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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 Sep 03. 2021

후배가 특진했다.


후배가 승진을 했다. 심지어 특진. 최근 그의 인생에는 '겹경사'가 일어나고 있다.


신혼 티 물씬 풍기는 아기자기 인테리어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하는 그, 살림을 합치고 나니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며 원래 다 이런 거냐고 묻는 그, 와이프가 담배를 끊은 줄로 알고 있어 재택 가능한 날들에도 종종 사무실로 출근을 해 몰래 담배를 피운다는 그, 급매로 산 신혼집의 가격이 그 사이 올라 어리둥절하면서도 다행스럽다는 그.


새 출발의 혼란한 설렘이 전해져 나까지도 간질간질했다. 거기에 특진으로 연봉 인상과 조직의 인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상황. 며칠 전 생일이었던 그의 인생에 경사가 겹겹이 몰려온 시기인 거다.




'좋은 일이 한가득이네! 나까지 기분이 좋다 정말, 축하해!' 딱 거기까지만 말했으면 딱 좋았을 텐데, 나도 모르는 새 한 마디가 덧붙어 나갔다. '좋은 일이 너무 많아서 불안할 지경이겠어'라는 어처구니없는 내 사족에 그가 '그러니까요, 안 그래도 당분간 좀 조심하면서 지내려던 참이에요'라고 답했다.


하.. 그의 기쁨을 후려치려는 의도는 진심 하늘에 맹세코 1도 없었다. 나 자신에게 쓸데없이 엄격하게 굴면서 성취나 경사에도 충분히 기뻐할 줄을 모르고, 오히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라는 식으로 치부해버림으로써 매사 들뜨지 않고 변곡 없이 차분한 마음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에 대한 강박이 그대로 투사된 말이었다.


다행히 그도 비슷한 성정을 지녔기에 정색 대신 공감을 표한 거였지만, 그건 명백히 실수였고 실례임을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느끼고 있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나는 이 세상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세상 밝고 행복한 소녀였다. 항상 맑은 날들만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인생의 그늘까지도 그 눈물겨움이 아름답다고 느끼던, 기본적으로 뽀샤시 필터를 장착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세상에 대한 불만과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혼돈을 겪기도 한다는 학창 시절에도 나는 별다른 걱정 없이 그냥 공부 정도만 하면 되는 그 시간들이 내 인생 최고의 전성기라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어른 되면 분명  시간을 너무 그리워할 텐데'라고 되뇌며, 자줏빛 교복 마이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요리조리 걸어 다니는 날들이 하루하루 아까워 그 앳된 나날과 나를 최선을 다해 만끽하곤 했다.




그렇게 일상의 부침과 감정의 기복마저 충만하게 끌어안고 살아가는  자신을  좋아하며 하루하루 자란  훗날, 그땐  몰라서, 인생의  맛을  봐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여서 그럴 수가 있었던 거라고, 그렇게 사랑했던 과거의  자신조차 폄하하고 마는 불안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삶의 명암을 더 많이 마주하게 된 나는, 인생에서 빛이 나는 순간들에도 반대편의 어둠을 지레짐작하고 '이러다가 곧 또 어둠이 올 텐데 어쩌지' 하면서 미리 전전긍긍하는 겁쟁이가 되어 버렸다.


'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문장의 지혜를 어려운 순간에 나를 일으키고 좋은 날들에 나를 방심하지 않도록 활용했다면  현명했을 텐데, 어리석게도 그중 뒤쪽에만 과도하게 방점을 행복한 순간에 너무 행복해하면 누군가 그걸  빼앗아갈 것처럼 나를 끌어내리는 말로 품고 살았다.


게다가 엄마를 보내고 난 후 나는 좋은 일이 생겨도 더더욱 '그럼 뭐해 나 엄마 없잖아'라며 계속해서 나를 심해로 가라앉혔다. ‘엄마가 없는데 내가 행복할 수가 있다고?’ 깊숙한 곳 엉켜 있는 실체 모를 죄책감으로 나는 내가 행복할 권리를 주인도 없는 허공에 양도하곤 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의식해서도 아니었고, 일부러 나 자신을 옥죄려던 것도 아니었고, 내가 그러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지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아마도 어릴 적 내가 장착했던 뽀샤시 필터는 이 세상을 한없이 사랑하던 엄마의 품 안에서 자연스레 발동한 특혜였을 거다.


생의 절반 가량의 시간 동안 병과 통증을 곁에 두고 살았던 엄마. 하지만 병명을 말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아픈 줄을 몰랐을 만큼 늘 밝고 긍정적이었던 엄마가 머무는 반경 몇 미터 내에는 웃음과 행복이 흘러넘쳤다.


호스피스에서 세상을 떠나던 바로 그날 오후에도 혈액형을 묻는 간호사에게 '미인형!'이라고 대답하며 찡긋 웃어 보여 모두를 빵 터뜨렸던 엄마. 이만하면 쉽고 편한 인생을 타고 난 나보다 분명 더 괴롭고 힘든 일이 훨씬 많았을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삶에 대한 애착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걸까.


엄마라고 이생의 어둠을 못 보았을 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사랑했던 엄마. 엄마가 애틋함으로 부둥켜안았던, 있는 그대로의 이 불온전한 세상. 그토록 생을 사랑한 엄마가 그 생 안에서 가장 사랑했던 나라는 존재. 한계를 가늠할 수 없이 쏟아부어져 나를 넘치게 채웠던 사랑. 


그걸 오롯이 받고 배운 내가 이렇게 계속 세상을 등지고 웅크려 앉아 있기만 하는 건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도 엄마가 내게 바라는 일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나는 학창 시절에 겪지 않고 지나간 사춘기를 성인이 되고 나서야 뒤늦게 오래도록 늘여 겪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 단단하게 성숙해지기 위한 과정이었기를 바라며, 이제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게 이별을 고해보려 한다. 할 만큼 했다. 이제 가라, 너.


오늘의 행복을 흘려보내지 않고 하나씩 꼭 붙들고 뜯어보며 충분히 즐기고 넘어가기. 소소한 일상도 일을 키워 기념하고 굳이 챙겨 웃는 날들을 더 많이 만들기. 그러다가 언젠가 내일의 하강이 찾아오면 그땐 또 있는 그대로 내 삶의 일부로 수용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 멋모르는 순수함이 아니라, 담대한 포용으로 주어진 이 생을 긍정하기.


케이크를 사야겠다. 후배의 경사를 축하하면서 하나, 못난 나와의 이별을 응원하면서 하나. 촛불 하나 끄면서도 까르르 햇살처럼 웃어주는 딸내미 앞에 놓아주고, 후- 입바람을 부는 순간 속으로 소원을 빌어봐야지.


Good Bye, 사춘기!




사진 © profivideos, 출처 Pixabay



[브런치북] 엄마를 떠나보내고, 엄마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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