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된 고구려의 영웅, 온달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에 숨은 역사이야기

by 히스토리퀸

우리나라에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최인훈의 희곡부터 각종 웹툰, 웹소설에 등장하고, 최근 드라마 '달이 뜨는 강'의 소재가 된 평강공주와 온달. 그 인지도에 힘입어 드라마 '달이 뜨는 강'은 월화극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수많은 설화 중에,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이 유독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평범한 인물에서 영웅이 된 온달과 남편을 영웅으로 키운 평강의 이야기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능력 있는 여자나 처가에게 의존하려는 남자, 자신보다 모자라는 남자를 내조해서 능력을 키우고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여자를 보고 '온달 콤플렉스', '평강공주 콤플렉스'에 빠져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하지만, <달이 뜨는 강>을 보면, 온달은 바보가 아니라 '열혈 소년'으로 나온다. 신분도 평민이 아니라 '前 순노부 족장 온협의 아들'이다. 온달은 정말 바보였을까? 온달은 공주 덕분에 출세한 별 볼일 없는 남자였을까?



드라마 <달이 뜨는 강> 포스터(출처: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한국현대문학대사전에 따르면,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일명 '온달설화'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온달은 어려서부터 가난한 집안에 눈먼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마음씨는 착하나 용모가 허수하여 주위 사람들이 그를 ‘바보온달’이라 불렀다. 평강왕의 딸은 어려서 울기를 잘하였다. 왕이 어린 공주를 달래기 위해 그렇게 울면 커서 바보온달에게 시집을 보내겠다고 하자, 공주는 왕이 한 말을 그대로 믿고서 16세가 되자 온달에게 시집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왕은 크게 노하여 공주를 궁에서 쫓아내었다. 공주는 바보온달을 찾아 그와 혼인을 한 뒤에 온달로 하여금 자신이 기른 말로 무술과 사냥을 익히게 하였다. 무술을 익힌 온달은 3월 3일에 천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뛰어난 사냥솜씨를 보여 왕의 눈에 든다. 온달은 후주 무제가 요동지방에 칩입하자 고구려군의 선봉으로 공을 세워 비로소 국왕의 사위로 인정받았으며, 영양왕 때 신라와의 아차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온달설화 [溫達說話]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온달은 실존 인물인가? 가상 인물인가?

위의 줄거리를 보면, '설화'하면 떠오르는 신이적인 부분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온달설화는 김부식의 『삼국사기』 「열전」에 수록되었는데, 『삼국사기』는 신이적인 부분을 제하고 최대한 사실에 입각한 사료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수록된 만큼, 온달은 실존 인물이라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 수록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실존 인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삼국사기』 「열전」에 수록되었으나 출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고, 온달이 후주 무제와의 전쟁에 출전해 승리한 점과 신라와 벌였던 아차성 전투가 『삼국사기』 「본기」에 기록되지 않았고, 「열전」에 수록된 인물 중 온달만이 『삼국사기』 「본기」에 누락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달로 설정할 수 있는 인물이 존재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설화에 따르면 첫째, 평강공주가 궁궐을 나올 때 황금을 갖고 나왔고 그 황금으로 온달의 집과 논을 장만해주었는데, 이는 황금이 상위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온달은 평강을 만나 신분 상승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둘째, 평강공주와 결혼한 온달은 무술을 익히고 3월 3일에 뛰어난 사냥 솜씨를 보였고 후주가 침입할 때 큰 공을 세워 국왕의 사위로 인정받았으나 영양왕 때 신라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인물이다. 즉, 당시 고구려의 정세를 보면 신분이 좋지 않아도 무예가 뛰어난 온달을 왕이 총애할 가능성이 있었다. 당시 정세가 어땠길래 신분을 뛰어넘은 혼인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무예를 익혀 전쟁에서 공을 세울 정도면 바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후자의 정답부터 먼저 찾아보자.



