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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조바르 Jul 20. 2024

좋은 시간, 나쁜 여자(29. 마지막 후회)

정호는 현경이가 딸 임을 알게되고 마지막 후회를 남기며 죽어간다.

좋은 시간나쁜 여자 (29. 마지막 후회)     

“김현경 씨 맞죠?”

“네. 누구세요?”

“여기 하늘 봉안당 관리실인데요.”

“그런데요?”

“어제 폭우가 내려서 납골함을 임시로 대피시켰다가 잘못되어서 함에 손상이 생겼어요. 죄송해요. 이번 주 토요일 10시까지 오시면 저희가 다시 다른 함으로 옮겨드리려고 합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꼭 오셔서 보호자 확인이 필요하거든요. 부탁드립니다.”

“알았어요. 갈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봉안당 관리실 여직원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앞에 서 있는 최 탐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최 탐정이 봉투를 꺼내더니 여직원에게 전달했다. 여직원은 주위를 둘러보며 얼른 챙겨 넣었다. 

“그럼 이제 뭘 하면 돼요?”

“새로운 함을 준비해놓으세요. 다른 직원들한테는 제가 친척인데 위치를 다시 잡으려고 꺼냈다가 파손되었다고 할게요. 보수 비용도 모두 드릴게요.”

“네. 그리고요?”
 봉안당 여직원은 돈을 받아 챙겨서인지 이미 한패가 된 듯 신나서 재차 물었다. 최 탐정이 책상 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아가씨는 정확하게 10시 20분까지 김현경 씨와 대화를 나누세요. 김현경 씨가 납골함 앞에서 10시 20분까지만 있으면 돼요.”

“그럼 김정호 씨는 어떻게 해요?”

“그건 우리가 먼저 안내하는 척하면서 사무실에 들러진 않고 바로 납골함 앞으로 데리고 갈 겁니다. 김정호 씨는 김현경 씨가 이지영 씨 납골함 앞에 서 있는 걸 보기만 하면 돼요.”

여직원은 최 탐정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하하하, 아가씨 탐정사무소로 이직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어때요? 생각 있으면 연락해줘요. 아가씨처럼 눈빛이 살아있는 사람이 필요하거든.”

“네. 자신 있습니다. 연락드릴게요.”

모든 게 백수정이 파놓은 함정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토요일 10시.

계획대로 김현경이 먼저 도착했고, 여직원이 안내하며 납골함을 가지고 원래 있던 자리로 가서 봉안 절차를 거쳤다. 간단하게 기도를 한 현경은 10시 10분에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관리실 여직원이 현경을 가로막고 말했다.

“잠시만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서류 사인받을 게 있는 데 깜박하고 안 가져 왔어요. 잠시면 됩니다.”

현경은 여직원을 보며 말했다.

“네. 그럴게요.”

여직원은 사무실로 가는 척하며 시간을 봤다. ‘아이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초조하게 현관 쪽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10시 20분. 최 탐정이 변장하고 김정호를 안내하며 걸어왔다. 여직원은 최 탐정에게 인사를 하며 귓속말로 말했다. 귓속말치고는 큰 소리여서 옆에 있던 정호도 희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앞에 서 있어요. 이 서류에 김현경 씨 서명받으시면 돼요.”

“그래. 알았어. 그만 가봐요.”

최 탐정은 일부러 정호가 보이게 보호자 서명이 필요한 서류를 살폈다. 정호는 넌지시 어깨너머로 보호자 서류에 김현정이라는 이름과 나이, 주소를 봤다. ‘아니, 이럴 수가!’ 정호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최 탐정을 앞질러 이지영 봉함소로 달려갔다. 현경이가 맞았다. 현경이가 서 있었다. 현경이는 서류 가지러 간 여직원이 오지 않자 고개를 돌려 정호가 서 있는 쪽을 쳐다봤다. 정호는 얼른 몸을 숨겼다. 다행히 둘은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현경이가 지영이 딸이었다고? 그럼 무정자증이었던 전 남편의 아이가 아니라면 누구의….’ 정호는 털썩 주저앉았다. ‘설마, 울릉도에서 아이가 생긴 건 아니겠지. 그러면 안 돼. 아니야. 아내야.’ 정호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때 최 탐정이 정호 앞에 나타났다. 

“김정호 씨.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잠시만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정호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팔을 이끄는 최 탐정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그러죠.”

둘은 봉안당 주변 수목장 산책로를 걸었다. 최 탐정은 상의 안쪽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봉투에 든 서류를 정호에게 건네며 말했다.

“사실은 김현경 씨가 저희에게 한 가지 요청한 게 있었어요. 자신의 생부를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엄마를 찾아올 거라고 했어요. 만약에 찾아오는 남자분이 있으면 머리카락을 채취해서 자신과 친자관계 확인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난번에 오셨을 때 저희가 선생님의 머리카락을 채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여기, 친자확인 결과서입니다.”

