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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a Hong Dec 21. 2021

엄마에 대한 고찰

반성문

엄마는 늘 바빴다.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마음의 여유도 없으셨을 게 자명하다. 내가 눈을 떠서 학교에 갈 때까지 하나가 끝나면 또 하나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엄마를 닮아서 야채, 과일, 생선은 좋아하지만 기름진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나를 알면서도 엄마는 잘 씹지도 못하는 초등학생한테 아침부터 소고기를 구워서 남기지도 말고 다 먹으라니, 그것도 '빨리' 다 먹으라니 야속하기만 했다. 옷을 단정하게 입어라, 준비물 챙겨라. 간혹 내가 좀 일찍 일어나서 여유가 있을 때에도 엄마는 그 시간에 가만히 있지 말고 피아노 연습을 하라라든지,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하셨다.


"엄마도 늦었어! 자꾸 꾸물대면 엄마 먼저 갈 거야!"


그냥 일을 그만두면 되는 것을 나보다 더 소중한 게 있단 말인가. 말로는 보물이라고 하지만 엄마의 잔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면 엄마, 아빠는 직장으로 나는 학교로 사라지고 우리 집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집에서 내가 올 때까지 강아지 한 마리가 잠을 잔다.


엄마는 집에 늦게 오는 날에도 전화기를 통해 잔소리를 이어갔다. 숙제며 내일 챙길 준비물이며 세탁소에 맡겨야 할 옷 들이며, 온갖 잔소리에 아빠는 듣는 둥 마는 둥 했고, 엄마는 그런 아빠가 답답한지 나를 바꾸라고 하셨다. 엄마의 다급하고 한숨 섞인 목소리를 듣다 보면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아빠에게 하는 말인지 헷갈리기도 했지만 나는 '알겠노라' 엄마를 안심시켜야만 했다.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아빠는 낙천적이라 남 얘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 보니 그게 어쩌면 엄마의 잔소리에 기폭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엄마의 강력한 비판과 비난에도 아빠는 일관적이었다. 엄마가 작전을 바꾸거나 아빠가 태도를 바꿀 법도 한데도 두 분은 그런 선택은 하지 않으셨다.


세상만사 우이독경 하는 아빠도 경청하는 게 있었으니 정치 뉴스였다. 엄마는 한때 기자가 꿈이었다고 들었지만 결혼 후 정치와 뉴스라면 담을 쌓고 살았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의 권력 쟁탈전에 영혼까지 끌어모아 한 쪽을 응원하는 아빠에게 엄마는 늘 불만이었는데, 가끔 나는 두 분의 권력 다툼이 정치인들의 권력다툼보다 치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우리 집 강아지가 토하는 증상을 보였다. 아빠는 별일 아니라는 듯 곧 좋아질 거라며 뉴스에 집중했고, 어렸던 나는 아빠의 말이라면 하늘처럼 믿었기에 친구랑 소파에 앉아서 게임에 몰입했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아빠는 뉴스를 보다 나에게 물었다. 나는 친구와 무기를 뺏고 빼앗기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했던가?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엄마가 퇴근을 하고 돌아왔다. 짜장면과 짬뽕을 시켰으니 먹자고 하셨다. 엄마가 늦을 때면 아빠가 저녁을 준비해야 했던 터라 '시켰다'라는 소식에 아빠는 즐거워했다. 와인 한 잔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음식을 기다리며 아주 오랜만에 여유로워 보이던 엄마는 오늘따라 강아지가 이상하다고 했다. 나는 얼른 대답했다. 잔소리가 없는 평온한 집안의 공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강아지가 오늘 두 번이나 토했지만 갈색이나 붉은색이 아니었고 그냥 음식물과 침이 섞인 정도여서 큰 문제는 아닐 거라고 아빠한테 들은 대로 엄마를 안심시켰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엄마는 몇 시부터 토를 했는지, 정확하게 몇 번을 토했는지, 대소변은 잘 보는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기억을 더듬어가며 엄마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가는 동안 왜곡된 기억의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토한 횟수는 세 번이 넘었고, 대변도 여러 번 보았고, 계속 누워만 있었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혹시나 우리 강아지가 죽을 병에 걸린 건 아닐까?


"정치가 밥 먹여줘!"


이윽고 엄마는 왜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는지 화를 냈다. 그 순간 무기를 모으는데 급급해 강아지를 챙기지 못했던 나의 안일함과 아무 일도 아니라며 대충 넘기려 한 아빠의 무성의함이 원망으로 되돌아왔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아무 일도 아니었던 들이 엄마의 청문회를 거치면서 뭔가 큰일이 되어버리는 오묘한 상황과 우주의 기운이 당혹스러웠다. 아빠와 나는 다음날 꼭 가겠다고 몇 번을 다짐하고 나서야 엄마의 잔소리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음날도 이런저런 이유로 아빠와 나는 동물 병원에 가지 않았고 다시금 엄마는 잔소리를, 아빠는 천연덕스러움을 무기로 전쟁을 치뤘다.


상황에 대한 개인마다의 인식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극한은 되려 가까운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 엄마는 짜증이 많고 화도 많지만 눈물도 많았다. 엄마는 모르겠지만 일상을 바라보던 당신의 일기장에도, 자주 듣던 노래 가사에도, 좋아하던 영화에도, 책장 속 페이지 마다에도 그 자욱이 있었다. 싸움닭처럼 독불장군처럼 굴던 엄마지만 가끔 혼자서 멍하니 앉아 화이트 와인잔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지금도 생소하다. 그럴 때면 큰 문제는 아닐 거라고 엄마 옆에서 까불고 장난치다 '엄마도 좀 쉬자'라며 짜증 내는 말투에 기가 죽었던 기억이 되살아나 말을 건네길 멈칫하게 된다. 엄마는 우울증이었을까? 엄마는 나에 대해 확신에 차있었고 자긍심 가득했고 당당하라 했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라 했고 훌륭하게 될 사람이니 시간을 함부로 쓰지 말라고 했는데, 왜 엄마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며, 영화를 보며 어렵고 힘든 시간을 혼자 고민하며 보내려고 했을까? 엄마는 내 미래가 걱정되었던 걸까?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를 잘 모르겠다. 엄마도 엄마 자신을 잘 몰라서 그렇게 화가 났던 걸까?



p.s 나는 이 아이의 엄마다.


#엄마의일기 #아이의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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