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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카제 Jul 15. 2022

[나의 해방일지 리뷰 2]  경기도 VS 서울

노른자와 흰자의 욕망, 그 간극에 대해

산포시. 경기도 수원 근처 전철(지하로 다니지 않고 지상으로 달리는)이 다니는 지역으로 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강원도 어디쯤 일지 모를 논밭이 펼쳐지는 수도권의 끝자락. 대략 서울의 동남쪽 1호선과 4호선 언저리가 아닐까 싶다.


드라마 내내 경기도와 서울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1~2회에 지나치게 리얼하게 등장하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의 삶은 비하라 느껴질 정도로 짠내 난다. 주인공들의 직장동료들은 대놓고 비하를 섞은 질문들을 던지곤 한다. 한 번도 경기도 어디 사는지 관심 없던 염창희의 여자 친구가 싸움 끝에 던진 "누가 그렇게 멀리 살래? 너! 끔찍하게 촌스러워!"라는 말은 노른자가 흰자를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노른자를 감싸고 있는 흰자 같은 경기도는 주변부라는 지리적 의미를 너머 자본과 계급, 욕망으로부터 소외된 곳으로 그 외연이 확장된다. 중심부인 서울과 가까울수록, 도시화 수준에 따라, 교통 발달 정도에 따라 값이 매겨지는 철저한 자본의 논리를 따른다면 산포는 욕망과 가장 거리가 먼 장소이기도 하다.


욕망을 탐하는 입장에서 산포는 떠나고 싶은 곳이고, 서울은 동경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끌어야 되는 유모차가 없는 미정에게 서울의 욕망은 힘을 잃는다. 그건 구씨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마저 상품이 되는 탐욕의 한가운데 살던 구씨에게 산포는 오히려 회복의 장소이다. 벌레가 울어대고, 밭에서 농작물이 자라고, 들개가 돌아다니듯 산포는 본능이 받아들여지고 자연스러움이 수용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이라 여기는 경계, 의심, 편견, 판단이 없다. 도시에서 구씨는 연고도 없는 위험한 알코올 중독자이다.

하지만 산포에서는 사연있는 안타까운 청년이며, 술에서 건져내고 끼니를 챙겨야 하는 이웃이다. 방에 갇힌 이를 불러내 일을 시키고 밥을 먹인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 자기 여식이랑 만나도 따져 묻지 않는다. 그저 한 존재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뿐이다. 이런 염씨 가족의 태도는 우리가 이미 오래전 잊어버린 사람을 대하는 기본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멋진 차를 끌고 싶은 욕망, 서울에 살고 싶은 욕망, 그밖에 사소한 우리 안에 물욕들은 본질은 피하고 피상화된 대상을 쫒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삶과 사람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회피하고 수박 겉핥기식 얘기를 정성스럽게 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드라마 초반에 등장하는 "서울에 살면 우리는 달랐을까?"라는 질문은 드라마 후반에 염씨 남매의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서울생활로 답을 대신한다. 오히려 주인공들은 서울에 와서 생기를 잃고, 생명력을 상실한다.


구씨가 미정이에게 한 서울로 가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라는 충고는 같은 욕망을 가지라는 말로 치환된다. 이런 데서 살면 본능을 못 죽인다는 구씨의 말도 이곳의 원초적 생명력을 오히려 드러낸다.

무엇이든 본질을 더 먼저 만나고 솔직하게 내어놓을 수 있으며, 또 받아들일 수 있는 산포는 욕망의 공간이 아닌 흰자의 투명함처럼 맑은 자연의 공간이며 회복의 공간이다.


난 경기도에 산다. 창밖에 계절마다 나무가 색을 갈아입고, 집 앞 골목에 들어서면 흙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하지만 난 서울 사람과 비슷한 욕망을 지니고 산다. 매일 직장을 오가며 욕망을 탐하기도 하고, 상대의 무한한 욕망에 상처도 받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자연과 가까운 나의 집이 산포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치유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나의 해방이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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