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아주 신혼 때는 알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옆에 있는 이 사람과 어떤 고난과 역경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지, 결혼식에서는 누구나 자신 있게 "Yes!"를 외치지만 마주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우리 부부도 그랬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랬다. 한라산도 같이 올라보고, 이스라엘에서 미지의 세계를 함께 헤쳐나가기도 했지만 그때는 인생이 핑크빛으로만 보이는 때라 어려울 게 없었다.
직장을 다닌 지 3년이 넘도록 직업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이 근 몇 년 사이의 나에게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5개월째 통근에 5~6시간을 허비하다 보니 이렇게까지 하면서 이 직장을 다녀야 하는 걸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통근으로 인한 피로감과 줄줄 새는 교통비는 3년 동안 쌓여가던 불만에 불을 질렀다.
매일 싫다면서도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귀찮음도 컸지만, 사실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길을 택하는 게 맞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막상 이 직업을 놓는다니 아쉽기도 했다. 직업을 바꾼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냐마는 이런 마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었다. 나를 움직이게 해 줄 응원과 도움이 필요했다.
결국 남편이 나섰다. 이것저것 정보를 모으고, 전화까지 돌려가며 적극적으로 자리를 알아봤다. 진짜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 내가 자기소개서 젬병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진로 고민을 안 해본 게 서른 줄까지 괴로운 문제라면, 자소서 혐오증(?)은 그 문제의 근원이었던 것. 짧은 시간에 꾸역꾸역 말을 써내려니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나름 글 쓰는 게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보고서도 글이다!) 이렇게 다른 종류의 글은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또 남편의 도움을 받았다. 학창 시절에 남편보다 내가 공부를 훨씬 잘했는데^^; 세상은 성적순이 아니듯 삶에 필요한 능력은 성적순으로 잴 수 없는 게 확실하다. 언제나 눈앞의 것만 보는 나와 다르게 남편은 멀찍이서 더 큰 그림을 본다. 나무를 섬세하게 살피는 데 내가 강하다면, 그래서 놓치는 숲의 전체적인 조화는 그가 일러주곤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쉽게 질리고 빨리 포기하는 나를 끝까지 일으켜 세워주고, 코끼리 다리 앞에서 헤매는 나에게 "이건 코끼리야"라고 말해주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최선을 다했다. 세상은 녹록지 않아서, 그럼에도 원하는 것을 한 번에 얻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머리와 마음이 늘 서로 말이 통하는 게 아니라 괴롭다. 힘들어하는 나에게 우리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여보는 나를 가졌잖아.
이렇게나 든든한 남편을 가졌다니.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부럽지가 않다. 순식간에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