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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조바르 Feb 25. 2024

좋은 시간, 나쁜 여자(13)

13. 아산병원 응급실

지하철 종합운동장역, 야구복을 입은 팬들이 쏟아져 나왔다. 2호선 6번 출구 앞에 50대 중년의 정호가 서 있다. 땅속에서 개미가 밖으로 기어나오는 것처럼 한 차량이 지나가고 나면 쉼없이 지상으로 솟아오르는 사람들. 그 사람 물결 속에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기다림에 지쳐  핸드폰만 연신 바라봤다. 지하철 하나가 지나가고 한차례 파도가 밀려왔는데 정호가 기다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정호는 다시 한 번 카톡을 보냈다.  

   

[어디쯤 왔니? 나는 6번 출구 앞에 파란색 야구점퍼를 입고 있단다.]     


정호는 톡을 보내고 나서 숫자 1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잠시 후 1이 사라졌다. 정호는 곧 답이 올 거라 기대했다. 1초, 2초, 3초, 4초, 5초…. ‘끼이익, 퍽’ 카톡 문자 대신 멀리서 자동차 사고가 나는 소리가 들렸다. 종합운동장 사거리 횡단보도 쪽이었다. 멀어서 소리만 들리고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정호는 다시 카톡을 봤다. 1분이 지나도 답이 올라오지 않았다.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정호는 초조해졌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시계는 오후 4시 10분을 지나고 있었다. 약속 시간 보다 10분이 지났다. ‘카톡 읽씹인가? 아니야 만원 지하철에서 카톡을 보내기 어려워서 그럴거야.’ 또 한차례 지하철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야구경기 시간이 다가오자 지하철 역사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정호는 혹시나 사람들 속에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까 봐 까치발을 하고 계단 아래를 바라봤다. 역시 보이지 않았다. 


오후 4시 30분. 정호는 더 초조해졌다. 핸드폰을 다시 봤다. 카톡은 여전히 1이 사라진 상태로 답이 없었다. 핸드폰에서 전화번호 검색을 눌렀다. 그리고 ‘현경이’를 검색했다. 검색된 전화번호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전화 받아 현경아.’ 잠시 후 핸드폰 너머로 낮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핸드폰 주인이 지금 응급실에 있어요.”

“네? 현경이가 다쳤나요? 어디에요?”

“여기는 아산병원 응급실이고요, 종합운동장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났어요.”

정호는 순간 ‘끼이익, 퍽’하던 소리가 떠올랐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상태는 어떤가요? 위험한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의식은 없었는데…. 지금 검사중이라 아직 모르겠습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정호는 종합운동장 정문 앞에 손님을 내려주고 있는 택시로 뛰어갔다. 손님이 내리기가 무섭게 앞 문을 잡고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아산병원요. 급해요.”

“네, 타세요.”     

정호는 택시 뒷좌석에 뛰어들 듯이 탔다. 그리고 다급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말했다.     

“빨리요. 급해요. 아산병원 응급실요.”

“네. 알겠습니다. 안전벨트 메시고요.”     

안전벨트를 찾는 정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겨우 벨트를 찾았지만 고리를 제대로 꽂지 못했다. 몇 번이나 실패하다가 겨우 꽂았다. 가슴은 답답했고 숨은 거칠어졌다.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창문을 조금 내려서 바깥공기를 들이마셨다. 며칠 전 현경에게 말했던 게 생각났다.

‘현경아 이번 주말에 뭐 하고 싶어. 아저씨가 너하고 보내려고 하루종일 시간 비워뒀단다.’

‘야구장 가고 싶어요. 한번도 가본 적 없어요.’

‘그래, 마침 토요일 경기가 있는데 같이 가자.’

‘아저씨는 어떤 팀 응원해요?’

‘나는 당연히 LG지. 넌?’

‘전 없어요. 근데 지금부터 LG할래요.’

‘토요일, 오후 4시. 종합운동장역에서 만나자.’

‘네. 아저씨.’

정호는 길거리에서 헤매던 18살 현경의 후원자가 되기로 작정한 후 진심으로 딸처럼 대했다. 그래서 김포에 오피스텔을 구해줬고, 검정고시를 치르게 했다. 검정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후 대학 진학를 위해 학원비와 생활비까지 지원하고 있었다. 그게 현경을 처음 만난 날, 그녀를 아내의 불륜현장을 잡는데 이용하고, 호텔에서 했던 몹쓸 짓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잘못에 대한 양심의 대가를 치르고 싶었다. 그런 현경이 자기를 만나러 오는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택시는 아산병원으로 진입했다. 응급실까지는 약 100m, 길게 늘어선 차량,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로 사람들이 수시로 건너다닌다. 정호는 마음이 급했다. 

“기사님, 여기서 내릴게요.”

