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주 Apr 18. 2024

내가 왜 아이를 하나만 낳았더라(1)

 나는 외동아들을 키우고 있고 꽤 오래 전부터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이 굳건했는데, 지난해 휴직을 하면서 잠시 망설임이 생겼었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것까진 아니지만 지금이 마지막 타이밍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둘째를 시도해보는 게 나을까? 정도의 마음. 시험관 시술같은 적극적인 액션을 취할 정도는 아니고, 생기면 환영하며 낳을 수 있겠다 정도였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고 나를 깎아내야 할 순간들도 많지만 찰나일지언정 지극히 순수한 사랑과 기쁨도 느낀다는 점에서 (굳이 비교하자면) 회사 업무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아이를 하나 더 낳는다고 퇴사하는 게 아니므로 의미없는 비교였다.


 복직과 함께 약간의 둘째 고민은 휘발되어 버리고, 내가 왜 아이를 하나만 낳기로 결심했었는지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생각해보았다. 물론 아주 큰 원인 중 하나는 남편이 너무 바빠서였다. 지금 생각해도 애를 둘은 키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낳으면야 키우겠지만, 그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서너살 때쯤 꿈 속에서 임신 사실을 알고 큰 절망을 느끼다가 깨어나 ‘어휴 꿈이구나’하며 안도했더랬다. 그때 내 마음을 확실히 알았다.


 하지만 둘째를 가진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처음 생긴 건 육아가 시작되기 전, 임신 시절 부터였다.

 친한 학창시절 친구들을 만났는데 나만 못생기고 초라하게 느껴졌던 어느 날이 기억난다. 다리와 발이 퉁퉁 붓고 인중까지 부어오른 내 모습이 너무 둔하고 못나게 느껴졌고 매직펌을 안한 지 한참 되어 부스스한 머리도 부끄러웠다. 아마 호르몬의 영향으로 정서적으로 취약해서 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그때 만난 친구들 중 한명은  갈색으로 염색하고 웨이브펌을 한 상태였고, 또다른 친구는 날개뼈를 넘기는 긴 생머리였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그 애들의 스타일이 예뻐 보였고, 나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못난이 같았다. 몇 년이 지난 뒤 그 친구들에게 이런 얘길 했더니 정말 깜짝 놀랐다. 한 명은 그때 내 모습이 사실 기억도 안 난다고 했고, 다른 친구는 '나는 네가 임신 중에도 밝고 편안해보여서 참 안정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했어' 라고 했다. 내가 꽤나 속내를 잘 감췄었나 보다.

 

 입덧이 심하거나 태아가 아래로 내려와있어서 꼼짝않고 누워있어야 한다든지 등등 누가 봐도 확연히 힘든 임신시절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겉으로 크게 티나지 않더라도 굉장히 다양한 고통이 있다. 나는 임신 중에 ‘사람 배가 단기간에 이렇게나 부르면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게 당연한데 왜 나는 임신을 그냥 배가 커지는 이미지로만 받아들였을까?’ 라는 생각을 정말 자주 했다. 가임기 여성으로서 내 몸에도 닥칠 미래인데도 임신한 자가 느끼는 실체적 고통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자기 입장이 될 수 있는 일에도 이 정도이니 지역, 종교, 인종, 성별 등 넘어설 수 없는 차이로 구분된 집단 사이에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임신 중에 몸이 정말 많이 부었다.  임신 중기 이후로는 발이 너무 부어 슬리퍼도 신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발가락에서 발목까지 퉁퉁 불어서 뭉툭한 덩어리를 대충 만져놓은 것처럼 보였다. 회사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으면 점점 더 붓고 다리가 무거워지면서 쑤시고 아팠다. 그럴 때 책상 밑의 내 발을 내려다보면 무서울 정도였는데 영영 이 못생김과 고통이 계속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어떤 친구는 내 상태를 보고 다리를 좀 올려두고 일하라면서 '네 발을 보고도 회사에서 다리 올린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인간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허리와 왼쪽 다리에 지속적인 신경통이 있었다. 자궁이 커지면서 신경을 건드려서 그렇다고 하던데, 재활의학과에 가서 혹시 뭐라도 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지만 '임산부 훠이' 느낌으로 단칼에 잘렸다. 소화가 안 되고, 변비가 생기고, 면역 반응인지 뭔지 비염이 생겨서 코가 꽉 막히는데 약은 먹을 수 없고, 입 안에 늘 쓴 맛이 느껴지고, 배가 너무나 무거워서 걷는 것도 숨쉬는 것도 자는 것도 힘든 그런 물리적 괴로움이 있었다.  배가 커지고 몸 안에 다른 생명이 자리잡으면서 생기는 당연한 생체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고통들은 임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감 아래 그저 가벼이 여겨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또 갖기 싫단 생각이 든 것은 이런 육체적 괴로움이나 그로 인한 우울함 때문은 아니었다. '너무 힘들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다시는 아이를 안 가질테다'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않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터의 존재, 너무 좋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