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장래희망이 나의 희망이 되었다
어렸을 적 꼭 사서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 나이 때 친구들이 그러하듯 장래희망은 자주 바뀌었다.
어느 날은 건축사가 되고 싶었고, 어떤 날은 부모님이 좋아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장래희망은 바뀌어도 '나'라는 아이의 존재 안에 '책'은 항상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는 언니들이 보던 책이나 아빠가 청계천에서 큰맘 먹고 사 오신 '위인전'과 '백과사전'을 열심히 보았다.
백과사전에 나온 은하수와 블랙홀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하지만 내 마음속 '책'이란 도화선에 불을 지핀 것은 중학교 때 친구 '신애(가명)'였다.
신애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해 정말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나는 책을 서점에서 집에 오는 사이에 다 읽어서 부모님이 책 사주는 걸 싫어해."라고 했다.
“아니, 얼마나 책을 빨리 읽길래 부모님이 책 사주는 걸 싫어하지?” 속으로 생각했지만, 만화방에서 친구의 능력을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그 당시 만화방에서는 권당 몇백 원씩 돈을 내거나, 아니면 시간당 천 원 혹은 천오백 원 정도로 돈을 냈었다.
속독이 가능한 그녀는 시간당 돈을 지불했고, 내가 1권 정도 읽을 때 그녀는 2권을 독파하였다.
속도가 이렇게 차이가 나니 같은 만화를 고르면 먼저 보는 사람은 그녀였다.
어쩌다가 나눈 미래의 이야기에 그녀는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다고 했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비평준화 시절의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학교 친구들이 공부를 잘하는 데다 이쁘고 악바리처럼 다들 공부만 했다.
학교 담장이 감옥 창살처럼 느껴진 나는 가끔 탈출을 꿈꿨다.
그런 나에게 도서관은 아지트였다.
서가에 꽂힌 책을 바라보고, 잘못 꽂힌 책은 제자리에 꽂고 (그때는 사서도 아니었는데 왜 신경 썼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없는 곳에도 가보고, 관내 열람하고 문 닫기 전에 반납했다.
(업무 마감 전 대출 반납은 직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다.)
쥐뿔도 모르는 시 한 편을 줄 서서 복사하면 뿌듯함이 가득 찼다.
토요일 학교 수업을 끝마치고 버스를 타고 도서관에 도착한다.
원하는 만큼 머물고 신중하게 고른 책을 빌려서 가방에 담는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어느 날은 더워서 허겁지겁 가기도 하고,
어느 날은 노을이 길게 비치는 해를 보며 천천히 걷는다.
고3 때 기대했던 것보다 좋지 않은 수능 점수였지만,
네 군데 원서 접수를 넣었던 대학교 중 '문헌정보학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친구의 장래희망이 나의 희망이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