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의 순수한 목적과 시행에 대해서
우리 사무실의 이야기다. 이해하기 쉽도록 교실의 이야기로 각색했다.
우리 학교는 수업이 08시 30분에 시작한다. 하지만 등교는 08시 10분까지 해야 한다. 우리 반은 담임선생님이 조례를 하지 않아 사실상 30분까지만 오면, 지각처리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조례의 여부와 지각의 연관성을 나는 찾을 수 없다.), 8시 10분에서 30분 사이에 등교하는 학우들이 가끔 생겼다. 그런 날엔 일일반장은 담임선생님께 반 아이들이 등교했다고 허위보고를 해야 했다. 그리고 다른 학생은 오지 않은 그 학생의 방(기숙사 1인 1실)에가 깨워야 했다. 아직까지는 종종 이랬던 사실을 담임선생님한테 걸리지 않았지만 꼬리가 길어지면 언젠가 걸릴 수 있으므로, 반 아이들은 지각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에 목소리를 모았다. 누군가 지각한 것을 걸리면, 그 학생은 벌점을 받고 혼날 뿐 아니라 학급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학급회의를 한 결과, 지각하면 다음날의 칠판, 우유, 수업준비 등의 모든 당번을 도맡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나는 이 규칙이 지각을 억제할 만큼의 처벌이 크지가 않다고 생각했고, 처벌이 더 커야 한다기보다는 걸릴 가능성도 적고 특정 사람이 반복하며 일부러 지각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주의였지만, 어쩔 수 없이 다수결의 원칙을 따랐다. 참고로 나는 지각한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지각자가 거의 없어졌지만, 이후에는 예전과 비슷하게 지각자가 다시 나타났다. 학급규칙에 따라 지각자는 그날의 당번을 도맡아 했고, 다른 학우들은 그는 당번이라는 학급규칙을 따랐으므로 그가 지각한 것에 대해 비난하거나 하지 않았다. 또한, 다행히도 담임선생님한테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처음으로 지각한 날, 담임선생님한테 걸렸다. 그날은 다른 친구들이 나를 깨우러 갈 필요도, 일일반장이 담임선생님한테 허위보고를 할 필요도 없는 날이었다.(그냥 받아들이자) 나는 담임선생님한테 혼나고 벌점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 당번표에 나의 이름만 적혀있는 것을 보고, 나는 불만을 제기했다.
"나는 혼나고 벌점까지 받았는데 당번까지 해야 해?"
모두가 놀란 듯이, "당연한 것 아니야?"
나의 주장
나의 생각은 이러했다. 먼저, 나는 내가 행한 한 가지 행위에 대해 두 가지 처벌을 받은, '이중처벌 금지원칙'에 위배되는 처우를 받은 것이었다. 이것은 단지 친구들에게 내가 이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선택한 가장 직관적인 표현이었고, 나의 깊은 생각은 다소 이질적일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학급규칙을 제정하게 된 이유는 지각을 방지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는 걸리지 않는 지각이 되풀이되는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지각을 했는데 걸리지도 않고 처벌이 없으면, 쉽사리 또 지각을 할 것이므로. 내가 학급회의를 할 때 동의한 것은 '걸리지 않는 지각'에 대한 처벌이었다. 애초에 '걸린 지각'은 벌점과 혼남이라는 큰 처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지각이 걸렸다면 지각자가 빈번히 생길 일도 없었을 터, 따라서 학급 규칙의 목적(Arete)은 오직 '걸리지 않는 지각'을 예방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사실 지각은 불수의의 영역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하기에 처벌과 지각의 연관성도 잘 모르겠다.) 이미 누군가 지각이라는 행위를 행한 순간, 그 학급규칙은 그에게 목적은 이루지 못한 규칙이 된다. 처벌은 본보기를 보여줌으로써 그날의 지각자를 포함해 잠재적인 지각자의 행위(재발)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나는? 이미 '걸린 지각'에 대한 규칙으로 인해 처벌을 받았고, 다른 이에게 지각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도 주었다. 나에게 학급규칙으로 인한 처벌은 행해져야 하는가? 정당성은 뒷문제고 일단은 행해져야 한다면, 그 규칙의 순수한 목적에 대해서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친구들의 주장
우리는 '걸리지 않은 지각'뿐 아닌 '걸린 지각'을 포함한 '지각'에 대한 처벌을 정한 것이었다.
이중처벌의 문제가 아닌, 이것은 우리끼리의 약속이다.
네가 당사자여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 규칙은 지각 예방이라는 목적이 있지만, 지각한 것에 대한 공동체의 피해를 당번을 해줌으로써 다른 친구들에게 보상해 주는 목적도 있다.
나의 반박
걸린 지각은 이미 처벌이 있는데, 여기에 새로운 처벌을 더할 필요가 있었는가.
그래서 나도 이 규칙을 따르긴 했지만, 나는 이가 바람직한 대우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그것은 규칙을 만들었을 때, 생겨난 부수적인 기능이다. 예방을 위해서 규칙을 정했지 보상을 위해서 정한 것은 아니다. 다른 처벌이 이루어졌기에 시행하지 않는다 해서 본래 목적을 잃을 가능성(본보기를 보여주지 않아서)도 없는, 목적을 잃은 그 기능으로서의 그 참된 의미가 있는 것인가.
결론은 물론, 나의 패배다. 혼자서 많은 이의 주장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토론(?)을 나눈 것은 당번을 한 뒤였다. 내가 원했던 것은 당번을 안 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한 당번은 다른 이들의 했던 당번과 달리 의미가 없는 행위였음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영혼이 따르지 않는 행위에 대한 나의 저항이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