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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희 Dusky Feb 05. 2021

나의  첫 집시 재즈 워크숍 참여기

Mash Records, Kagurajaka, Tokyo

2018. 2. 10.


순식간에 도쿄 여행은 벌써 4일 차. 안타깝지만 즐거운 시간은 늘 빠르게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나저나 안 그래도 도보 위주의 여행 스타일에, 어깨가 빠지도록 무거운 배낭, 게다가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힘겨운 여행을 해왔던 대다가 밤이면 밤마다 잼 세션을 가고, 매일 잠들기 전 하루 종일 촬영한 사진 정리까지. 지나치게 욕심을 많이 부린 여행이라서 그랬는지 그간의 여행의 피로가 누적되어 곤죽이 되어가는 나를 위해 오늘 하루만큼은 나에게 휴식을 선물하기로 작정한 나는 모처럼 느지막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늦은 기상 탓인지 게스트 하우스 로비의 조식은 이미 치워지고 없었다. 어쩔 수 없으니 아쉬운 대로 주문할 수 있는 커피라도 시켜놓고 노트북을 펼쳐 일정을 확인해보니. 아뿔싸! 오늘은 벌써 이 게스트 하우스에의 마지막 밤이었다. 무계획으로 왔으니 내일부터는 하루하루 숙소를 정하면서 움직여야 할 팔자였다. 또 아뿔싸! 이번 도쿄 여행의 동기가 되었던 기타리스트 Denis Chang의 집시 재즈 워크숍이 잠시 후 12시부터 시작이었다. 내일의 동선과 숙소도 정해야 하고, 몇 시간 내로 씻고, 주린 배를 채우고, 워크숍으로 달려가야 하는 상황. 오늘도 느긋한 아침은 물 건너갈 판이었다.




분주했던 아침. 급한 일들을 무사히 마치고 부랴부랴 시간을 살짝 넘겨 도착한 Mash Records에는 이미 몇몇의 연주자들이 모여 있었다. 각자의 악기를 품에 안고 무언가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과, 나처럼 아는 사람 없이 혼자 왔는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거나 두리번거리며 좌우를 살피는 사람들. 개중 어색하게 두리번거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한 친구는 나 또한 일본인이 아니란 걸 알아챘는지 자신을 대만에서 온 기타리스트라고 소개하며 수줍게 인사했다. 동병상련이랄까? 반가운 마음에 영어로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아보니 자기는 오늘 워크숍을 진행하는 기타리스트 Denis Chang의 제자이며 일본에는 그와 함께 왔다고 한다. 결국 이 자리에 혼자 온 외톨이는 나 하나뿐이었다. 가엾어라 나 자신!

워크숍에 참여하기 위해 Mash Records에 모여든 연주자들.




워크숍은 어제의 세션과는 다르게 정말 수업 같은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워크숍에 참여한 뮤지션들 대부분이 일본 최대의 도시, 도쿄에 거주하고는 있다지만 대부분이 한 번도 제대로 된 집시 재즈 레슨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뮤지션들 모두에게 이날의 워크숍은 정말 특별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만큼 집시 재즈라는 음악은 아직까지는 본토인 프랑스나, 미국 정도를 제외하면 제대로 배울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어제의 세션에서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오늘의 워크숍은 정말 수업 같은 분위기로 진행되었는데 집시 기타를 제대로, 올바른 자세로 연주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워크숍은 한 시간을 훌쩍 넘겨 벼렸다.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진 뒤 Denis는 지금까지의 워크숍 내용이 대부분 기타리스트를 위한 내용이었던 게 조금 마음에 걸렸었는지 기타 외 다른 악기들을 언급하며 잠깐 동안 가벼운 설명을 진행하고는 한 사람씩 무대로 불러 호스트 밴드와 함께 잼 세션을 시키기 시작했다. 이후의 워크숍은 한 사람씩 무대로 올라가 짧은 합주를 한 뒤 Denis가 이런저런 코멘트를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어쨌거나 무대에서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하면서 워크숍의 분위기도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워크숍 호스트 밴드와 함께 연주 중인 클라리넷 연주자.




집시 재즈 연주자들의 문화(?)라고 까지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세계 어디를 가도 집시 재즈 연주자들의 공연이 끝나고 난 후나, 어떤 이유로 집시 재즈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지친 손이 퉁퉁 붓도록 잼 세션을 실컷 즐기고 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모른 채 한국에서만 소수의 인원들과 어설프게 집시 재즈를 즐겨왔던 나로서는 이 다양한 국가에서 모인 집시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 밤새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조금 긴장이 되기도 했다.

Bar un.10이 위치한 아라키초의 밤거리.

워크숍은 끝났지만 워크숍에 참여했던 뮤지션 대부분이 함께 잼 세션을 가기 위해 자리에 남았고 일본의 김밥천국이라 할만한 동네 대형 카페(패밀리 레스토랑 같은)에서 다 같이 가벼운 식사를 마친 뒤 잼 세션을 위해 Live Performance bar un.10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Bar un.10에 들어서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비좁은 무대 천정에 아찔하게 걸려있는 콘트라베이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저걸 정말로 사용하긴 하는 걸까?' 하는 의심도 잠시, 베이스 연주를 위해 천정에 로프로 단단히 고정되어있는 콘트라베이스를 끄집어 내리는 모습을 보며 '우와'하는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Bar un.10의 좁은 무대와, 천정에 고정된 콘트라 베이스의 모습.

이후로는 더 특별할 것도 없었다. 수시간이 지나고 오늘의 스페셜 게스트 Denis Chang이 꾸벅꾸벅 졸다가 피곤해서 호텔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기 전까지, 밤을 잊은 도쿄 집시들의 잼 세션은 몇 시간이고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관객이라고는 없이 오로지 연주자들로만 가득 차 버린 이 작은 바에서 나는


'이 광경을 누군가 관객의 입장에서 보았다면 얼마나 즐거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수많은 집시 재즈 연주자들이 다 함께 모여 음악을 연주하는 장관 말이다.

Bar un.10의 잼세션을 함께 즐긴 도쿄의 뮤지션들.




두세 시간 여의 워크숍을 참여하면서 나 역시 난생처음으로 집시 기타를 올바르게 연주하는 법을 배워볼 수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알고 있던 전반적인 음악에 대한 상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모든 음악은 접근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 궁극적으로는 같은 지점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주체(연주자) 모두가 서로의 연주에 집중하며 최선의 앙상블을 만들어 가는 것 말이다. 그 어떤 장르보다도 무서운 솔리스트들이 득실득실 한 이 집시 재즈 역시도, 결국은 다 함께 좋은 음악을 만들어 가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는 것에 나는 안도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부족한 테크닉을 정진해 나아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사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굳이 어딘가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뭔가를 배울 수 있을 만큼 정보를 얻기 쉬운 세상이 되었다. 또, 막상 누군가를 찾아 배움을 구하더라도 대단한 뭔가를 느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세상은 앞으로 더 넘쳐나는 정보로 풍요로운 시대를 맞이하겠지만, 진정 빛나는 누군가를 탄생시키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좋아하는 것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뜨거운 열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2월 10일, 기타리스트 Denis Chang의 워크숍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누구보다도 일취월장하고 있는 참여 뮤지션들이 그것을 증명해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본다. 그 어떤 좋은 선생님보다도 중요한 뜨거운 자신의 열정을 언제까지나 지켜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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