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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조바르 Jun 16. 2024

6. 변태 키다리아저씨

정호는 현경의 키다리아저씨가 되기로 했다.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 입구에 정호가 차를 세웠다. 비상등을 켜 놓은 체 엘리베이터 움직임을 살폈다. 숫자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내려왔다. 5.4.3.2.1.B1. 문이 열리고 현경이 걸어 나왔다. 정호는 나이키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둘은 서로 알아보았다. 정호가 빨리 차에 타라고 손짓했다. 현경은 앞자리에 탈지, 뒷자리에 탈지 망설였다. 그러자 앞자리 창문이 내려가면서 정호가 말했다.

“앞에 타.”

“…….”

현경은 고개만 끄떡이며 앞자리에 탔다. 짧은 미니스커트가 민망해서 연신 고무줄 늘이듯이 치마 끝자락을 당겨 내렸다.

“앞에 있는 콘솔박스 열어봐. 작은 담요 있을 거야.”

현경은 콘솔박스 스위치를 찾았다.

“왼쪽 끝 버튼 누르면 열려.”

현경이 버튼을 누르자 스르르 열렸다. 작은 담요가 비닐 지퍼백에 담겨 있었다. 지퍼백을 열고 담요를 꺼냈다. 허리부터 종아리까지 덮을 수 있었다. 차는 주차장을 빠져나와서 한강 방향으로 달렸다. 잠시 후 강변북로에 접어들었다. 창문을 조금 내렸다.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한강 다리에 조명이 켜져 형형색색의 불빛이 분수를 쏟아내듯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강물에 비치는 반사 빛은 유람선이 다리 아래로 지나가면서 일렁이는 물결과 함께 멋진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현경은 한강이 이렇게 아름답게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다리 풍경을 지나자 현경은 두려운 경계심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올라왔다. 작은 목소리를 힘주어 말했다.

“아저씨, 어디로 가는 거예요?”

정호는 고개를 살짝 돌려서 현경을 쳐다보고 다시 전방을 주시하며 말했다.

“네가 연고가 없는 곳, 김포 아니면 고양 정도?”

현경은 놀란 눈으로 정호를 보며 대답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저를 데려간다고요? 싫어요. 나 그냥 내려줘요.”

“이 밤에 네가 갈 곳이 어디 있다고? 또 모텔이나 싸구려 여인숙 같은데 밖에 없잖아. 내가 널 보호해 주겠다고 했으니까 날 믿어.”

현경은 어이가 없었다. 

“아까부터 계속 믿으라고 말하는데 뭘 보고 믿어요? 원조교제나 하는 아저씨를 어떻게 믿어요. 말해봐요?”

정호는 말없이 운전에만 집중했다. 현경은 왜 대답이 없냐는 식으로 다시 다그쳐 물었다. 정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나서 말했다.

“일단 내가 아는 김포로 가자. 거기 원룸을 구해줄게. 거기서 생활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해. 학원이랑 교재는 내가 모두 지원해 줄 테니까. 거리에서 지내던 생활은 모두 잊어버리고 아저씨가 도와줄 때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봐.”

 “세상에 공짜가 어딨 어요? 아저씨가 그렇게 해주면 나한테 뭘 바라는 게 있을 거 아니에요? 내 몸? 그게 목적이에요?”

정호는 깜빡이를 넣고 차를 가장자리로 천천히 이동했다. 그리고 갓길에 차를 세우고 비상등을 켰다. 

“내가 너를 도우려는 건 나를 위해서가 맞아. 네가 만약 패거리가 없이 단독으로 원조교제를 했다면 나는 아마 널 가지고 놀았을 거야. 그런데 내가 말했지. 난 안전한 게 좋다고. 그래서 여러 시나리오를 만들어놓고 그 상황을 봐 가면서 널 만난 거야.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대로 네 패거리가 오는 걸 보고 생각이 확 바뀌었어.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너무나 수치스러운 나를 보게 된 거야. 그런 수치스러운 나를 조금이라도 정상으로 돌려놓는 방법은 수렁에 빠진 널 구하고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했어. 다른 의도는 없어. 그래서 날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는 거야.”

