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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Feb 24. 2022

죽어서도 살아있는 행위를 보고 있다




구층암은 치열하다. 곧은 물푸레나무가 계곡 암반을 끌어안고 암자는 알 수 없는 강한 생명력으로 겁박한다. 천년 세월을 견디다 꽃이 되어버린 암자. 눈에 들어오는 건 애잔한 3층 석탑뿐이다. 칼날처럼 매서운 눈바람 속에서도 경건하게 서 있다. 몇 발자국 앞으로 다가가 발걸음을 멈춘다.


얼마나 잔인한 역사와 마주했기에 이렇게 처참한 몰골로 부처 앞에 서 있는가. 얼마나 더 감당할 수 없는 세월을 견디어야 하는 걸까. 깨지고 금 간 곳곳마다 슬프다. 날 밝은 대낮에는 차마 볼 수 없을 것 같은 석탑을 흰 눈은 꼬깃꼬깃 틀어진 지리산의 상처를 곱게 덮어 주고 있다. 참 조화롭고 아름답다. 그냥 어루만지며 천 년을 느껴본다. 온몸으로 버티고 서있는 모과나무 두 기둥이 요사채를 머리에 이고 있다. 돌을 품고 화석이 되어버린 모과나무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그 자리에서 천 년을 살다가 혜안 깊은 목수의 간절함에 암자의 기둥으로 공양물이 되어야 했던 우리가 알지 못한 화석 같은 전설이 있는 것일까.


이 깊은 산중에 심어 놓은 화엄의 본질은 무엇일까. 하나가 모든 것이니, 모든 것이 하나에서 오는 일체의 우주 사상.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소중하고 그 역할이 평등하다는 화엄의 진리를 되새기며 요사채를 받치고 있는 모과나무의 상서로움 앞에 죽어서도 살아있는 행위를 보고 있다.


★ 힐링의 숲지기


구층암은 지혜의 등불을 밝혀온 천 년 가람 화엄사(전남 구례군) 대웅전을 뒤돌아 약 300m 정도 올라가면 있습니다. 일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소소한 것들까지 털어내는 곳입니다. 가만히 숨죽이고 구층암 요사채 모과나무를 안아 봅니다. 내 안에 숨겨둔 미소가 사르르 피어납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미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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