온달은 정말 바보였을까

『삼국사기』 「온달전」에 따르면, 온달은 집이 매우 가난하여 항상 음식을 구걸해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해진 신발을 신은 채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왔다 갔다 하였으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보고 '바보 온달'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바보란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 '어리석고 멍청하거나 못난 사람을 욕하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 '뇌수(腦髓)의 병을 앓는 과정에서 또는 앓고 난 뒤 생기는 지능이 저하된 사람'을 의미한다. 온달에게서 이와 같은 점을 찾을 수 있는가?


그러면 온달이 바보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기백 선생의 『연사수록』에 따르면, 온달이 전쟁에 공을 세워 고구려 최고의 무사로 인정받자 그를 미워한 세도가들이 바보로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박정희가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로 함석헌 선생은 5.16 사태의 주동자들에게 체포된 후, 정신이상자로 내몰렸고, 이기백 선생은 스승 함석헌 선생이 미치광이 취급 당하는 것을 보고 난 후 온달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함석헌 선생을 정신 이상자로 내몰았던 계기는 함 선생이 5.16 사태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온달의 경우, 무엇을 트집 잡아서 바보라고 깎아내렸나? 온달의 경우 그런 계기가 부족하다. 전쟁에서 공을 세웠고 왕의 사위로 총애받는 사람을 함부로 트집 잡을 순 없다. 하지만 아예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낮은 신분'을 가지고 그를 바보로 폄하한 것으로 추측한다. 낮은 신분의 사람이었기에 왕과 공주의 총애 말고 기댈 곳이 없었고 세도가들이 쉽게 모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듯하다. 그러면, 온달은 어느 정도로 '낮은 신분'이었던 것일까?(출처: 이기담, 『온달, 바보가 된 고구려 귀족』, 푸른역사, 2004)



왕의 사위가 된 하급 귀족

온달의 진짜 신분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내용과 6세기 고구려 정세에 따르면, 하급 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삼국사기』 「온달전」에 따르면, '[온달은] 말을 타고 달리는 데 항상 앞에 있었고, 사냥으로 잡은 동물 또한 많아서 [참석자 중] 비견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왕이 불러와 성명(姓名)을 묻고는 놀랐고, 또한 이상하게 생각하였다.'라는 대목이 있다. 온달이 출중한 사냥 실력을 보였는데, 왕이 이름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것은 출중한 사냥 실력을 보인 게 이상할 정도로 온달의 존재를 귀에 담아두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온달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은 왕이 총애하거나 견제하던 귀족이 아니었다는 뜻이고, 이는 온달의 신분이 낮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온달은 고구려 최고 지배세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왕족과의 통혼권 밖에 있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공주와 결혼한 사람이면 평민이 아니었을 것이다. 평강이 울 때마다 왕은 평강에게 한 번만 더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고 했는데, 왕이 어떻게 미천한 온달을 알았을까? 윗 단락에서 황금이 상위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이는 황금이 신분적 의미보다 교환 가치를 갖는 재화로써, 경제적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이를 토대로 황금을 이용해 부를 축적한 부민층이 있었고, 경제적으로 성장한 부민층이 정치적 진출도 꾀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출처: 이기담, 『온달, 바보가 된 고구려 귀족』, 푸른역사, 2004)


몰락한 고구려 귀족으로 재해석된 온달(출처: 네이버 기사 헤럴드팝)


그러면 온달은 실존 인물일까? 아니면 다른 인물을 온달로 설정한 것일까? 만일, 후자라면 온달로 설정한 인물은 누구일까?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승' 장군이라는 견해가 있다. 고승은 영양왕 14년에 신라의 북한산성을 공격하게 했는데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온달이 신라 정벌에 나선 때는 영양왕 즉위 무렵이 아닌가?


