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영화
'the zone of interest', 말 그대로 '이익의 영역'. 유대인의 피와 살로 지은 집을 지상낙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 작품을 처음 알게된 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였다. 손을 덜덜 떨며 수상소감을 읽어내려가던 스태프 분들의 모습이 선연하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는 별다른 내용이 없다. 독일 장교 집에 큰 일이 있는 게 더 이상하다. 흩날리는 연기와 빗발치는 총성은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회스의 가족은 수영장에서 신나는 하루를 보낸다. 묻고 싶다. 수용소 옆에서 살고 싶냐고, 살 수 있냐고 진심으로 묻고 싶다.
인상적인 게 몇 가지 있었는데 1. 열화상 카메라로 연출한 장면, 2. 헤트비히 엄마의 태도, 3. 한 가지 색으로 물드는 장면들, 4. 회스가 본 것, 5. 음향 이다.
1. 회스가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줄 때에만 등장해서 뭐지 싶었다. 찾아보니 감독이 사전조사 중에 만난 폴란드 여성의 경험담을 토대로 썼다고 한다. 밤마다 유대인들의 호송 루트에 과일을 놓아두었고, 후에 폴란드 지하국에 가입해 반군과의 메세지 전달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2. 처음 헤트비히 집에 왔을 땐, "집안에 유대인 아이들을 들이는 거야?"라고 퉁명스럽게 묻던 사람. 불바다가 된 수용소를 바라보다 떠나버린 사람. 분량은 적지만 나에게 가장 임팩트있는 인물이었다...라고 해석하고 싶었지만 감독이 이에 관련해 인터뷰한 게 있어 가져왔다.
"그건 단지 너무 가까이 있어서에요. 그녀(할머니)같은 사람에게 스테이크를 세인즈베리에서 사느냐, 도살장에서 사느냐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 스테이크가 어디에서 나온건지 알고 있지만, 그 소가 도살되는 걸 직접 보거나, 그 (죽는) 냄새를 맡거나, 당신 신발에 피가 묻는 걸 결코 원하지 않죠.... 양심의 가책도, 속죄하는 것도 없어요. 이 영화에는 구원이(개입될 요소가) 없습니다. 그럴 수도 없고요. 이 등장인물들은 시작한 방식 그대로 끝을 맺을 겁니다. " (출처-https://theqoo.net/movie/3269459266)
3. 꽃을 보여주다 빨갛게, 군인을 보여주다 하얗게, 회스를 찍다 까맣게 변하는 화면들. 정원의 꽃들은 희생자들의 붉은 피로(정확히는 그들로 비료를 만들었다.) 자랐다. 희생자들의 목소리는 허공으로 흩어져 '무'의 상태로 도달한다. 회스는 자신을 집어삼킨 '흑'을 알지 못한다. 때문에 현재 수용소에서 회스로 이어지는 연출도 마음에 들었다.
4. (3에 이어) 나는 회스가 보지 못한 것을 우리가 보았다고 생각한다. 셀 수 없는 가스실과 신발들. 없어져야 할 것들이 보존되어 당신을 영원토록 괴롭히는 광경이 우습기만 하다. '승리'뿐이 없었던 독일인들을 '회스'를 통해 보여준 것은 아닌지 예상해 본다.
5. 내내 깔리던 비명과 총성, 헨젤과 그레텔, 열화상 카메라, 소름끼치게 뾰족한 음악. 정점은 엔딩 크레딧이었다. 타들어가는 사람의 형상이 보인다. 울부짖는다. 음악에 압도당해 엔딩크레딧을 다 보고 나온 건 처음이었다.
후기 쓰면서 느낀 점: 1. 아는 만큼 보인다. 여러가지 찾아보면서 썼는데 한 번 씩 헉! 하고 놀란다. (positive)(더 찾아 봐야지) 2. 다시 보고 싶다. 한 번으로는 부족한 불친절한 영화. 생각하게 하는 좋은 영화. 3. '제 3자'는 꽤 나약하다. 전쟁 영화가 따분하다 할 만큼. 회피, 외면, 내 일이 아니라서?
영화를 보고 포스터를 보니 스포가 가득하군. 작년에 이 영화 좋아하는 친구와의 약속이 어그러지고 속상했는데,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 이걸 놓칠 순 없지. 몇 번의 시도(?) 끝에 함께 관람 완! 처음에 살짝 졸았는데 안된다 안돼....하고 집중 뽝 했다. 첫 관람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폴이 엄마가 아빠에게 가정 폭력 당하는 모습을 매혹적인 레슬링으로 표현하는 장면(주관적인 해석을 덧붙이자면, 주인공이 한 번 더 왜곡을 한 것으로 보았다. 그렇게 기억해야 어린 시절의 폴도, 지금의 폴도 편할 것이니.), 폴을 피아니스트로 키울 생각이 없던 엄마가 폴에게 불러주는 노래, 수미상관으로 끝나는 영화도, 우쿨렐레로 이어지는 프루스트와 폴의 인연까지. 따뜻한 기억이 우러나는, 마담 프루스트의 차 향이 폴폴 난다.
+) 포스터 보고 생각해본 나의 '생애 첫 기억': 너무 더러워서 말 못함. 이상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더러움. 말 못함. 누군가를 지켜줘야 함. 말할 수 있는 기억 중에 골라보자면 유치원에서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준비해주셨는데 산타(는 분장한 체육선생님)가 오심. 내가 눈치없이 체육 선생님!!!! 이라고 하는 바람에 주변 애들이 모두 알아버림. 당황하신 체육 선생님 허허 너털웃음 지으심. 죄송해요 쌤!
+) 영제가 '아뜰리아 마르셀'인 이유.
+) 그나저나 남주 1인 2역 재밌다. 아버지일 땐 마초(+나쁜 놈), 폴일 땐 숫기없는 인간 그 자체.
우아 드디어 감정 친구들 영접! 시험 전 개봉이라 끝나고 안하면 어쩌지 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결론: 인사이드 아웃2 너무 재밌다.....1편보다 좋았다....엉엉.......라일리처럼 안 좋은 쪽으로 시뮬레이션 돌리고 불안과 살아가는 사람이라 공감하면서 봤다. 불안이가 어쩔 줄 몰라하며 급발진할 때 참았던 눈물 왈칵. 얘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랬구나. 잘하고 싶어서 부정적인 경우를 떠올리고 대비했구나 싶었다.
"어른이 되는 건 이런 거구나. 행복이 줄어드는 거."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 친구가 "우리 모두 행복이가 감정의 주인이었을 때가 있었겠지?" 하고 말했다. 있었다. 유치원 시절엔, 튀기는 모래만 봐도 꺄르르거렸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슬픔을 베이스로 살아온 시간이 더 많다. 슬픔이 원동력이 되는 때도 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너무 하기 싫고 혼란스러워서 몇 번 울면 마음을 다 잡고 하게 된다. (내 생각엔, 나는 슬픔이 다른 감정들과의 매개체라는 생각도 든다.) 여러 감정을 겪으면서 새로운 자아가 자라나고, 어디에도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있는 나는 없다. 행복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 불안이, 부럽이, 따분이, 당황이, 나는 나의 모든 감정을 사랑해. 설령 그게 남들과 다른 감정이래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