현경은 정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느껴졌다. 그래도 뭔가 자신이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불편했다. 

“그럼 난 뭘 하면 돼요?”

“내가 말했잖아. 일단 공부를 다시 시작하자. 검정고시를 보고, 그다음은 대학을 가는 거지. 당장은 감점 고시만 먼저 생각하자. 너무 멀리 생각하면 머리 아프니까.”

현경은 공부, 검정고시, 대학진학 이런 말에 자신이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거리의 소녀보다는 나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저씨에 대한 궁금증은 사라지기는커녕 샘솟는 물처럼 계속 만들어지기만 했다.

“알았어요. 일단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해볼게요. 근데, 궁금한 게 있어요.”

“또 뭐가 궁금할까?”

정호는 차를 서서히 바깥 차선으로 진입시키면서 대답했다.

“1004호 아줌마 말이에요. 아시는 분이죠? 혹시 와이프?”

정호는 머리가 띵 해지며 급브레이크를 밟을 뻔했다.

“그래. 맞아. 내 와이프야. 난 미리 둘이 거기서 만난다는 걸 알고 있었어. 어젯밤 와이프가 자고 있을 때, 정확하게는 오늘 새벽이지. 새벽에 들어왔으니까. 와이프 차 트렁크에서 휴대폰 하나를 발견했어. 둘이 그 폰으로 사랑을 주고받고 했더라고. 그것도 6개월 전부터. 어제 둘이 처음 잔 것도 알게 되었고, 오늘 저녁 8시 30분에 00 호텔 1004호 예약해 놓고 만나기로 한 것도 보게 되었어.”

현경은 유부녀의 바람피우는 현장을 보게 된 것보다 정호의 반응에 더 놀랐다. 어떻게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알면서도 그렇게 대처할 수 있는지, 자신은 또 뭔가? 불륜녀 때문에 자신이 성적 희롱의 대상이 된 것 같은 불쾌감. 그리고 지금 자신을 돕겠다고 믿으라는 이 남자의 놀랍도록 차분한 대응.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현경이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못 하자 정호는 이어서 말했다.

“네가 뭘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아. 나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거야. 솔직하게 말해줄게. 처음에는 아내의 외도에 나도 복수한다고 생각하고 원조교제를 생각했어. 너랑 만나기로 약속해 놓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나는 아내의 외도를 알아. 그리고 소심한 복수로 원조교제를 하는 거야. 근데 아내는 내가 원조교제 하는 걸 몰라. 그럼 공평하게 일대일 상황이 되는 건 아니지. 아내도 내가 외도하는 걸 알아야 공평한 거지. 그렇게 되면 공평한 게 아니라 이제 같이 살지 못하는 거지. 그래서 생각을 조금 바꿔서 둘을 헤어지게 만드는 전략을 생각하게 된 거야. 그렇게 되면 나는 소심한 복수지만 원조교제로 쾌락을 맛보고, 아내와 젊은 남자는 오해를 심어서 헤어지게 만드는 것으로 말이야. 물론 그 오해는 네가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거지.”

현경은 정호의 말에 치밀하게 무서운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왜 절 묶어 두셨어요? 그건 변태 짓이잖아요?”

“그건 아주 간단해. 널 묶어두고 바깥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알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었던 거야. 그래서 헤드셋을 씌워서 음악을 듣게 한 거고. 만약 네가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야. 말했잖아 난 안전한 걸 좋아한다고. 짧은 시간에 너에게 모든 걸 다 설명할 수도 없었고.”

