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겨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라고 합니다. 아직 11월 중순도 안 됐는데 영하의 날씨로 떨어진 것을 보면, 가을이 체감상 더 짧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또, 이번 10월은 저에게 중요하고 유독 바빴던 달이었기에 (핑계지만) 아쉽게도 독서와는 거리를 둔 채 가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을을 넘어 겨울까지, 독서의 계절로 하자고요. 가ㅕ울은 독서의 계절.
9월 중순이었던가, 직장에서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강사를 초빙해 자살예방교육을 진행했다. 이런 단체강의는 모두가 귀찮아하고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기 마련인데, 나는 당시 '죽음'에 관련된 책들을 관심 있게 읽고 있었기에 예전에도 몇 번은 들었던 강의지만 그날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강의 중간에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내가 대상자들 중 가장 선임이었기에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료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지금 설명하고 계신 내용과는 크게 상관은 없지만, 질문이 있습니다."
"무언가요?"
"자살예방 교육에 앞서 왜 자살을 하면 안 되는지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강사분께서 당황한 모습이 언뜻 보였다. 사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다음의 구절을 본 뒤로 죽음에 대해 무조건적인 부정적 인식은 사라졌다.
"죽음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인지 아닌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마치 죽음을 잘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죽음을 최대의 불행으로 생각하여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알지 못한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무지가 아니겠습니까?"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中-
“정화(正化)란 영혼을 육체의 모든 부분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가능한 한 완전히 혼자서 살도록 영혼을 벗어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고 벗어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플라톤 『파이돈』 中-
물론, 난 죽을 생각도 전혀 없고, 지인이 자살을 생각한다면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말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 고인이 된 사람에게 그 선택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그런 질문을 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죽음이 선인지 악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만약 죽음이 악이라면 저희의 인생은 악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요?"
"... 주위의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힘들지 않을까요?"
"타인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 본인의 불행은 감내해도 된다는 것인가요?"
"그건 아니지만, 윤리적으로 잘못됐으니까요."
"그럼, 안락사는요?"
"외국에서만 가능하죠."
"자살이 안 되는 이유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인가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요."
자살을 하면 안 되는 이유, 나도 알고 있긴 하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도덕형이상학 정초', '시지프 신화' 등의 책을 보면 그 이유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한 것이지 마음으로 이해한 것은 아니어서, 질문을 한 것이었는데 현명한 답을 듣지는 못했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하기 무섭게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운 후배가 자살을 했다. 그의 빈소를 찾았다.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눈물을 적게 흘리는 것과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뿐이었다.
이틀 전이 생일이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 없이 메시지로만 축하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한데, 기프티콘을 같이 보내주시는 분들도 더러 계시다. 무엇을 주시든 마음만으로도 감사하긴 하지만, 보내주시는 분에게는 고민의 스트레스를, 나는 쓸모 있는 선물을 받고자 작년부터 위시리스트에 상품을 올려두기 시작했다. 평소에 책을 빌려 읽는 편이나, 이번에는 읽고 싶거나 소장하고 싶은 책들을 여러 권 올려놨다. 좋아하는 책을 소장하다가 누군가에게 빌려주는 것도 정말 큰 기쁨이더라. 그랬더니 그 책을 직접적으로 선물해주시기도 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선물해주시기도 하며, 교보문고 기프트카드도 꽤나 보내주셨다. 치킨 기프티콘 받는 것보다 개인적으로 어찌나 좋던지, 스타벅스 기프티콘과 같이 활용하면 제법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오늘 오전부터 교보문고로 향해, 빌려서 읽어도 좋을 책이 아닌 읽고 싶으면서도 갖고 싶은 책 세 권을 구입했다. 기분이 좋다. 더 좋은 것은, 아직 세네 권은 더 살 수 있는 금액이 남아있다는 것. 드디어 독서의 계절을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