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9일.
어딘가에 날짜를 기록할 때, 연월일 세 자는 한자로 적는다. 어렸을 때 한자를 꽤나 열심히 익혔었는데, 月(달 월)의 뻣어가는 첫 획과 절도 있게 꺾이는 두 번째 획의 그 기분 좋은 느낌을 날짜를 쓸 때라도 떠올리는 것이다. 최근에는 숫자까지 한자로 쓰는 것을 시도했었는데, 기초 중에 기초인 '일곱 칠(七)'자가 기억나지 않아 스스로의 기억력에 충격을 받고 년월일만 한자로 쓰기로 다짐했다. 반면에, 위대한 한글을 창조하신 세종대왕께 대한 반성으로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날짜를 적을 때는 순우리말로 적는다.
아침에 어디를 다녀오는 길에 비를 맞았다. 설마 비가 올까 의심했으면서도 어깨에 500g 정도의 부담을 더 주는 것이 싫어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이에 대한 벌로 편의점에서 일회용 우산을 사지 않고, 그냥 맞았다. 우산을 쓰지 않기에는 빗줄기가 굵기는 했지만... 또한 손이나 가방으로 얼굴과 머리를 가리는 등의 비를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 당당히 죗값을 치렀다.
연세대학교 서문의 한 스터디카페에 와있다. 사실 살면서 스터디카페는 처음인데, 조용하고 분위기 좋은 이곳 좀 마음에 든다.
요즘 독서를 꽤나 열심히 한다. 주변에서는 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책을 엄청 많이 읽은 줄 아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책을 열심히 읽은 삶의 순간순간은 있긴 하지만, 평생을 밥 먹듯이 책을 읽지는 않았다. 청소년 필수도서(?)인 그리스로마신화나 삼국지도 읽어보지 않았다. 관심 없는 분야의 지식을 얻고자 책을 읽는다면 금방 지쳤겠지만, 관심 있는 것에 대한 책을 읽으니 꼬리를 물고 물고 계속 다른 책을 찾게 되더라. '인간의 본성'에서 시작하여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거쳐 '공정하다는 착각'까지 왔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기자가 생겼다. 나의 이전 포스트를 봤다면 알겠지만, 남형도 기자님이다. 그분의 뜨끈뜨끈한 새 포스팅이 기다려진다.
아! 좋아하는?, 나랑 생각이 비슷하다기보다는 나에게 위로를 주는 철학자도 발견했다. '장 자크 루소'이다. 그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읽다가, 이 글을 담고 있는 책에 그의 다른 작품인 '고독한 몽상가의 산책'까지 읽게 되었는데 나에게 큰 위로와 공감이 됐다.
서울대학교 교수님들한테 빠졌다.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서울대 교수님의 강연을 듣게 됐는데, 어찌나 재밌던지. '샤로잡다'나 '유퀴즈'에 나온 교수님들을 모두 찾아봤다. 물론 모든 교수님들이 이렇게 재밌지는 않겠지만, 재밌는 교양수업에 수강신청을 시도라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서울대 학생들이 처음으로 부러웠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내가 과연 한 가지 직업만으로 평생을 살게 될까. 미래의 나에게 묻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10년 정도만 하고,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는 기자도 하고 싶고, 교단에도 서보고 싶다. 작게는 마케팅팀에 들어가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발표도 해보고 싶고, 노년에는 역사나 문화재를 열심히 공부해서 박물관 큐레이터도 해보고 싶다. 직업을 바꿀 때마다 아마 땅으로 꺼질 월급을 생각하면 이런 꿈을 자연스레 접게 되는데, 부양해야 할 가정 없이 혼자 산다면 하고 싶은 일하면서 사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직장에 정이 떨어지는 것은, 조직의 발전에 나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때랑 조직 안에서 내가 성장할 수 없다고 느낄 때인 것 같다. 이제는 직책이나 계급에서 오는 Hard Power보다는 자발적 복종인 Soft Power를 더 중요시 여겨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없네.
외로움을 느낀다. 나의 넘치는 생각과 감정을 전부 털어놓을 수 있는 플라토닉적? 대상이 없다. 지금 이 글에 연관성 없는 생각들을 줄줄이 나열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친구들도 처음에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이제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헛소리를 하면 대놓고 "퇴근하고 싶다"며 화제를 전환한다. ㅋㅋㅋㅋ 생각을 마음속에 묵히기 시작했다.
어제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는데, 건대입구역에서인가 누가 봐도 연세가 있어 보이시는 노년의 부부가 플랫폼을 건너 탑승하셨다. 할머님께서는 빈자리에 앉으셨는데, 할아버님은 빈자리가 없어서 봉을 잡고 서 계셨다. 그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다리가 아프다던지, 멀리서 왔다던지, 수 십분 기다리다가 방금 막 앉았다던지 각자 사연이 있겠지만, 또한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의무는 아니지만, 모두가 외면하는 것을 보고 세상의 삭막함에 충격을 받았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내가 "할아버님 여기 앉으세요." 하며 자리를 양보해 드렸다.
나는 자리를 양보해 드릴 때, 보통 "여기 앉으세요"같은 말은 안 한다. 대게 내 주위에 계신 분께 양보해 드리는 것이므로 내리는 척하며 그냥 자리를 뜬다. 구두로 자리를 권했을 때 생길 수 있는 그분의 사양은 피하면서, 자리는 드릴 수 있는 나름의 최선이랄까. 할아버님께 자리를 양보해 드리고, 할머님 앞에 섰는데 "청년 고마워요"라고 (큰 목소리로) 칭찬을 해주시는데 주위에서 다 쳐다봐서 홍당무가 됐다. 할머님 옆 자리가 비어 앉아 할머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할아버님은 91세의 고향은 안동, 할머님은 86세의 고향은 예천. 입맛이 없어 강변에 있는 최애 해장국을 드시러 간다고 하신다. 나이도 많이 먹고 해서 이제는 죽어야겠다고...
"아니에요, 할머님!!!! 아직 정정하세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우리 사랑하니까 이제 그만 헤어지자." 한 번도 이 말은 써본 적은 없지만, 이 말이 이해가 간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은 대한민국인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암울한 대한민국의 미래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려져 마음이 아프다. 누구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아는데,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다니... 소도시가 사라지고, 학교가 폐교하고, 미래의 청년들은 엄청난 복지의 부담을 안게 되고, 국방력도 감퇴하고, 이를 보자니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아 그냥 섬나라로 도망가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