현경은 방 호수가 다른 곳으로 이끌려 들어갔을 때 핸드폰으로 방 번호가 바뀌었다고 패거리들에게 카톡을 보내려고 했었다. 그게 실패했을 때 아저씨와 관계하기 전에 씻으러 들어가면 얼른 문을 열고 패거리를 들이기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차단당한 상태였기에, 그리고 백만 원이라는 돈을 혼자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저씨가 하라는 대로 순순히 말을 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지금부터 내 삶의 희망은 이 아저씨야.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날 생각해준다고 한 놈이 상습적으로 강간하고 그것도 친구랑 둘이서 번갈아 가며, 큰돈을 벌어보자며 나를 원조교제를 시킨 놈과는 영원히 보고 싶지 않아.’ 현경은 모든 걸 다 이해했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야 모든 걸 알게 되었네요. 아저씨 참 불쌍해요. 근데 마누라가 바람피웠는데 왜 이혼을 안 해요? 아저씨도 뭔가 크게 잘못한 게 있는 거 아니에요?”

정호는 대답 대신 김포 진입로로 들어갔다. 톨게이트를 진입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하이패스 구간으로 진입할 뻔했다. 급하게 핸들을 꺾어서 현금 차선으로 바꿨다. 

“얼마죠?”

“천사백 원입니다.”

정호는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서 지급하고 잔돈을 받아서 현경에게 주며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아저씨, 왜 현금 차선으로 급하게 바꿨어요?”

“하이패스는 나중에 카드 정산 시 찍히거든. 언제 어디를 간 게 다 명세서에 나온다고. 그래서 현금 계산한 거야.”

“와, 아저씨 진짜 미쳤다. 아저씨 과학수사대 출신이죠?”

“말했잖아 난 안전하게 한다고.”

정호는 차를 몰아 김포 시내로 들어갔다. 김포경찰서 부근 한적한 호텔이 보였다. 

“저기가 좋겠다. 오늘은 저기서 자도록 해.”

현경은 눈앞에 보이는 호텔이 싫지 않았다. 바퀴벌레 나오는 원룸보다 백배는 낫다고 생각했다. 정호는 호텔 근처에 차를 세운 후 현경을 차에 두고 혼자 내려 호텔로 들어갔다. 5분 후 호텔 키를 가지고 다시 차에 돌아왔다. 

“자, 여기 호텔 키. 그리고 10만 원 줄 테니까 내일 밥 사 먹고. 오후에 올 테니까 그때까지 카페나 도서관 같은 데서 시간 보내.”

“아저씨! 오늘, 같이 자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말했잖아. 이제부터 널 보호해 준다고.”

“그래도 혼자 자는 건 무서워요. 아는 사람 한 사람도 없고, 누가 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난 네가 잘 이겨낼 거라고 생각해. 너 혼자서도 살아남는 법을 아는 아이니까. 무서움과 두려움은 결국 네가 만들어내는 거야. 그것부터 이겨내야 해. 오늘 첫 미션이 생겼네. 첫날밤 혼자 지내기. 하하.”

현경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혼자 들어가면 카운터에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하하, 그래서 내가 다 말해 놓았어. 학생 한 명이 올 거라고. 내가 예약하는 거라고.”

현경은 이대로 아저씨가 가면 언제 어떻게 다시 연락할지 몰라서 다시 버려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저씨, 나 핸드폰 꺼놓고 있는데 어떻게 연락할 거예요? 다시 켜면 위치 추적당할 거고.”

“그렇지. 내일 핸드폰부터 다시 만들어야겠구나. 내가 새로 개통해서 가져올 테니까 옛날 핸드폰은 버려. 다시 켜지 말고 내일 12시에 올게. 같이 점심 먹고, 네가 살 수 있는 오피스텔도 알아보자.”

“네? 오피스텔요? 비쌀 텐데요.”

“그렇지 비싸지. 그래도 원룸보다는 나을 거야. 보안도 철저하고.”

현경은 오피스텔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곳에 살아보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아저씨가 그 꿈을 실현하게 해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아저씨는 저한테 키다리 아저씨네요. 변태 키다리 아저씨요. 호호호.”

“뭐라고? 변태 키다리 아저씨? 그래 그거 싫지 않은 말이네. 하하하. 변태 키다리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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