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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움 Jun 28. 2021

나의 죄책감과 수치심

나는 나의 밑바닥을 보았다.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의 특별한 외모는 점점 두드러졌다. 마트에 가면 사람들은 아이를 보고 손가락질하며 수근 거리기도 했고, 백화점에서 어떤 직원은 지나가는 아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까치발을 들면서까지 쳐다보기도 했으며(나는 아이의 뒤쪽에서 가고 있어서 그 여자의 행동을 모두 지켜볼 수 있었다), 길에서 마주쳐 지나가는 아저씨는 뒤돌아보면서 아이를 보다가 걸음이 꼬이기도 했다. 


 오래도록 아이를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나는 그들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그들은 재빨리 시선을 피했고 어딘가 멋쩍은 듯한 표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뭘 그리 쳐다보냐고 한마디 날려주고 싶었지만 그 말은 내 목에서만 뭉글거렸고 나의 가슴은 무거운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들을 노려보고 남편에게 구시렁거리는 것이었다.  


 그 시선들이 너무 힘들어서 모자를 씌우기도 했는데 아이는 답답해하며 이내 벗어버렸다. 모자를 휙 벗어버리는 순간 나의 심장은 콩하고 내려앉았다. 아이가 싫어하니 더는 강요하며 씌울 수가 없었다. 아이와 남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데 나만 늘 혼자만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쳐다보는 것 외에도 말로서 자신의 호기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이가 많이 아프냐, 머리가 왜 그러냐, 외국인 같이 생겼다고 말하기도 했다. 며칠 전에도 어느 쇼핑몰 엘리베이터에서 함께 탄 아저씨가 아이를 보며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구나 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 마치 우리를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 무시하고 말지만, 내 속은 꼬이는 느낌이고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아이의 질환을 알게 된 이후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회사 동료들에게 한 적이 없다. 그저 누구나 겪는 평범한 육아 이야기를 나눌 뿐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한 적도 없었다. 


 아이가 3살 때쯤 회사에서 육아박람회에 참여를 해서 부스 전시를 했었는데, 아이와 남편과 함께 박람회 구경 삼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아이에게 모자를 쓰는 게 더 예쁘다고, 엄마 회사 아저씨들 만나니까 예쁘게 모자 쓰고 있자고 말했다. 그런데 그날은 웬일인지 아이가 모자를 벗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나의 마음과 의도를 이해하고 헤아렸던 것일까... 


 나는 회사 사람들에게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어렵고 싫었다. 아이를 보고 당황스러워할 그 눈빛들과 수군거림, 그리고 이어질 호기심의 질문들, 내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아니었지만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 상황이 싫었다. 우리를 보면서 세상은 참 공평하다고, 그들의 삶이 참 감사하다고 느끼고 말하는 것이 싫었다. 나를 안쓰럽게 본다거나 뻔한 위로의 말을 하는 그 모습도 거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 직원들의 결혼식이나 돌잔치 등의 행사에 아이를 데리고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다른 동료들은 대부분 가족들과 함께 참석을 많이 했고, 혼자인 나에게 아이를 왜 데리고 오지 않았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그저 ‘이런 날 혼자인 시간을 즐겨야죠’라는 핑계를 대기만 했다. 조금은 예민한 감각에 무뎌질 때 즈음 아이를 데리고 갈까 생각을 했지만 '이제와서 뭘' 이라며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나의 밑바닥을 보았다. 원인 제공자로서 그 모든 화살과 눈빛이 나에게 쏟아지는 것이 너무 두려웠고 죄책감이 건드려지는 자극들이어서 피하고 싶었다. 나는 별로 튀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두드러지는 것이 불편했고, 그러면서 자식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냐고 스스로를 비난하면서 또 죄책감을 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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