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연애를 시작하고 껌딱지처럼 붙어 다닌 우리 둘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누가 먼저였는지 알 수도 없게 결혼하자는 말을 아직 이른 줄 알면서도 감히 주고받았다.
20대 초반의 열정과 패기만으로 하는 의례적인 말이 아니었다. 30대를 코 앞에 둔 나이, 결혼이 뜬 구름만은 아닌 나이에서 기대와 희망을 품고 하는 진지한 약속이었다.
연애한 지 세 달쯤 지났을 때, 오랜 기간 못 만났던 적이 있었다. 그의 출국과 나의 출장이 엇갈려 한 달 가까이 얼굴을 보지 못했다. 기다리던 재회에서 그는 내게 물었다.
나랑 결혼해줄래?
그러겠다 이미 대답하지 않았느냐고, 그러기로 한 것 아니었냐고 가볍게 대답하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가 다시 말했다. 오늘 진지하게 약속해달라고.
돌이켜보니 재미있는 건, 당장 결혼할 것도 아니었는데 둘이서는 나름 진지하게 몇 년 뒤를 약속했다는 거다.
소중한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2년 뒤에 결혼하기로 했어"라고 용기 내어 고백했는데, 모두가 시큰둥했다. 하긴, 2주 이상 연애해본 경험도 몇 번 없는 우리 둘이니 할 수 있으면 해봐라 싶긴 했겠다. 그런데 정말 그 고백이 있은 지 정확히 2년 뒤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2년을 남기고 결혼을 약속하고, 1년을 남기고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이런저런 조건을 따지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과 각자의 직감만으로 결혼을 약속한 철부지들이 결혼 준비까지 1년의 기간을 가진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결혼을 약속했다고 해서 꼭 '결혼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스스로 칭찬하는 부분이다. (그는 어땠는지 몰라도 나는 그랬다!)
사랑에 눈이 멀어 섣부른 선택을 했다고 후회하지 않도록,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를 더 알아가고 신중하게 고민하는 기회를 현명하게 만들고 있던 것이다.
결혼 준비를 시작한 즈음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주고받았다. 결혼하기로 다 되어 있는데 굳이 왜 프러포즈를 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솔직히 한국 젊은이들이 요즘 다 그렇게 하니까 안 하면 서운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프러포즈 날 벅찬 감동과 고마움을 느끼고 엉엉 울었던 것을 보면... 허례허식만은 아닌 듯하다.
갑자기 때 아닌 여행을 가자는 말에 눈치 빠른 나는 프러포즈를 예상했다. 약속 장소도 어쩐지 티가 났다. 그리고 그의 차는 고급 호텔로 향했다.
이미 서프라이즈의 뚜껑이 다 열렸는데도, 호텔방 문을 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렇게 멋진 서프라이즈를 스스로 열심히 준비했을 그의 정성과 노력, 그리고 일 년 반 사이 부지런히 쌓인 우리 추억을 담은 사진들에 감동과 행복이 마음 가득 차올라 눈물로 넘쳐흘렀다.
그러고서 두 달 뒤 우리는 동거를 하게 됐고 일주일 만에 혼인신고를 함으로써 진짜 부부가 됐다.
미국에서 신혼집으로 바로 들어오는 그를 기다리며 동거 첫날 밤의 답 프러포즈를 기획했다. 우리 사진으로 만든 영상편지, 레터링 케이크, 커플 잠옷을 준비하고 분위기를 만들어줄 촛불과 풍선까지 세팅했다.
답 프러포즈를 준비하면서 생각했다. 이 마음을 언제나 기억하고 있으면 우리 꼭 행복하게 잘 살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