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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산 Jul 28. 2024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그러나 산과 물은 함께 있다.

“산이 뭐예요?”

“……. 산은 산이지.”

“물이 뭐예요?”

“…….”    


이 대화는, 우리 집 ‘라우에 1호’가 9살 때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 위에서 엄마와 나눈 대화이다. 큰아들을 라우에 1호라고 칭하는 이유는, 우리 집 작은 아들 ‘라우에 2호’가 약간씩 말 주고받기가 될 무렵, 아빠가 독특한 둘째 아들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던진 질문에 대한 답 때문이다.

 

“넌 어느 별에서 왔어?”

“(둘째가 잠시 생각하더니) 라우에.”

“응, 라우에에서 왔구나!”     


그때 아이가 그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고 답했는지, 그냥 대답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큰아들에게는 물어본 적 없지만, 아마 같은 별에서 왔으리라. 날씨도 좋고 풍경도 멋진 코타키나발루의 바다 위에서 아들과 대화를 나누며 난 햇살에 심장이 쪼이는 갈증을 느꼈다. 타들어 가는 심장이 절규하고 있었다. 


‘대체 왜! 여기서 이 상황과 아무 상관없는 철학적인 질문을 하는 거지? 성철 스님도 아니고, 수도자도 아니면서 왜! 그냥 다른 애들처럼 “엄마, 우리 얼마나 더 가야 해요?”라던지, 앞으로 할 일에 대한 궁금증을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건가?’


당시에는 뜬금없는 아들의 질문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자체가 짜증이 나던 시절이었다. 지금이라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야.”라고 여유 있게 받아쳤을지 모르겠다. 보통 큰아들이 그런 질문을 할 때는, 정말 몰라서라기보다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하려고 주제를 던지는 방식일 때가 많다. 타자가 볼 때는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무관한 이야기들이지만, 라우에 1호의 입장에서는 멋진 풍경을 보면서 자연을 이야기하고 싶어 졌는지도 모르겠다. 라우에 별의 소통 방식과 지구인의 소통 방식이 조금씩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나도 지구가 고향은 아니라 다른 별에서 온 아이들의 심정을 차츰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해양재단의 후원으로 가족이 함께 울릉도와 독도에 다녀왔다. 나도 뱃멀미가 심하고, 라우에 2호도 멀미를 하는 편이라 한 번도 계획해보지 않았던 여행지였다. 날씨도 좋았고, 입도가 쉽지 않다던 독도 땅도 밟아볼 수 있었다. 긴 이동 시간이 체력적으로 고단하긴 했지만, 귀한 기회였다. 멀미약을 넉넉히 챙겨갔는데,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배가 독도에 가까워질 무렵 파도가 약간 일면서 속이 울렁거리긴 했다.

    

집에 돌아와 라우에 1호는 “엄마, 덜 익은 고기를 먹으면 왜 환청이 들려요?”라고 묻는다. 큰아들이 좋아하는 위기 탈출 넘버원 시리즈에 덜 익은 삼겹살을 먹은 사람이 뇌까지 균이 침투하여 환청을 듣는 내용이 있다. “위기 탈출 넘버원 얘기하는 거지? 덜 익은 삼겹살을 먹는다고 다 그런 게 아니야. 아주 드문 경우지.”라고 답하고, “우리가 독도에 왜 태극기를 갖고 갔는지 알아?”라고 물어봤다. 독도에 태극기를 들고 간 의미에 대해서는 새겨주고 싶었다. 독도 특강에서 관심이 없는 내용이라 흘려들었을 라우에 1호에게, 역사적으로 독도가 우리 땅인데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우겨서 우리나라 땅임을 알리는 취지에서 태극기를 들고 갔음을 읊어주었다. 오늘도 라우에와 지구(?)는 서로 조화롭게 살기 위해 애쓴다.

 

독도, 울릉도, 제주도 모두 해산이다. 저 깊은 바다 심연에서 꿈틀거리다 폭발한 용암이 식으며 산을 이룬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 훨씬 거대한 덩어리가 물아래 있다. 하루하루 쌓인 노력과 값진 경험들이, 언젠가 내적 동기를 만나 폭발하며 거대한 해산을 이루길 바란다. 눈에 보이는 열매가 적을지라도, 쉽게 보기 힘든 귀한 가치를 지닌 열매를 맺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한다.

독도는 우리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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