「온달전」과 실제 역사와 비교해보자. 온달이 공을 세운 전쟁 상대국인 후주는 평원왕 19년에 건국되었다. 즉, 온달이 출전한 사냥대회는 평원왕 19년 이전이다. 윗 단락에서 『삼국사기』 「본기」에 없다고 했던 온달의 전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구려본기」에 나오는 영양왕 14년의 전쟁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국력을 총집결해야만 가능한 수군 작전을 영양왕이 즉위하자마자 감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즉위 초반에는 국내 정치 세력을 다지는 데 시간을 기울여야 했다). 고승이라는 이름은? 후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온달이 왕의 사위가 된 이후, 낮은 신분을 살리기 위해 고씨 성을 하사 받고 전쟁에 승리한 공으로 이름을 승(勝)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고씨'는 고구려 왕족의 성씨로, 온달이 전쟁에 공을 세우고 고구려의 왕족이 되어서 왕의 사위로 인정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결론적으로, 온달은 6세기경 고구려 평원왕의 부마가 되었던 하급 귀족 출신 장수였고, 그의 이름은 온달이 아니라 고승이었다.(출처: 이기담, 『온달, 바보가 된 고구려 귀족』, 푸른역사, 2004)



온달과 평강은 어떻게 혼인했을까?

하지만 설화에 따르면 왕의 사위로 인정받기 전에 온달과 평강이 만난 상황이었다. 어떻게 온달과 평강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을까? 평강이 온달과 혼인하기 위해 궁 밖으로 나간 걸까? 거기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혼인 전에 온달과 평강이 만났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 존재한다. 고구려의 개방적인 풍습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10월 제천의식 때 밤에 남녀가 여럿이 모여서 장난하고 놀거나, 함께 목욕하며 잠을 자고, 남녀가 자유롭게 어울렸다고 한다.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중매 없이 원하는 사람끼리 혼인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왕족이었던 평강이 단순히 서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혼인할 수 있었을까?


6세기경 고구려의 정치 상황을 보자. 6세기는 삼국의 패권 다툼이 본격화되는 시기였다. 광개토대왕이 요동을 정벌하고 백제를 쳐서 한강까지 영토 확대한 후, 신라와 백제가 협력하여 고구려와 싸워 한강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신라가 한강 유역을 강탈하자 백제가 신라를 치다가 도리어 백제왕이 전사하였다. 나제 동맹이 깨지고 백제는 고구려에게 친선의 손길을 내밀었다. 고구려는 남쪽으로 신라에 밀리게 되고, 돌궐, 거란 등이 침공하면서 정세가 불안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안원왕 이후 귀족들의 힘이 강해지면서 왕권이 약해지고 귀족들 간의 내분이 일기 시작했다. 평원왕이 집권하던 시기는 외적의 침입과 귀족들의 내분, 왕권 약화로 정세가 어지러웠던 시기였다. 그래서 사냥대회 때 뛰어난 무예 실력을 선보이고, 후주와의 전쟁에 공을 세운 온달이 평원왕의 눈에 들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새롭게 떠오른 '신진 세력' 온달과 손을 잡고 왕권을 새롭게 다지고 외세의 침공을 막기 위해 온달과 평강을 혼인시킨 것으로 보인다.(출처: 이기담, 『온달, 바보가 된 고구려 귀족』, 푸른역사, 2004)



온달은 어떻게 영웅이 되었을까?

다시 설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온달은 설화에서 '영웅이 된 바보'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삼국사기』 「열전」에 따르면, 온달은 용모가 못 생겨서 우스울 정도였지만, 마음속은 환하고 똑똑했고, 집이 매우 가난하여 항상 음식을 구걸해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해진 신발을 신은 채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왔다 갔다 하였으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보고 '바보 온달’이라고 놀렸다. 온달의 등장을 전통 영웅설화의 구조와 비교해보자. 전통 영웅설화 구조는 아래와 같다.


① 고귀한 혈통을 지니고 태어남.

② 비정상적으로 잉태되거나 출생함.

③ 보통 사람과는 다른 탁월한 능력을 타고남.

④ 어려서 버림을 당해 죽을 고비를 맞음.

⑤ 구출자나 양육자를 만나 죽을 고비에서 벗어남.

⑥ 자라서 위기에 부딪힘.

