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탐색
21년 5월 28일. 취미에 대한 글을 썼다.
https://brunch.co.kr/@rightwhale/21
글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굳이 꼽자면 웹소설을 읽는 것 정도였는데 이제 놓아주기로 했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니고, 영화도 안 좋아한다.
몸이 이러니 스포츠를 즐기기도 어렵다.
음악 감상에도 취향이 없다.
그림도 못 그린다.
술도 안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어려워한다.
먹는 것도 체중관리 때문에 특별한걸 잘 안 먹게 되었다.
자전거 타는 걸 조금 좋아하긴 하는데, 다리가 이래서 참.
한때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수중에 돈이 없고, 걷는 걸 두려워하니 여행도 딱히 즐기지 못했다.
게임도 하다 보면 시간낭비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잘 안 하게 되었다.
피아노, 드럼 등 다양한 악기를 배웠지만 특출하게 잘하는 것도 없다.
2년 하고도 절반이 더 지난 지금. 돌고 돌아 자전거를 취미로 삼게 되었다.
따릉이와의 만남
대학교 때에도 따릉이를 즐겨 탔지만, 따릉이를 본격적으로 '자주' 타게 된 것은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였다.
작년 새로운 부서로 옮기게 되면서 나는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기존에 하던 감사업무가 아닌 파이선, VBA와 같은 프로그래밍 업무를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속하게 된 본부는 그 해에 야심 차게 새로 출범한 본부였고, 열정이 넘치시는 상무님은 매일 월요일 퇴근시간 이후 머신러닝 스터디 시간을 갖자고 하셨다.
처음에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마냥 즐겁고 환기가 되는 기분이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체력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스터디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강의를 모두 예습하고 가야만 했고, 주말을 강의 듣는 데에 투자하고서는, 월요일 퇴근시간 이후에도 사무실에 붙잡혀 이해하기도 어려운 외계어를 복습하고 있자니, 두통이 심해져만 갔다.
이때부터 나는 일탈을 시작했다. 매일매일 쳇바퀴처럼 돌아가던 루틴에서 빠져나오고자 했다. 이전에는 고려조차 해보지 않았던, 자전거 퇴근을 시작했다. 한강대로부터 자전거도로를 타고 집까지 향하는 여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 30분 걸리는 거리가, 자전거를 타면 한 시간 반이 걸렸다.
너무 신기하게도, 헥헥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도착했지만 지하철을 타고 퇴근을 했을 때 보다 오히려 덜 피곤한 느낌이었다. 자전거를 타며 평소라면 느끼지 못했던 시원한 밤바람을 느끼고,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며 여유를 느꼈다. 지끈거리던 머리는 평화로워졌고, 나른한 감각은 나를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날 이후 나는 종종 따릉이를 타고 퇴근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그리고 점차, 퇴근할 때가 아니더라도 따릉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충동구매
지금 다니는 회사에 들어온 지도 만으로 2년이 지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승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일에 치여 사는 나에게 승진 기념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우연히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당근마켓에 좋은 가격의 자전거가 많을 것 같아 당근마켓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집 근처에 좋은 매물이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날 바로 판매자분께 연락을 넣었다.
"안녕하세요. 자전거 구매하고 싶습니다! 혹시 3만 원만 깎아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렇게 나와 함께하게 된 녀석이 지금의 내 라이딩 파트너 메리다 스컬트라 100이다.
따릉이와는 정말 차원이 달랐다. 따릉이였다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야 할 거리를,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자전거가 정말 가볍고 빨랐다.
경인 아라뱃길
새 자전거를 뽑은 김에 본격적인 라이딩을 하고 싶었고, 내가 정한 첫 목적지는 인천 서구에 있는 아라뱃길이었다. 국토종주 인증센터가 있는 곳이기도 했고, 인천의 바닷바람이 내 답답한 마음을 달래 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다.
왕복으로 타고 싶었는데, 인천에 도착하니 해가 지고 사방이 깜깜한 시간대가 되었다. 괜히 제때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고, 돌아오는 길은 얌전히 지하철을 이용했다.
이 먼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솔직히 돌아오는 길에는 그냥 드디어 집에 간다는 생각으로 행복했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첫 라이딩 치고는 너무 무리한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오자 나른한 기분이 온몸을 감쌌다. 이날은 아주 푹 잘 수 있었다.
팔당댐
새로운 주말이 밝았고, 오늘은 무슨 코스를 갈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전에 방문한 미용실에서 미용사 분께서 남양주 쪽도 자전거 타고 가기 좋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곧 충동적으로 목적지를 팔당댐으로 정했다.
인천에 갈 때에는 오후 늦게 출발해서 밤길을 달렸는데, 팔당댐을 갈 때에는 밝은 대낮에 출발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의 라이딩은 또 색다른 느낌이었다. 지나는 길에 걷기 대회를 하는 인파를 지나기도 하고, 인천에 갈 때에는 자전거를 탄 분들을 얼마 만나지 못해서 외로운 느낌도 있었는데, 팔당댐을 갈 때에는 정말 많은 자전거 라이더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역시 집에 빨리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집까지 오는 길은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었지만, 집에 돌아와서 씻고 편히 쉬는 시간은 정말 천국과 같았다. 나른한 기분이 잡생각을 싹 지워줬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매일매일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점인 것 같다. 이전에는 집에서 쉬더라도 괜히 불안하고, 마무리되지 않은 회사의 업무가 생각나고,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날이 많았는데, 자전거는 쓸데없는 생각을 싹 날려줬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괜히 더 여유로워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열심히 자전거를 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