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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 Sep 12. 2021

혹시 이거 우리 손잡은 거예요?

나는 표정에 수백가지 감정이 드러나는 사람인데 표정없는 사람을 만났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그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는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처음 만날 때나 대화를 나눌 때 그들의 입가와 눈가에 미세한 떨림과 나를 마주하는 눈빛의 온도로 나에 대한 호감도를 읽곤 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처음 만나고 함께 대화를 나누던 그 시간에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단순히 읽을 수 없던데 아니라 내가 읽은 그의 무덤덤한 그 모습 그대로 나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 보였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일반적인 예의상 호기심 같은 주제의 대화를 나눴고 한국인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치킨에 맥주 조합으로 저녁시간을 보냈다. 맥주 반 잔정도 넘길 즈음에 그는 나에게 물었다. 이번 주말에 뭐하세요? 깜짝 놀랐다. 예상치 못한 전개. 이렇게 무덤덤하게 나를 바라보고 무덤덤하게 애프터 신청을 하려 한다고? 내 마음속 생각은 이랬다. 내가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 섹슈얼한 이유인걸까? 어쩜 진심이 안 느껴지는 거지? 보통 남자들은 사랑스러운 눈빛, 호감의 눈빛, 내 마음은 너를 향하고 있다는 그런 확신에 찬 눈빛과 제스처로 나에게 추파를 던지고자 했었다. 물론 내가 기존에 알고 있는 방식 외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시작하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존중한다. 다행히도 나는 이런 새로운 방식에 어느 정도 믿음은 있다. 섣부른 판단 이전에 그를 겪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주 솔직하게 나의 스케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시간에는 그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남자로서 친구로서 궁금한 점을 다 풀어내기 이전이었고 내심 빠른 애프터 신청에 고마웠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갔고 술을 잘하지 못하는 나는 맥주 두 세잔에 금세 빨개졌다. 그는 산책을 좋아하냐 물었고 우리는 강남에서 잠실, 석촌호수로 넘어갔다. 살짝 술기운에 빠르게 뛰는 심장이 안정을 찾아가려 노력할 즈음에, 더운 여름의 열기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과 함께 코로나 비상사태에 불 꺼진 롯데월드를 바라보며 산책을 즐겼다.


 무더운 밤에 열 많은 그, 어디서 손이 정말 손난로 같다는 이야기를 빼먹지 않는 나. 아무렇지 않게 서로의 팔과 손의 온도를 재는데 그는 내 손을 쥐었다. 살짝 헷갈렸다. 온도를 꽤 오래 잰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그의 표정은 단 하나의 변화도 없이 미소도 없이 이야기도 없이 그저 손과 손을 물리적으로 잡았을 뿐, 감정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손을 빼야 할까, 온도를 잘 느껴보았다고 말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십분이 더 지났을까 대화를 하는데 내 머릿속 신경은 온갖 손에 집중이 되어있었다. 그저 우리가 나눈 대화에는 의미 없는 아니 지금은 기억에도 없는 공감을 해줬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잡은 이 손에 대한 확실한 상태를 알고 싶었다. 나는 곧 물었다. 혹시 이거 우리 손잡은 거예요? 그는 이내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렇다고 했다. 나는 웃었다. 그는 여전히 무덤덤하게 나를 바라봤다. 이제서야 제대로 느꼈다. 나에게 호감인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오랜 산책을 하다가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 가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향에 대해 이야기를 건넸다. 향수 냄새가 좋아요.   나게 신난 그는, 내내 무덤덤하게 대화를 나누던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조금은 안면의 근육이 풀린 듯이 총명한 눈으로 패츌리 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호감이 느껴졌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장 좋아하던 패츌리 향을 그가 가장 좋아한다니. 또한 향에 대해 얼마나 지적이던지 역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때에 가장 멋있고 빛나 보인다. 덕분에 다음 만남이  기대가 되었고 설레지기 시작했다. 어느 덧 달라진 내 마음의 가짐과 함께 대화를 마치고 벤치에서 일어나는데  손을 다시 잡더라. 나는 마스크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잡은  손을 신나게 흔들며 산책했다.  시간의 의미가  가득해졌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산책한 우리에게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아쉬움은 다음번 만남에 설렘과 기대 그리고 즐거움을 주기 마련이다. 분명했다. 나는 조금 더 쿨한 여자, 다른 여자이고 싶었다. 여전히 무덤덤한 그가 웃는 모습,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싶었다. 각자 돌아가는 길, 그의 버스 정거장이 먼저 보였다. 몇 분 남지 않은 버스, 나는 기다려주겠다고 했고 조금 더 같이 있고 싶다며 지하철 기다려주겠다며 다음 버스를 타고 가겠다는 그를 말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타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앞에 섰다. 물론 나도 아쉬웠다. 그리고 나에게 호감을 표현해준 그에게 감사했다. 그를 기억하고 싶었고 그리고 나를 더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앞에 유리에 비추는 손잡은 우리의 설레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아직은 어색해 보였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반찬 위에 앉은 파리를 보며 이해해주는 것 마냥 무덤덤했다. 잡고 있던 한쪽 손을 끌어당겨 그렇지 않은 그의 다른 손을 붙잡았다. 마주보았고 그의 손을 내 어깨 위로 올렸다. 그렇게 우리는 안았다. 그리고 나는 꽉 끌어안았다. 그의 눈을 올려다보진 않았다. 그의 마음을 상상해 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일이니.


 이내 버스가 도착했고 그를 버스에 태운 뒤 지하철을 향하며 그에게 ‘오늘 너무 재미있고 즐겁고 그랬습니다’라는 메세지를 남겼다. 그도 기쁘지 않았을까? 설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괜스레 뿌듯했다. 그리고 곧장 ‘저두 좋았습니다. 오래 보면 좋겠습니다.’ 와 덧붙인 ‘우리는 하나야’ 쓰여진 이모티콘.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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