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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pientia Veritasque Jul 03. 2022

'우리'가 만들어 갈 사랑 가득한 세상을 향한 염원

세상이 모두 - 우리(WE)

Tracklist

A Side
01. 세상이 모두
02. 어느 별에서
03. 찬비
04. 그대 외로워지면
05. 소녀 (연주곡)

B Side
01. 가난한 맨발
02. 그대 떠난 하루
03. 작은 방
04. 이슬
05. 손모아 마음모아 (건전가요)

기도하는 마음을 기다리는 마음
기다리는 마음은 기도하는 마음


'우리'라는 단어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단어로 먼저 인식이 됩니다('전체주의,' '우리가 남이가' 등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마냥 좋은 단어만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 세계를 꽉 잡고 흔들어 온 지금, '우리'라는 말은 일견 '낭만' 혹은 '뜨뜻미지근한 소리'로 비칠 것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같이의 가치' 정말 중요다는 것도 부정할 순 없겠죠.


음악에서도 같이의 가치는 중요합니다. 특히나 파트별로 명확하게 이름을 내걸고 하는 밴드는 같이의 가치를 가장 적확하게 드러내 보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를 내세우고 '우리'를 노래하는 '우리(Group WE)' 밴드는 이름부터 눈길이 가게 됩니다. 그들이 노래하는 '우리'는 어떤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실로 엮일 수 있다면
내가 무엇을 더 원할까요


본작은 커버부터 눈에 들어옵니다. 네온사인이 빛나고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길 위에 로봇 하나가 머리가 떨어진 채 널브러져 있고, 가슴이 열려 있습니다. 그 옆에는 '어린 왕자'를 연상케 하는 한 청년이 한 송이 꽃이 핀 화분을 들고 서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표현한 곡이 바로 첫 트랙인 '세상이 모두'라 여겨집니다. 진실과 사랑 곁에서만 머물고 싶다는 화자는 "있다가도 없어지는 수많은 일들"과 "머물다가 떠나버린 수많은 기억들"을 아쉬워하며, 그것들을 '사랑의 실'로 엮어 두고자 합니다. 생각건대 그 일들과 기억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없어짐으로 인해 우리는 사람으로 남지 못하고 그림 속 로봇처럼 가슴이 텅 비고 머리만 따로 노는 고철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화자는 "세상이 모두 아름다운 일들로 차 버리는 날"을 꿈꾸며, 그날이 오면 하던 일을 놓고 그날에 푹 빠지겠다는 바람을 내비칩니다. 아마도 아름다운 일은 그림 속 꽃으로 형상화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와 대비되는 세상은, 바닥에 쓰레기가 구르고, 멀리서 보면 예쁘게 빛나는 듯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저 눈 아프고 어지러운 네온사인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누구도 이런 곳에 몸을 내던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반면 초원, 꽃밭, 녹음이 짙은 숲, 푸른 산과 같은 곳이라면 한 번쯤 편하게 그 위에 누워 풀내음과 꽃향기에 묻히고 싶을 것입니다. '세상이 모두'의 마지막 가사는 이런 은유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일들이 꽃처럼 가득 피어나면 우리도 가만히만 있을 수는 없겠죠?


젊음은 우리 것 사랑도 우리 것
가슴에 불을 켜요 그대


본작의 정서를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단연 '사랑'일 것입니다. '세상이 모두' 역시 직접적으로 사랑을 언급하고 있으며(물론 '에로스'나 '필리아'보다는 '아가페' 쪽이겠죠 ^^), 다수의 수록곡이 직/간접적으로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본작에는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짙게 깔린 곡들이 우선 귀에 꽂힙니다. '어느 별에서', '그대 떠난 하루', '이슬'이 이에 해당하는데, 세 곡이 모두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우선 '어느 별에서'는 조용필의 '단발머리' 이상으로 독특한 사운드의 도입부가 굉장히 인상적이며, 일반적인 밴드의 구성에 비해 건반 파트가 많은 우리 밴드의 가장 실험적인 곡이라 여겨집니다. '그대 떠난 하루'는 3박자의 곡으로, 듣는 순간 리듬이 강하게 귀에 꽂힙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곡에서 한국적인 정취가 강하게 느껴니다.  마지막으로 '이슬'은 이별의 정서를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한 곡으로, 듣고 있으면 어두운 배경에 홀로 이슬에 젖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곡입니다.


