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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카제 Dec 04. 2022

녹슨 자물쇠, 철 지난 사랑

이들 중 몇 개나 반짝이고 있을까

지난 주말 교회를 마치고 남산에 올랐다. 몇 년 만인가.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우연히 알게 된 일본 친구들을 데리고 남산타워를 구경시켜준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8~9년은 족히 된 듯하다. 그때는 자차로 남산타워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불가능하다. 국립극장에 차를 주차하고 붐비는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해가 짧아져 해넘이를 못 볼까 조급한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쌀쌀한 날씨에도 서울타워는 젊은 남녀와 가족들로 꽤 붐볐다. 다행히 마지막 불꽃처럼 온 하늘을 붉게 태우다 이내 사라져 버린 일몰은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하늘에서 시선을 거두니 전망대 난간마다 가득한 자물쇠가 눈에 띄었다.


'사랑의 자물쇠'

어느새 남산의 명물이 된 자물쇠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담을 이루고 있었다.

주렁주렁 달려있는 자물쇠들을 보니 내가 난간이라도 된 듯 양어깨가 무거워졌다. 갖가지 색의 하트들과 설렌 마음으로 적은 메시지들은 눈과 비, 바람 때문에 더러워졌고, 어느새 까만 먼지들을 묻힌 채 영혼 없이 매달려있었다. 



왠지 서글펐다.

반짝이던 사랑이 어느새 닳고 녹슬어 본래의 색은 온데간데없이 지워진 것처럼 많은 이들에게 저 자물쇠도 이미 잊혀졌을지 모를 일이다.

달콤한 사랑의 말들이 사라지고 비, 바람을 맞으며 버거운 현실을 겪으며 나도 모르게 녹이 슬어버렸지만 열쇠를 잃어버린 자물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어떤 자물쇠는 힘겹게 남의 사랑 대여섯 개까지 책임지고 있다. 자물쇠마다 새겨 넣은 영원한 사랑의 약속들은 굳게 잠겨 그 안에서 소멸된다.


아~ 슬퍼라.


하지만 어제의 사랑이 가면, 오늘의 사랑이 온다. 많은 자물쇠 속에서 오늘자 따끈따끈한 사랑을 찾았다. 핑크색 하트 실리콘에 유성펜으로 적은 수줍은 고백. 한 달간의 만남 속 설렘이 그대로 전달된다.


"사귄 지 한 달도 안 되었지만, 마음은 남산보다 큽니다"라는 남자의 고백은 진심이리라. 이어 쓴 여자의 너무도 가벼운 답(앞으로 우리 잘 지내자는 식의) 속에 숨길수 없는 그녀의 미소도 보이는 듯했다.

몽글몽글함이 나에게조차 느껴졌다. 이것이 끊임없이 자물쇠가 달리는 이유이리라.


우린 그 어떤 비, 바람이 불어도, 먼지가 쌓이고 더럽혀지더라도, 녹슨 채 잊힐지라도 사랑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잊힌 자물쇠가 간직한 과거 그날의 기억만은 유효하다 생각하니 갑자기 무용한 자물쇠 더미가 주렁주렁 추억 더미처럼 느껴졌다.

분명 잊혀진다 해도, 마침내 버려진다 해도, 그때 그 둘이 나눈 순간의 마음을 기억하는 게 세상에 자물쇠 하나 정도는 되는 게 뭐 그리 나쁘겠는가.


오늘 훔쳐 읽은 그 커플을 왠지 응원하게 된다. 남산처럼 크다는 그 마음이 변하더라도, 그들의 사랑은 계속되길 바라며 남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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