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내 일상에서 완벽하다고 칭할 수 있는 날이 있을까? 머피의 법칙 같은 하루 중 드물게 예기치 않은 행운이 찾아온 날은 완벽한 날(perfect day)보다 운 좋은 날(lucky day) 일 테고, 그저 무탈을 기원하는 것이 내 하루에 대한 소박한 바람일 진데, 완벽한 날들이라니.
내가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날에 대한 호기심과 호기롭게 이런 제목을 붙인 감독의 이야기가 궁금해 친구와 영화관을 찾았다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그는 도쿄 스카이트리가 올려다보이는 도심 속 작은 빈촌에 살고있다.
이른 새벽 부지런한 이웃집 할머니의 비질 소리에 잠을 깨고, 한 칸 싱크대 앞에서 이를 닦고 간단한 면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창가에 놓아둔 이름 모를 화분들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정성스럽게 분무기를 뿌려주고익숙한 듯 푸른색 청소용 유니폼을 입고 집을 나선다. 집 앞자판기에서 뽑은 캔커피로아침을 대신하고 차에 올라카세트테이프 박스에서 오늘 들을 올드팝을 고른다.
어린 시절 들어본 올드팝들이 히라야마의 출근길을 채운다. 관객은 어느새 히라야마옆자리에 앉아 도쿄 시내를 바라보며 음악을 흥얼거리다 그와 함께 그의 일터인 공중화장실에 도착한다.올드팝을 배경으로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도쿄의 도심풍경이 인상적이다.
야쿠쇼 코지가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듯, 자신을 교육시켜 준 전문 청소부처럼 본업인 청소를 할 때에 히라야마만의 작업 리듬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의 말은 영화 내내 빠른 속도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물 흐르듯 청소를 해내는 히라야마를 통해 완벽하게 구현된다.
오전 작업 후 근처 신사 앞 벤치에서 샌드위치로 가벼운 점심을 먹는다. 올려다본 나무의 잎사귀들이 햇빛에 비춰 일렁인다. 히라야마는 그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작업복 주머니에 챙겨 온 작은 필름카메라에 담는다.퇴근 후에는 공중목욕탕에서 하루의 땀을 씻어내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간이식당에서 덮밥 한 그릇으로 저녁을 해결한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책을 읽다 잠자리에 든다. 평범한 청소부 히라야마의 하루는 영화의 주요한 뼈대를 이룬다.
영화 초반 며칠 동안 평일과 주말의 일상이 반복적으로 펼쳐진다. 주말엔 코인 빨래방과 필름 현상소, 동네 단골 서점과 술집이 동선에 추가되는 일상이다.
첫 번째 하루는 호기심으로 지켜보고 두 번째 하루는 순간순간 그의 성실과 진심을 쫓아가게 된다. 세 번째 하루는 그의 반복되는 루틴에 정갈함과 평화로움마저 느낄 수 있다. 누구에겐 무료해 보일 수 있는 이 하루에서 관객이 조용한 평안과 마음의 안정을 느꼈다면 그것은 히라야마의 표정과 태도에서 묻어나는 그의 삶에 대한 긍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일상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꾸려가며, 그 안에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자족하는 하루. 이 삶의 자세는 히라야마를 도쿄 뒷골목가난한 독거노인이 아닌 누구보다 행복한 삶의 수도사처럼 보이게 한다.
소박함보다 반짝임을 좋아하고, 모노톤보다 적절한 칼라 믹스를 좋아하는 내가 그의 단조로운 일상에 매료되었다. 완벽한 날이 이런 날들을 의미하는가라는 섣부른 결론까지 낼 지경이다.
히라야마의 일상은 단조로운 대신 군더더기가 없으며,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채워져 있다. 직장일은 화장실 청소라하더라도 마음을 바쳐 수양하듯 최선을 다한다. 개인적 삶은 자신의 취향에 기반한 좋아하는 일 위주로 간결하고 정갈하게 배열하고 이를 조용히 즐긴다. 히라야마의 시간은 업무시간이든 개인시간이든 자족하며, 자신이 그 시간의 온전한 주인인듯했다.
이와 달리 나의 시간은빚진 시간 같다. 주인이 따로 있는 듯, 항상 쫓기고 도통 잠시도 짬을 내기가 힘들다.
눈뜨자마자 바로 출근준비로 분주하고 1시간 넘게 운전해 도착한 직장에서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기는 힘들다. 직장이든 집이든 할 일들은 채권자처럼 날 기다리고, 마음은 항상 분주하다. 그 좋아하는 작은 정원조차 돌볼 시간, 아니 눈길 줄 시간도 없다.
나의 시간을 담보로 난 월급을 받고 그것으로 소비하며 삶을 꾸려나간다. 가족 간 돌봄도 내 시간을 필요로한다.
주어진 하루동안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채워나가는 히라야마의 일상은 그렇지 못한 현대인들에게는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일 수 있다.
