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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예서 Mar 30. 2023

어쩌다 다시, 수영

나의 수영시대

초등학교 4학년 때, 등굣길에 넘어져서 양쪽 팔에 통깁스를 한 적 있다.

어딜 가든 쏟아지는 시선과 생활할 때의 불편함 등 두 팔이 부러진 건 분명 큰 시련이었지만 

사실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아니, 오히려 짜릿한 해방감을 선사해 줬다.

부모님 등살에 억지로 다니던 수영을 이상 배우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1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아직도 나는 수영장에 전화해 팔이 부러져 이상

수영을 나간다고 전했던 그날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제 이상 수영을 가지 않아도 된다니! 두 팔이 부러져도 좋은 게 있구나 싶었다.


수영과 나의 악연은 평영을 배우면서부터 시작됐다. 다른 또래 친구들에 비해 진도가 많이 늦었던 나는 자유형과 배영을 배울 때도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억지로 배웠었다. 그런데 엉성하게나마 자세를 취하고 앞으로 헤엄쳐 갈 수 있었던 자유형, 배영과 달리 평영을 만난 순간 넘을 수 없는 큰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평영은 개구리처럼 양팔과 두 발을 오므렸다가 펴는 영법으로, 주로 추진력을 발차기로 얻기 때문에 킥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두 다리를 쭉 편 상태에서 무릎을 굽혀 엉덩이 쪽으로 발을 가져오는 게 평영 킥의 1단계,

발이 엉덩이 쪽에 왔을 발목을 바깥쪽으로 돌려 발목과 무릎을 밖으로 벌리며 개구리처럼 차는 게 2단계다.

그런데 아무리 써봐도 발목은 바깥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밖에 나와 W자 앉기 자세부터 해보는데, 발목이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돌아가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편하게 앉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나는 발목이 완전히 돌아가지 않아 엉덩이가 바닥에 닿지도 않는 어정쩡한 자세가 되었다.


물 밖에서도 안 되는 자세가 물 안에서 될 리가 없으므로 내 평영 발차기는 누가 봐도 형편없었다. 

날 가르치던 수영 선생님은 숏컷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톰보이 스타일의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내가 평영 발차기를 할 때마다 발목을 돌려 차라고 무섭게 혼냈으며 급기야 짜증까지 냈었다.

50분 내내 혼나 잔뜩 기죽은 채 집에 돌아온 나는 가족들과 함께 연습까지 해봤지만, 여전히 발목은 바깥으로 돌아갈 기미가 안보였다.

내가 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 엄마가 직접 나서 선생님과 따로 면담까지 했지만, 뒤로도 선생님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는 거 없이 여전했다. 그 당시 나는 감기라도 독하게 걸려 수영 강습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이런 간절한 마음을 신이 눈치챈 건지 두 팔 골절이라는 아주 강력한 핑곗거리를 내려주셨다. 그렇게 수영에 큰 트라우마만 얻게 된 나는 '내 인생에서 수영은 영영 안녕이다!'를 외치며 

쿨하게 수영과 이별했다.


그런데 이런 내가 올해 2월 초 수영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몸무게의 변화가 있었다고 답해야겠다.

여행 가서 친구가 찍어준 사진을 보는데 전날 라면을 먹고 밤을 새운 사람처럼 퉁퉁 부어있는

얼굴과 가슴보다 나온 같은 배를 보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수강료가 비싸지 않으면서 접근성이 좋고 땀쟁이인 내가 땀을 많이 흘러도 티가 나지 않는 운동을

찾다 보니 그 많았던 운동 후보 중 수영 하나만 남게 되었다. 수영에 안 좋은 추억이 있던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그렇게 물을 무서워해서 어릴 때 바닷가에 가면 돌만 던지며 놀던 동생이

수영을 재미있게 배우는 걸 보고 자신감을 얻어 그날로 바로 동생과 같은 반에 등록해 버렸다.


요즘 나는 주 3회 아침 8시 수영을 꼬박꼬박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말에 자유 수영까지 하는 진정한 '수영 덕후'로 거듭나는 중이다.

운동 신경이 없고 뻣뻣한 몸치라 내 몸이 수영의 모든 걸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기특하게도 몸은 15년 전에 배운 1간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었다.

물 안에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음-파-음-파 숨 쉬며 발차기를 하고 팔을 휘젓는 모습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내 적응이 되니 어느새 물에 자유롭게 몸을 맡길 줄 아는 여유까지 생겼다.


어릴 때 혼났던 기억 하나로 스스로를 '수영 못하는 사람'으로 정의 내렸고,

내가 생각한 내 모습에 맞춰 물을 멀리하며 살았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수영을 해보니

여전히 어설프긴 하지만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있었다.


동안 내가 나를 어떤 사람이다 라고 쉽게 규정짓고 모습에 맞춰 사느라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았던  아닌가 싶었다.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쉽게 판단짓기 보단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를 떠올리며 끝없이 도전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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