정호는 카드를 내밀었다. 택시 기사가 결재를 하는 동안 정호의 몸은 이미 택시 밖에 있었다. 

“여기요. 카드.”

택시기사가 앞좌석 창문을 내리며 팔을 뻗어 카드를 내밀었다. 정호는 낚아채듯이 받아들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응급실 입구에서 의례적인 질문과 통제를 거쳐야 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환자를 찾습니다. 이름은 현경이, 그, 저, 현경인데 성은….”

정호는 현경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었지 정작 성은 모르고 있었다. 아니 한번 쯤 들은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았다. 응급실 안내 데스크 직원이 환자명부를 살펴보며 말했다.

“김현경, 18세? 맞나요?”

“네, 맞아요. 김현경, 열여덟 살.”

“관계는요?”

“네, 저, 보호자에요.”

안내 직원은 면회신청서 작성과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정호는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여주며 면회신청서를 작성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확인하고 올게요. 입구에서 마스크 착용하시고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오세요.”

정호는 초조해졌다. ‘제발, 크게 다치지 않았기를. 하나님 도와주세요. 불쌍한 아이에요. 제발, 제발.’ 어느 새 두 손은 기도하듯이 합장을 하고 있었다. 발은 의도하지 않은 종종걸음만 저절로 걸었고, 계속 왔다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 머리가 텅 비는 것 같았다. 

“김현경 씨 보호자분, 마스크하고 방호복 착용하시고 들어오세요.”

정호는 안내 직원이 주는 마스크와 파란색 방호복을 착용하고 응급실로 들어갔다. 응급실로 들어서자 간호사가 다가와서 김현경 환자 보호자가 맞는지 확인하고 현경이 누워있는 침대로 안내했다. 

“환자는 아직 의식이 없습니다. 바닥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힌 것 같은데요. 일단 외상은 가벼운 찰과상인데 머릿속은 외상과 다를 수 있어요. 그래서 X-레이하고 CT촬영을 했습니다. 지금 의사선생님이 확인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환자가 깨어나면 여기 벨을 눌러 주세요.”

정호는 간호사의 친절한 설명에 연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는 현경을 바라봤다.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아저씨’라고 부를 것 같았다. 정말 외관상으로는 멀쩡하게 보였다. 어디하나 부러진 곳도 없다고 했다.현경은 의식이 없었다. 정호는 미동조차 없는 현경의 손을 떨리는 마음으로 잡았다. 혹여 온기를 느끼고 익숙한 소리를 들으면 깨어날 수도 있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현경의 손은 차가웠다. 현경의 바로 옆 침대에는 또 다른 교통사고 환자가 있는 듯 했다. 침대마다 커튼이 있어서 사람을 볼 수 없었지만 사고를 낸 것처럼 보이는 남자가 어딘가로 연락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검정색 시장 봉지를 들고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신호가 황색로 바뀌는 바람에 속도를 내서 지나가려고 했는데 학생을 보지 못하고 그만…. 죄송합니다.”     

젊은 청년은 당황해하면서도 차분하게 사죄했다. 정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청년을 바라봤다가 현경을 바라봤다가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자 청년은 정호에게 한걸음 다가서며 검정색 봉지를 내밀며 말했다.     

“저, 선생님. 학생이 이거 들고 있었습니다. 차에 부딪히고 나서 제가 핸드폰하고 학생만 태우고 응급실로 왔는데 학생이 들고 있던 게 생각나서 다시 사고 현장으로 갔더니 길 옆에 치워 놓았더라고요.”     

정호는 말없이 받아들고 봉지에 담겨 있는 걸 보았다. 양파 두 개가 담겨 있었다. 

‘야구경기를 보러 가자고 해놓고 양파를 왜 가지고 왔을까?’

정호는 무언가 알 듯 모를 듯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경험한 익숙한 장면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미안함과 황당함, 그리고 묘한 감정이 뒤섞여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침묵을 깨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사고조사를 위해 경찰이 응급실에 들어온 것이다. 사고자는 응급실로 현경을 옮긴 후 경찰에 신고를 했고, 보험사에도 연락했다.      

“교통사고 신고하신 분 계신가요?”

“네, 제고 신고했습니다.”     

경찰의 물음에 청년은 바로 대답했다. 그러자 경찰이 우리를 쳐다보며 다가왔다.     

“신고하신 분입니까?”

“네. 제가 사고를 내고 응급실로 옮긴 후 신고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은 학생 보호자시고요.”     

청년은 침착하게 말했지만 목소리에 가는 떨림이 느껴졌다. 경찰은 그 자리에 서서 사고 경위를 물었다. 그러자 응급실 담당 간호사가 경찰에게 말했다.     

