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에 오게 되었을 때 내 마음을 흥분하게 했던 것 중 하나는 영화에서 보았던 그 장소에 직접 가 볼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중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은 금문교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도, 그 유명한 배우들의 손도장이 찍혀 있다는 베버리 힐스도, 빽빽한 건물만큼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성공을 꿈꾼다는 뉴욕도 아니었다. 내가 가장 가 보고 싶었던 그곳은 멘도치노 (Mendocino)였다.
멘도치노를 알게 된 건 91년, 영화, Dying Young을 통해서였다. 제목이 말해주듯 영화는 불치병과 그 병 때문에 만난, 살아온 삶이 아주 다른 남녀의 이야기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지만 오래도록 기억되는 건 왜일까? 단연코 이 영화는 난 배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분홍색 캐딜락을 타고 캘리포니아 1번 해안도로를 달려 도착한 작은 마을 멘도치노. 마른 풀잎 들판에 외롭게 서 있던 그들의 집, 작은 창밖으로 보이던 너무 넓은 밤하늘, 주인공들이 말을 타고 함께 달리던 해변…. 그때 그 영화를 보며 서울 한복판에서 난 가을을 담은 흑백사진 같은 모습으로 멘도치노를 기억하며 언젠가는 가보리라 소원했었다.
처음 간 멘도치노는 깊은 여름이었다. 영화에 비쳤던 쓸쓸함 대신 그곳엔 웃음이 있었다. 작은 상점들의 색색깔 기념품과 그림들, 휴가철 왁자함이 더해진 멘도치노는 작지만 화려했다. 몇 해 뒤 레드우드 국립공원에 갔다가 잠시 들린 그곳은 너무 어둡고, 추워 서둘러 좀 떨어진 등대만 보고 왔다. 또 어느핸가는 며칠을 멘도치노에 머물며 뾰족한 지붕의 교회가 있는 마을 입구부터 아무도 살지 않는 작고 허름한 집 앞까지 골목골목 거리를 몇 번이나 걸어도 보았다. 하지만 내 맘 속 다짐하며 가보리라 했던 그곳은 없었다. 그러다 어느 핸가 딱 요맘때쯤 멘도치노에 갔었다. 누렇게 말라버린 잡초들이 더 어울리는 절벽 해안 길, 소리만큼 시원하게 부딪히던 파도, 조금은 앙상한 철탑 위의 물통, 찬 이슬 때문에 더 향기가 진해진 나무 내음까지 상상 속 바로 그곳이 있었다.
뒷짐 지고 걷는 할아버지처럼 가을이 간다. 더 늦기 전에 멘도치노 그곳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