하지만이런 히라야마의 일상은 많은 단절과 덜어냄 속에서 가능하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듯, 지금의 그의 삶은 많은 것을 덜어내고 다시 채운 듯하다. 그가 어떤 시간 속에 살았고 무엇을 어떻게 덜어내고, 상실하며, 비워 나갔는지는 영화 속에 나오지 않는다.만약 그에게 혹독한 상실의 여정이 있었다면, 지금 그가 만든 일상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것들은 아닐까.
그 지키고 싶은 고요한 일상, 자족하며 넉넉한 미소를 머금은 완벽해 보이는하루가퍼펙트 데이일까?
하지만 히라야마의 이 완벽한 하루도 예기치 못한 일과 사람으로 인해 너무 쉽게 무너져 버린다. 철없는 어린 동료의 일탈과 잠수, 그로 인해 쏟아진 일거리와 사라진 여유로운 오후 일과, 어느 날 불쑥 집으로 찾아온 가출한 조카의 등장과 그로 인한 변화 등은 그의 견고한 성을 단숨에 무너뜨린다.
우리는 이런 변화 과정에서 그전에 본 적없는 히라야마의 다채로운 감정을 본다. 그저 넉넉한 미소와 긍정의 태도로 자연물과 자신의 일상, 그리고 이웃을 바라보던 그의 얼굴에 분노, 미안함, 슬픔, 회한 등이 나타난다. 심플했던 감정과 내면의 평화는 깨어지고, 외부 관계와 자극에 의한 다양한 감정이 그 자리를 채운다.
수행하듯 정제된 삶,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일상, 번잡한 관계는 최대한 배제한 채로 지내는 그 단출함,
'혼자'만의 평화와 '함께'이기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진동, 고요와 고독 사이, 번잡함과 타인이 주는 위로 사이에 우리는 살고 있다. 끊어짐과 연결, 그 어딘가에 있는 것이 우리들이다.
얼핏 보면 모든 것과 단절된 듯보이는 히라야마의 세계에도 그만의 연결은 있다. 피곤한 저녁마다 수고했다는 인사를 먼저 건네는 식당주인, 항상 히라야마가 고른 책에 감상평을 나누는 서점 주인, 주말에 찾는 동네주점에서 편하게 그를 맞는 주인과 이웃들... 끊어진 세상에도 연결은 있다.
히라야마가 "이 세상은 수많은 세상으로 이루어져 있어. 연결된 세상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세상도 있지."라고 조카에게 한 말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단순히 서로 다른 세상의 존재, 그 연결성만을 얘기한 것이 아니다. 다양한 세상의 존재는 관계로 연결되고, 서로 다른 모습의 자아와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확장된다.
연결된 세상과 끊어진 세상, 그런 하루와 그렇지 않은 하루, 고요한 하루와 번잡한 하루, 혼자이고 싶은 나와 함께이고 싶은 나, 완벽하거나 완벽하지 않은 날들, 그리고 이 수많은 시간 속을 살아가는 나, 이것이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었을까?
영화 말미에 나오는 그림자놀이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수 있다.
시한부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술집 여사장의 전남편,그는 우연히 마주한 히라야마에게 "그림자는 겹치면 더 짙어질까"라는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히라야마는 평소답지 않게 답을 찾기 위해 빠르게 그의 그림자에 자신의 그림자를 겹치고는 짙어진다는 답을 그에게 건넨다. 수긍하지 못하는 그에게 히라야마가 말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관계와 연결, 끊어짐과 단절, 어떠한 움직임과 변화는 필연적으로 달라짐을 만들어낸다. 어제와 다르고 이전과 다르며, 그 변화는 짙어진 나를 만든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절제된 삶을 통해 완벽한 평화를 일궈낸 것 같은 도시의 수도사 히라야마가 오히려완벽하고 싶지만 완벽할 수 없는 우리네 모습과 닮아 있다.
때론 기쁘고, 때론 화나고, 때론 슬프고 때론 평화롭고, 때론 고독한 그 모든 감정을 느끼며 사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변하고 짙어지는 것, 그것이 우리네 삶이다.
마지막 장연에 보여준 히라야마의 표정, 슬픔과 회한, 눈물 속에 보이는 흐린 미소와 기쁨 어린 표정, 웃는 듯 우는 듯 알 수 없는 노배우의 그 짙고 내밀한 표정. 나는 삶의 모든 시간을 담고 있는 히라야마의 그 마지막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내 시간의 주인이 되어 하루하루를 채워 나가더라도 우리의 삶은 관계와 연결성 속에 있기에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오히려 그 취약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할 듯하다.그로 인해 펼쳐지는 다양한 변주를 수용하고 그에 따라 옅어지고 짙어지는나를 바라보는 것, 대단히 완벽한 날을 만드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모든 현자가 말하듯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단지 현재성에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도 수도하듯 전심을 다해 내 일을 하는 것, 찰나에만 존재하는 반짝이는 순간을 오롯이 즐기는 것,되도록이면 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일상을 채우는 것, 그리고 지금의 관계에 최선을 다하고 그저 흘려보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완벽한 오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영화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나타내는 일본어)도 현재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다. 찰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그 순간 말이다.
긴 리뷰를 마무리하며 완벽한 날들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파랑새가 아닌 내가 만들어가는 하루하루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