이 세 곡만 떼서 보면 순서대로 이별 직후부터 시간이 꽤 지난 뒤까지의 흐름에 따른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루로 표현하자면 아직 밝은 오후, 노을이 지는 저녁, 깜깜한 밤의 느낌으로 각각 표현이 되겠습니다. 세 곡이 모두 다른 사람들로 작사/작곡된 것을 감안하면 이런 일맥상통하는 구성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참 흥미롭습니다. 더 나아가 생각해 보자면 그만큼 우리 밴드가 이 한 음반을 위한 수록곡들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뜻으로도 이해해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 밴드가 노래하는 사랑의 정서에는 이별만 있지는 않습니다.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곡으로는 '그대 외로워지면', '작은방'이 있습니다. '그대 외로워지면'은 김현식의 2집 수록된 바 있는데, 그와 비교하자면 한층 더 차분하게 상대에게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작은방'은 제목에 맞는 분위기로 아주 잔잔하게 사랑의 마음을 노래한 곡입니다. 전반부에서는 바로 옆에서 나지막이 속삭이듯이 노래하다가 후반부에서는 마치 '나의 마음속에선 그대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외치고 있어!'라는 듯이 시원시원하게 뻗는 보컬이 인상적입니다.


이 두 곡은 자신의 사랑을 어필하되, 상반된 두 가지의 접근법을 보여줍니다. 누군가는 '나 너 사랑해'라고 상대에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편지에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이 촛불처럼 작지만 가득 빛나고 있어'라고 써서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애매하지 않게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


아무도 친구로 걸어주지 않고
가난한 맨발로 걸어온 이길


'우리'를 노래하는 우리 밴드지만 '우리'가 아닌 '나'의 정서를 노래하는 곡들도 있습니다. '찬비'와 '가난한 맨발'이 그것인데, 제목만 봐도 어떤 느낌일지 오는 곡들입니다.


'찬비'는 비에 젖은 느낌과 함께 비 내리는 거리를 방황하는 모습을 통해 화자의 마음을 그려낸 노래입니다. 쓸하고 차가운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면서 화자의 절박한 심정이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맨발'은 LP B 사이드의 타이틀 격인 곡으로 A 사이드의 '세상이 모두'와 함께 윤형주가 작사를 맡은 곡입니다. '찬비'가 방황하는 마음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가난한 맨발'은 외로운 자신의 처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와 나를 사랑한다 말해달라"는 속내를 전합니다.


이 두 곡을 놓고 생각해 보면 '나'에서 '우리'로의 연대를 통해 함께 '사랑'하고자 하는 바람이 느껴집니다. 다시금 커버 그림을 보면, 그림 속 꽃을 들고 있는 남자는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보입니다. 혼자 서 있는 그의 모습에서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은 물론 배경 때문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그의 표정과 자세에서 느껴지는 정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굳이 철학적, 학술적 개념들을 들고 오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일 때 행복하고 사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 들었네 나는 들었네
언젠가 터질 것 같은 내 맘 깊은 곳
아주 작은 사랑의 노래


묵직한 드럼 사운드와 굵은 베이스, 시원하게 뻗는 '천둥호랑이' 권인하의 보컬이 어우러져 힘 있는 밴드 음악을 들려주는 음반입니다. 그러나 6인조라는 숫자에 멤버 중 3명이 건반을 맡는 Synth Rock 스타일의 특이한 구성은 이 밴드를 차별화시키는 요인이며, 이는 곧 각 곡들에서 두드러지는 다양한 건반 사운드로 구현이 됩니다. 앞서 언급한 '어느 별에서'를 위시한 여러 곡들이 신시사이저를 통해 다채로운 음색과 연주를 들려주며, 차분한 곡들에서는 잔잔한 피아노 소리로 곡의 분위기를 잡습니다. 에선 따로 소개하지 않았지만 과감하게 연주곡(소녀)을 실은 것 역시 이러한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외부 작곡가에게 받은 '그대 외로워지면(박두영 사/곡)'과 '그대 떠난 하루(강인원 사/곡)'을 제외한 모든 곡을 멤버들이 작곡했으며, 특히 대부분의 곡을 기타와 건반을 맡은 정수연이 작곡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20대 중반의 젊은 음악인들이 모여 이만한 수준의 앞서가는 음악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실제로도 많은 후배 음악인들에게 귀감이 됐다고 하죠 ^^).


'우리'와 '사랑'으로 대표되는 작은 마음속에 따스한 한 줄기 바람을 불어넣는 음반입니다. 커버 속 소년이 들고 있는 한 송이 꽃이 이 음반을 듣는 모든 분들의 마음속에서 예쁘게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


Recommendation

- 세상이 모두

- 어느 별에서

- 그대 외로워지면

- 가난한 맨발

- 작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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