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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움 Apr 21. 2021

더위를 싫어하는 아이

여름이 오고 있다

 나는 결혼을 한 후 바로 임신을 하게 되었다. 신혼기간을 더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나 특별한 가족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러움을 추구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자식이 어떤 의미인지 육아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아이를 가진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과 호기심만 가진 채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은 후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는데, 나의 아기가 다른 아기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카락 숱이 없고 피부가 아주 얇디얇은 아이를 보니 너무 슬프고 속상해서 눈물이 흘렀다. 그런 나를 보고 조리원 직원분들은 아이는 잘 자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1-2개월쯤인가 고열이 나서 소아과를 갔는데 큰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하는 것이다. 신생아가 고열이 날 때는 뇌수막염을 의심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응급실에 가서 피검사를 먼저 하고 해열제와 수액치료를 했는데, 다행히 열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뇌척수액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주 작은 이 아기의 발에 주삿바늘을 꽂아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피를 한 방울 한 방울 짜내는 일이 엄마로서는 지켜보기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어린아이들은 성인보다 기초 체온이 높은 편인데 우리 아이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아이가 자다가 칭얼거릴 때 안아서 달랜 후 소파에 눕혀 놓으면 가죽소파의 시원한 기운 덕분에 편안하게 잘 자곤 했다. 그때는 그게 참 신기하다, 소파를 좋아하는가 보다 라고 여기기만 했는데, 모두 다 더워서였다.


 아이는 땀샘이 없다. 더워도 땀이 나지 않기 때문에 체온조절이 되지 않는다. 햇볕이 뜨겁거나 조금 격한 운동을 하게 되면 아이는 귀가 빨개지며 몸이 뜨거워 많이 힘들어한다. 정상적으로 체온조절이 잘 되는 우리는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가 없는데, 누군가로부터 더운 여름날 온몸을 랩으로 꽁꽁 감아둔 느낌을 상상해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얼마나 숨이 막히고 답답할까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겠지만, 나는 아이만큼 그 더위를, 뜨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가끔 잊어버리거나 가볍게 여길 때가 있다. 외출 시 아이가 더워서 짜증을 내거나 힘들어하면 그 모습에 나도 지쳤고, 편한 외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곤 했다. 아이에게 좀 더 참으라고 강요하고 화를 낸 적도 있다. 그리고는 후회하고 자책하기를 반복했다.


 유치원에서 여름에 숲 체험 활동이 있을 때면 참여를 안 하기도 하고, 한낮에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이 있을 때면 선생님이 아이만 따로 그늘진 곳에 데리고 가주시기도 했다. 한 번은 아이가 너무 더워하니 선생님이 근처 마트에 데리고 들어간 적이 있다고 했다. 아이 표정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생각에 안정감이 들면서 잠깐의 둘만의 데이트가 즐거웠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더위가 점점 찾아올 때면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지 못하고 시원한 실내만 찾는 아이를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땀에 흠뻑 젖어 땀냄새가 폴폴 풍기는 또래들을 보면 부러움과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리고 주변 엄마들이 '더워'를 외치며 지쳐하는 내 아이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수군거릴까 봐 걱정스럽기도 했다.


 재작년 타이완으로 여행을 갔는데 가을임에도 낮 기온이 높아 아이는 바깥 구경을 힘들어했다. 돌아오는 마지막 날 더 많은 구경을 하고자 늦은 비행기를 예약했었는데 더위에 딱히 할 거리가 없어 공항에 일찍 도착해서 빈둥거린 적이 있다. 수영장이나 바다가 있는 곳이었다면 물에 들어갈 수 있어 더 나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아이는 앞으로 더운 나라로 여행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이의 첫 해외여행이 아주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지 않아 미안하다.


 아이는 점점 커가면서 좀 더 참을 줄도 알고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를 터득해 나가고 있다. 내가 늘 따라다니면서 도와줄 수는 없으니 스스로를 지키는 힘과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요즘은 학교 교실마다 에어컨도 있고 실내 체육관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또 상황에, 현실에 맞게 살아내긴 했을 테지만...


 오늘 낮 기온이 28도까지 오른다며 더위가 일찍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소식에 선풍기와 에어컨을 청소하자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아이가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하교할 그 길이 먼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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