⑦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자가 됨

[네이버 지식백과] 영웅소설 (Basic 고교생을 위한 문학 용어사전, 2006. 11. 5., 구인환)


온달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③탁월한 능력(가난 속에서 밝고 똑똑하며 어머니를 봉양함)을 지녔다. 다만, ①, ②의 경우 해당사항이 없고, ④어려운 현실(꾀죄죄한 온달을 보고 바보라고 놀리는 사람들)이 부각된다. 살기 팍팍하던 때여서 보다 현실적인 영웅을 바랐던 것 같다. ⑤의 구출자는 평강공주이다. 평강공주는 자신의 의지로 배우자를 선택해 배우자를 변모시키는 여성 영웅이다. 한국에는 박씨, 홍계월, 심청, 가믄장 같이 대모신적 요소를 띤 여성 영웅이 등장하는 설화가 많고 평강은 그러한 여성 영웅 중 한 명이다. ⑥, ⑦도 해석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온달은 사냥대회에서 무술을 선보이고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서 왕의 사위로 인정받았다. 여기까지 보면 ⑥위기를 ⑦극복하고 승리한 영웅 같다. 하지만 온달에게 위기 아닌 위기가 찾아온다. 온달은 신라에게 빼앗긴 아차성을 되찾기 위해 출정했으나 전사하였다. 이렇게 보면, ⑥위기를 ⑦극복하지 못한 영웅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위기라고 보기 어렵다. 위기란 외부에서 찾아오는 것이다. 온달은 고구려의 한을 풀기 위해 '스스로' 출정을 택했다. 하지만 온달은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채 전사했고 평강이 "돌아갑시다"라고 말하니 관이 움직였다. 어쩌면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극적인 결말을 택했던 것 같다. 그간 여성 영웅의 설화를 보면, 평강은 자연의 모태와 같은 존재로 그녀가 온달에게 '돌아가자고' 했던 곳은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의 시대, 시간과 공간이 생기기 전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윗 단락에서 언급한 대로 고구려는 내적, 외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새로운 영웅이 나타나 자신들을 구원할 영웅, 더 나아가 초월적인 존재를 기원했던 민중의 심리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고구려 사람들의 하나로 모아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온달이 '신이한 영웅'으로 재탄생했을 수도 있다.(출처: 정소영(2006), 「「온달설화」의 역사수용 의식과 재창조 양상」, 『한국언어문학』 제57집, 271~295쪽, 전체 25쪽)


온달을 구하러 온 여성 영웅 평강(출처: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결말만 보면 온달은 실패한 영웅이다. 하지만 천 년이 넘도록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아니 '온달설화'는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되어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하고 있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영웅의 존재를 바라게 된다. 현재 대한민국은 어떤가? 코로나 사태, 갈수록 늘어나는 청년 실업률, 가게 폐업률, LH 사태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영웅이란 반드시 신이한 존재일 필요는 없다. 어쩌면 우리 주위에 있을지도 모른다. 바보라고 알려진 온달이 알고 보니 숨겨진 인재였던 것처럼, 영웅이 제 발로 나타나기를 바라기 전에, 숨겨진 인재를 발굴하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참고문헌 및 자료>

이기담, 『온달, 바보가 된 고구려 귀족』, 푸른역사, 2004

이기백, 『연사수록』, 일조각, 1994

정소영(2006), 「「온달설화」의 역사수용 의식과 재창조 양상」, 『한국언어문학』 제57집, 271~295쪽, 전체 25쪽

이병도, 최태영 공저, 『한국 상고사 입문』, 고려원, 1989, pp.128-131

바보온달에 숨어 있는 역사이야기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89180&cid=47306&categoryId=47306

온달콤플렉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699038&cid=40942&categoryId=31531

온달설화 줄거리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85878&cid=41708&categoryId=41737

영웅소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40006&cid=47319&categoryId=47319

네이버 국어사전

https://ko.dict.naver.com/#/main


<사진 출처>

[투데이TV]'달이 뜨는 강' 측 "온달 나인우, 오늘 선택 기로..깊이 있는 연기력" 극찬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3413194

드라마 <달이 뜨는 강> 공식 홈페이지

http://program.kbs.co.kr/2tv/drama/riverwheremoonrises/pc/index.html


* 네이버 블로그, 조인어스코리아 홈페이지에 영문판 기사를 게시했습니다.

(그나저나..브런치북 발간하고 나면 경어체를 쓴다고 했었는데..잊어버렸네요ㅠㅠ 다음부터 좀더 공손한 느낌?을 위해 경어체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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