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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카제 Aug 12. 2022

[주택살이 11] 자연은 잔인하다

벌레의 주검, 그 잔인함 속에서 배우는 메멘토 모리!


정원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던 내가 오늘은 좀 다른 얘기를 해보려 한다.


지난주 아침이었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자 바닥에 까만 점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가만 들여다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개미들이 곤충의 사체를 열심히 파헤치고 분리해 각자의 몫을 들고 자신들의 식량고로 분주하게 이동하는 잔혹한 광경이었다.

귀뚜라미인지, 사마귀인지 모를 연녹색의 곤충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찢겨져 있었으며, 말 그대로 날개는 저쪽, 몸통은 이쪽, 다리는 그 옆에 나뒹글고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고는 이내 나뭇가지를 구해 개미들을 물리치고 벌레 조각들은 데크 밖으로 옮겼다. 내가 한 것은 그저 청소 이상도 이하도 아니긴 했다.


갑자기 나에게 이솝우화의 부지런한 개미는 벌레 토막 살인범에다 사체까지 먹는 극악무도한 존재가 되었다. 평소의 부지런함은 순식간에 시체를 분해하는 잔인함으로 나타났다. 내 정원에 많은 개미들이 이렇게 배를 채우나? 개미 입장에서 그 벌레는 자기 몸집의 몇십 배, 아니 몇 백배는 될 텐데, 수십 마리의 개미들이 일사불란하게 사체를 처리하는 모습은 감탄까지 자아내게 했다.




하지만 이내 출근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태계에서 죽음은 특별하지 않으며 잔인함도 일상이고, 이런 수많은 죽음은 포식자나 기타 동물들에게 생명연장의 수단일 뿐이라고. 또한 이런 순환은 생태계의 필수 요소이며, 그저 자연적 현상이라고 말이다.


장수 TV 프로그램인 '동물의 왕국'은 적나라하게 그 세계를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포식자들의 치열하고도 잔인한 사냥의 세계와 약자들의 필사적 몸무림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어느 날은 먹이를 향해 전 질주하는 육식동물이 되었다가 어느 날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초식동물이 되기도 한다. 나의 죽음이 남의 생명이 되고, 또 그 반대이기도 한 세계. 이런 원초적 세계를 다루었기에 동물의 왕국은 치열한 방송의 세계에서 50년 넘게 사랑받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새벽 한 곤충의 처참한 주검 앞에서 모든 생명에게 특별하지 않은 죽음이 인간에게는 왜 이리 특별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절대 나의 이야기가 아닌 듯 살고 있는 우리를 보며, 마치 스스로는 절대 잡혀 먹히지 않을 사자 정도로 여기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실제 사자도 자신의 죽음에 그리 오만하지는 않을 듯하다.




이어령 교수님이 생전 강조하신 메멘토 모리가 생각났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인 메멘토 모리.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


죽음에 맞서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던 이 시대의 지성은 딸의 죽음에 이어, 자신의 죽음마저 담담히 받아들이고, 조용히 관찰하며 깊이 사유했다.

"탄생 속에 죽음이 있고, 가장 찬란한 대낮 속에 죽음의 어둠이 있다."는 이어령 교수의 메멘토 모리는 죽음이 그저 삶을 불행하게만 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현재를 더 농밀하게 느끼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가족의 큰 질병 앞에 초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엄마가 아프고 나서 난 오히려 현재에 충실해졌다.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전에 지나친 오지랖과 과한 열정으로 혼자 무척 힘들어했던 직장 스트레스도 어느 순간 심드렁해지며, 나에게 무색무취가 되었다.


미천한 내가 이어령 교수와 같은 깨달음을 얻었을 리 없지만 조금이나마 삶과 죽음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듯하다. 잔인할지라도 현관문을 열면 새벽에 마주칠 수 있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언젠가 찾아오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제대로 느낀다.

질병을 계기로 죽음을 예전보다 더 현실적으로, 좀 더 자주 느끼게 된 것은 불행보다 행운일 수 있다. 현재가 더 소중해지며, 에너지의 흐름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분명해지고, 내 삶이 좀 더 농밀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모두, 반짝이는 삶 속에서 메멘토 모리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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