최 탐정은 결정타를 날렸다. 정호는 서류를 보다가 울먹였다. 한참을 울먹이던 정호는 최 탐정의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부탁합니다. 친부를 찾았다고 알리지 마세요. 그럴 이유가 있어서 그러니까 제발 아니라고 해주세요.”

“그건 좀 곤란합니다. 저희도 김현경 씨 부탁을 받고 한 일이라.”

“만약 이 사실을 현경이에게 알린다면, 당신 고소할 거야. 무단으로 신체 일부를 채취한 죄를.”

“그럼, 이렇게 하죠. 아버지를 찾았는데 다시 행방불명되었다고요. 그런데 이 서류는 현경 씨한테 줘야겠어요. 적어도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닌가요?”

정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최 탐정과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요. 그런데 이름은 당신이 가명을 적은 거라고 해주세요. 즉석에서 지은 가명이라고요.”

“네. 그러죠.”

정호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주차장까지 어떻게 걸어갔는지 기억도 없었다. 멍하니 차 앞에 서서 기계적으로 차 문을 열었다.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공간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내 딸을 내가….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정호는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것처럼 충격적인 생각이 들었다. ‘가만, 그럼 지영이는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지영이의 영혼이 현경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는 건 자기 딸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는 건데. 설마, 지영이가, 그럴 리가 없어. 이건 도저히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야. 어떻게 딸의 몸을 빌려서 아빠와 관계를 할 수 있다는 거야? 완전히 미쳤군. 어떻게 그럴 수가 어떻게?’ 정호는 지영이가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현경의 몸을 빌렸다는 것에 치를 떨었다. ‘나쁜 년, 죽일 년, 이미 죽었어도 지옥 불에 떨어질 년.’ 당장 돌아가서 납골함을 깨버리고 싶었다. 정호는 점점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차 핸들을 몇 번이고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차량 경적에 관리실 직원이 달려갔다.

“무슨 일이에요?”

정호는 밖에서 말하는 직원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직원이 차창을 두드리자 그제야 정호는 고개를 돌려 창문을 내렸다. 

“헉.”

직원은 정호의 충혈된 눈과 벌어진 입을 보며 순간 놀랐다. 정호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사람을 보는 건지 바깥 풍경을 보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괘, 괜찮으세요? 119 불러줄까요?”

정호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네. 그럼 조심히 가세요.”

직원은 더 이상 경적이 나지 않자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정호는 창문을 올리고 주차브레이크를 풀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차를 운전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목적지도 없었다. 그냥 계속 직진만 할 뿐이었다. 신호등에 걸리면 발과 손이 알아서 차를 세웠고, 신호가 바뀌면 다시 알아서 출발했다. 거기에 의식은 없었다. 습관적으로 입력된 근육의 상호작용만 반복될 뿐. 차는 어느새 서울을 벗어나 강화도로 향하고 있었다. 초지대교 중간쯤을 지날 때 속도계는 180을 가리키고 있었다. 반대편 차들이 전조등을 켜며 경적과 함께 요란하게 비껴갔다. 정호는 지금 자신이 역주행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작은 차들은 알아서 피했지만, 다음 차는 덤프트럭이었다. 트럭은 피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죽자고 달려오는 승용차 한 대를 피하려고 핸들을 꺾을 수 없었는지 그대로 멈춰있었다. 정호의 차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속도가 더 올라가고 있었다. 190, 200…. 그때 수정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차량 블루투스로 자동 연결되었다. 그 순간 정호의 차량은 덤프트럭 밑으로 들어가며 지붕이 날아가 버렸다. 본능적으로 몸을 수그린 덕분에 정호의 목이 날아가지는 않았다. 대신 허리 아래가 감각이 없었다. 머리는 충격으로 피범벅이 되었고 엔진이 뒤로 밀려 들어와 그대로 정호의 가슴을 짓이겨버렸다. 가느다란 의식이 곧 죽음으로 인도할 뿐 아무것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왜 말을 안 해?”

“….”

수정은 정호가 일부러 핸드폰을 집어 던진 것처럼 생각했다. 정호의 마지막 의식이 수정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잘 들어. 김현경이라는 아이, 성주랑 사귄다는 데 절대로 안 돼. 당신이 책임지고 헤어지게 해. 무슨 말인지 잘 알 거 아냐? 왜 대답이 없어?”

“으으으으.”

정호는 수정의 말에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말은 할 수 없었다. 그저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의식은 지난 55년의 좋았던 시간이 한 번에 지나간 후 움직여지지 않는 입술로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나…쁜…녀…언…ㄷ…ㄹ”

배터리가 다 된 장난감이 멈춰버리듯 정호는 눈을 뜬 채로 스르르 초점이 멈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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