“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요. 응급실 밖에 휴게실이 있어요. 거기서 조사하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환자치료에 방해됩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경찰은 청년과 정호를 쳐다보며 함께 가자고 했다. 정호는 현경의 손을 놓고 경찰을 따라가며 무슨 관계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자칫 원조교제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기야 현경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가출 소녀였다는 것 밖에는.      

“학생 아버님이세요?”     

경찰은 정호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제가 후원하는 학생인데요. 오늘 야구경기를 보기로 했었는데 그만….”     

경찰은 보호자가 학생의 아버지가 아니라 후원자라는 말에 의심의 촉으로 시선이 바뀌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학생 부모님께 연락은 하셨나요?”     

정호는 자신이 취조를 받는 듯한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학생은 부모님이 안 계십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요, 어머니는 가출해서 연락이 닿지 않아요. 지금으로서는 후원자인 제가 보호자라고 할 수 밖에 없네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성함과 연락처를 알려주세요. 피해자 학생의 이름과 나이, 주소도 알려주시고요.”     

경찰은 같이 온 후배 경찰에게 정호를 담당하라고 눈짓을 하고 사고를 낸 청년에게 사고경위를 간단하게 물었다. 그리고 자세한 조사를 위해 같이 경찰서로 갈 것을 요구했다. 정호는 경찰서로 가는 길이 못마땅했지만 지금 발을 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찰차를 타고 가면서 자신이 마치 범죄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굴욕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후원자로서, 현경의 인생을 바꿔주겠다고 말한 자신의 다짐을 생각하며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경찰서로 도착하자 사고경위를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사고를 낸 청년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으며 상세하게 설명했다. 피해자인 학생의 인적사항과 주소 등 신분 확인 시 정호는 알고 있는 사항을 진술했다. 그때 사고를 낸 청년이 현경의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경찰에게 제출했다.     

“이거, 학생 핸드폰입니다. 여기 뒤쪽에 보면 주민등록증이 있더라고요.”     

정호는 그걸 왜 이제 말하냐는 생각에 화가났다.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피해 학생 신분이 제대로 파악이 안 되었는데 왜 지금에서야 주는 겁니까?”     

경찰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저도 사고를 낸 게 처음이라 당황해서 잊고 있었어요.”     

경찰은 현경의 주민등록증을 받아들고 신원조회를 했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했다. 가족 관계도가 나왔다.     

“아버지는 1년 전에 사망했고, 어머니는 살아있는데….”     

경찰의 혼잣말에 정호는 괜한 오해를 벗어난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경찰은 현경의 어머니를 검색했다. 연락처를 파악하고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참 울린 후에 통화가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김현경 학생 어머니 되시죠?”

“아니에요. 지금 핸드폰 주인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의식이 없어요.”     

무슨 이런 일도 있는가? 엄마와 딸이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다니.      

“거기가 어디죠?”

“네. 서울 아산병원 응급실요.”     

경찰은 소름이 쫙 돋아 올랐다. 그리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저희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지금 엄마와 딸이 동시에 응급실에 있는 상황이에요. 신분 확인하러 갈 테니 기다리고 계세요.”     

경찰은 전화를 끊고 나서 앞에 있는 두 사람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현경 학생 어머니도 교통사고를 당해서 의식이 없다네요. 그런데 아산병원 응급실이래요. 사고자는 여기서 보험사 직원 오면 후원자이신 선생님과 함께 사고처리를 해주시고요. 저는 다시 응급실로 가보겠습니다. 최 순경! 여기 이분들 보험사 오면 처리해줘. 어차피 피해자 어머니도 의식이 없다고 하니까 보호자 역할은 어려워 보이네.”     

정호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응급실 현경 옆에 있던 환자가 떠올랐다. 커텐에 가려져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사고를 낸 남자의 통화내용을 추정해보면 중년 여자였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으로선 그 여자가 현경의 어머니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모녀가 옆에 나란히 누웠으면서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니.’      

정호는 경찰서에서 보험사 직원의 사고처리 설명까지 듣고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최 순경이 한통의 전화를 받고 최종 보호자 동의란에 서명을 했다.     

“저, 선생님께서 보호자 란에 동의 서명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정호는 눈만 껌뻑이며 최 순경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응급실로 간 이 경장님 전화가 왔는데요. 현경 학생 어머니가 조금 전 사망하셨다고 합니다. 현경 학생은 아직 의식이 없고요. 현재로선 선생님이 유일한 보호자가 되시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호는 경찰의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무언가 일이 한참 잘못 꼬이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할 수 없었다.

‘이러다가 현경 엄마의 장례도 내가 치러야 하는 것 아닌가!’

정호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잠시 후 현경 엄마를 친 사고자와 보험사 직원이 경찰서로 왔다. 정호는 현경 엄마의 사고처리 보호자 역할까지 마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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