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번째 책(1번째 단편)
오랜만에 책을 읽을 시간이 생겼다. 그럼 책을 읽어야 마땅하지. 책장을 둘러보다 반가운 아이를 집어 들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 문예창작과에 다닐 때, <일의 기쁨과 슬픔>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으로 수업을 했었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제목을 뭐 이리 고리타분하게 지었나 싶었는데 다 읽고서 이것만큼 어울리는 제목은 없을 것이라며 인정해버렸다. 물건을 끝없이 환불을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그래도 그렇지 보너스를 사내 보너스로 주는 회사가 어딨어요! 뭐 아무튼...책 한 권을 다 읽기는 무리이니, 단편 하나를 골라 이거 하나만은 다 읽고 가자 다짐했다. 특이한 방법으로 단편을 골랐는데, 제목만 봤을 때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고르는 것이다. 그래서 고른(?) <다소 낮음>. 기온 이야기를 하는 건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싶었는데 초장에 냉장고가 나오면서 싱겁게(?) 풀려버렸다.
주인공 장우는 일명 <냉장고송>으로 히트를 친 인디 가수이다. 평소처럼 노래를 지어 유튜브에 올렸을 뿐인데 그것이 사람들에게 통한 것이다. 조회수는 계속 늘어가고, 유명 엔터테인먼트사의 수많은 영입 제의를 받는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유미는 장우가 이미 성공한 스타 마냥 공연을 가려받기로 한다. 이 모든 상황이 장우에게 떨떠름하기만 하다. <냉장고송>은 얻어걸린 것이고, 앨범에 기승전결이 있다고 믿어 아직도 풀 앨범을 들으니 말이다. 장우는 자신의 신념과 타협하지 못한 채로(계약을 성사하지 못한 채로) 집에 돌아오다 동물 병원 안에 있는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한다. 덜컥 강아지를 사가지고 들어온 장우가 죽도록 못마땅한 유미는 짐을 싸서 나가버린다. 장우는 유미도, 자신을 구한 강아지도 지킬 수 없게 된다. 강아지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뒤늦게 자신에게 영입 제의를 했던 엔터테인먼트에 찾아가지만 이미 물 건너간 뒤다. 동물병원으로 돌아온 그가 마주한 건 눈을 뜨고 죽은 강아지다. 강아지의 유골함을 들고 젊음이 들끓는 홍대를 지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그곳엔 유미도, 강아지도 아닌 윙윙거리는 냉장고만 있을 뿐이다. 장우는 냉장고 문을 열고 그쪽으로 머리를 대고 눕는다.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하다.
장우야.....장우야.....왜 니 복을 발로 차니....라고 묻고 싶었지만 들리지 않을 것이다. 나도 장우처럼 이상한 고집이 있어 부모님이 가라는 길로는 가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래서 장우가 답답하기도 했지만, 이해가 되었다. 현실과 타협하면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지만, 있지만 말이다. 다른 건 다 굽혀도 이거 하나만은 안된다 싶은 것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그게 자부심 있는 일이라면 더더욱. 모든 게 박살이 나면 인간은 생뚱맞은 곳에서 위로를 받는다. (나 같은 경우, 대부분의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위로를 받는....) 그게 장우에겐 강아지였다. 강아지와 지내다보니 유미가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장우는 자신이 타협하지 못한 것 때문에 사랑하는 존재들을 놓쳐버린다. 절대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돈을 노잣돈으로 써버리게 될 줄이야. 유골함을 들고 돌아온 장우를 맞이한 것은 이 집에 어울리지 않는 냉장고. 소음이 죽도록 큰 냉장고. <냉장고송>의 주인공인 냉장고. 에너지 효율이 '다소 낮음'인 그 냉장고. 집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냉장고 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울리지 못하는 것들이 껴안는 모습은 애처로웠다. 버티고 서 있지만, 모터는 진작에 고장났기 때문이다. 안도였을까. 씁쓸함이었을까. 장우를 안아주지는 못하겠다.
+) 소설 <바깥은 여름> 속 <노찬성과 에반>, 영화 <프란시스 하>와 한 길을 달리고 있어요. 함께 보면 좋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