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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30. 2024

20년 차 사서가  들려주는 도서관이야기

초보 사서 눈물을 흘리다

 나는 사서다. 맞다, 그 사람, 도서관 사서. 그것도 햇수로 벌써 20년 차.

첫 근무지는 경기도의 한 공공도서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문헌정보학과(도서관학과)를 전공했지만 정규직으로 근무한 건 이곳이 처음이었다. 모든 신입의 첫 발령지에는 이유가 있다. 이곳은 지하철 바로 앞인 데다가 주변에 도서관이 많지 않아 업무량이 많을 수밖에 없는, 한 마디로 동기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곳이었다. 그들이 그래도 나는 괜찮을 거야, 힘들지만 잘 해낼 수 있어, 아자아자! 모든 신입은 다들 기피하는 발령지가 적힌 인사 발령서를 손에 들고 ‘남다른 나’를 꿈꾼다. 꿈만 꾼다. 꿈은 꿈이다. 꿈이 괜히 꿈이겠나. 기대와 설렘으로 터질 듯한 마음으로 시작한 첫 근무. 꿈은 단 며칠도 가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꿈은 역시, 꿈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서관 자료실에서만 사서가 근무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우리는 마치 머리카락이 보일라 꼭꼭 숨어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도서관에 필요한 책도 사고, 정책 수립도 하고, 문화강좌와 독서회 개설 등 생각보다 다양한 일을 한다.  이중 내가 제가 제일 처음 맡은 업무는 아예 도서관 밖으로 나가는  ‘이동도서관’이었다. 혹시 아파트나 동네에 조그마한 차에 책을 가득 싣고 빌려주었던 거를 기억하는지? 그 차가 바로 나의 첫 도서관 근무지였다.


  인사발령받고선 처음 인사 드렸을 때 입었던 이쁜 스커트는 이동도서관 함께 달리면서부터 거추장스러워 바로 청바지를 입게 되었다. 한 여름에 이동식 테이블과 캐노피를 펼쳐 놓고 두 시간씩 앉아서 이용자를 기다리는 생활은 나름 즐거웠다. 물론 더위와 옆에서 훈수 두는 운전직 선생님이 옥에 티인 거 비밀.  어느덧 시간이 흘러 겨울이 다가오면서 나의 시련이 시작한다. 이동도서관에서 책 빌려주는 일이 도서관에서는 가장 한가한 업무로 인식되었는지 그때부터 새로운 업무들이 하나둘씩 쏟아지기 시작한다.  


  바로 그 업무들은  ‘학교도서관을 지원하라’였다. 마치 사무실에 한 명의 직원이 더 배정된 것처럼 일이 야금야금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존에 없던 업무가 새롭게 배정되면  직원들은 진짜 투견처럼 미친 듯이 싸우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한 번 싸워 이기면 지금의 나부터 후임자까지 그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운의 여신이 나의 편이 아니었는지, 결국 희생양은 나로 낙점이 되었다. 진짜 그 뒤로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일이 일을 부르는지 연말이 되자 오래된 서가와 집기를 교체한다는 업무 지시가 내려왔다.  집에서는 물건을 사고 싶으면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장바구니 담고 카드결제 하면 끝이지만 공공기관에서는 그렇게 구매하면 바로 감사에서 걸린다.  무슨 물건을 어떠한 이유로 사는지 일단 계획서를 세운 후 (거기에는 단가와 수량을 적는 건 기본! ) 조달청에 등록되어 있는 물건으로만 품목당 3개 회사를 추려낸 후 ‘물품선정위원회’라는 것을 거쳐 구매한 후에 사야 한다.  아 기존에 있던 낡은 서가를 버리는 것도 알 수 없는  서류에 윗분들의 사인을 여러 번 받은 후에야 가능했다.(뭐 지금은 여러 번 노후된 물품을 처리한 관계로 숙련자가 되어버림)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 게 이 당시 밤 11시 넘어서까지 야근을 했었다는…. 그때는 어릴 때라 나도 모르게 눈이 빨개지면서 울곤 했는데, 지금은 안구건조증인지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건 바로 도서관 이용자! 사실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도서관을 워낙 좋아하기에 조용히 머물다 간다. 마치 온 적이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직원들이 기억하는 이용자는 여러 가지의  부정적인 이유로 각인이 된 분들이다. 예를 들어 ‘책 반납할 때 항상 직원에게 던지듯이 주는 이용자’, ‘아무도 안 볼 거 같은 책을 희망도서로 꽉꽉 채워 신청한 후에 매번 빌려가지 않는 이용자’, ‘본인이 신청한 희망도서는 무조건 다 사줘야 한다는 이용자’, ‘책은 빌렸지만 멀어서 반납은 못 하겠다는 이용자’, ‘책마다 밑줄 긋는 이용자’, ‘밑줄 그어진 책을  서가에 비치하냐고 항의하는 이용자’, ‘봉사시간에 농땡이 친 학생에게 주의 주니 항의하는 학부모’, ‘내 고정석인데  딴 사람이 앉았다고 하는 항의하는 이용자’, 그리고 옳은 말씀이지만 과격하게 이야기하여 마음에 스크래치를 주는 분들까지 페이지를 꽉 채울 정도로 많다. 더 쓰고 싶지만 독자분들이 읽기 지칠 듯하여 여기서 급하게 마무리한다.  


 나의 첫 도서관 근무 소감은 이용자는 너무 까칠하고, 책은 볼 틈이 없으며, 복잡한 행정업무, 딱딱한 위계질서 등 내 어깨에  봇짐이 하나하나씩 얹어지는 느낌이었다. 하나 아직까지 관두지 않고 이 직업을 20년 동안 나름 즐겁게 하고 있는 이유는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책과 관련된 세계에 초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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