검사를 해야 되는 것 아닐까? 그러나 그 인성 검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있을까??


장애인뿐 아니라,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욱' 할 때가 종종 있다. 사실 치료 중에도 '욱'하기도 한다. 내가 볼 때 문제 행동이라고 여겨지는 행동이 수정되지 않고 반복될 때이다. 내 자식이면 벌써 몇 번 소리치거나 손이 올라갔을 테지만 객관적 거리가 있기에 분노 게이지가 차오르는 시간이 더딘 편이긴 하다. 이때 그 '욱'과 거리 조절에 실패할 경우, 실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집에서처럼 소리치거나, 손이 올라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욱'에 떠밀려 무엇인가 행동하지 않고 '아, 내가 얘가 이러이러해서 지금 짜증이 났구나.'라고 재빨리 자신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그래, 그럴 수 있지. 짜증날만 하지. 그런데 얘도 이러이러할 만 하지.'라고 '욱'과 '행동'을 분리해야 한다. 내가 짜증이나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하지만(더 많이 알고 숙련될수록 안 나겠지만), 얘가 이 행동을 반복하는 것도 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인 것이다.


발달장애 아이들은 주변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고 상황에 맞는 말이나 행동을 잘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어린 아기들의 특성을 남보다 길게 가져가기에, 무의식 중에 우리는 그들의 덩치에 맞는 행동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반복되는 문제 행동(요즘은 도전 행동이라고 하지만)은 알고 보면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비언어적, 언어적 중재를 하지 못한 우리의 탓일 수도 있다. 혹은 문제 행동이 아니라 의사 표현일 수도 있다.


짜증 나고 화나는 치료사의 감정도 인정해 줄 수 있고, 아이의 문제 행동도 인정해 줄 수 있다. 올바른 중재를 했다고 생각됨에도 반복되는 문제 행동에 인내심의 한계가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치료사의 중재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무조건 어려운 상황의 원인 제공자가 장애인인 것은 아니다. 장애 아동이 비장애 아동에 비해 훨씬 더 세심한 관찰과 중재가 필요한 대상인 것은 맞다. 즉,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은 힘든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알아갈수록 예쁜 모습도 많고 장애 특성을 제외하면 일반 아이들과 별 차이도 없다.


힘든 점이 100중에 90만큼 다가오고, 나머지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10 이하로 다가온다면, 나도 언제 악마가 될지 모른다. 물론 언론에 오르내리는 사건에서는 다분히 악의적이고, 반복적이고, 발달장애인보다 더한 의도적인 자기 중심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일상적인 장애인 학대의 대부분은 순간적인 '욱'함을 빨리 인정하지 못해서일 때가 더 많을 것 같다. 부디 힘든 점만 부각해서 크게 보지 않기를! '욱'한 감정이 무엇인지 빨리 알아차리고 인정해 주기를! '욱'한 순간에 행동하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고 상대를 보호하는 방법을 찾아내기를!

작가의 이전글 사랑이 뭘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