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조바르 Feb 14. 2024

좋은 시간, 나쁜 여자(12)

12. 집착말고 연애만(2.나랑 잘래!)

12. 집착말고 연애만(2. 나랑 잘래!)     

제주항공 B737-800 기내.

수정은 날개 옆 창쪽에 앉았다. 창 밖이 보였지만 날개로 인해 아래쪽 시야가 가려졌다. 대신 날개가 작동되는 과정이 신기할 만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키가 큰 수정은 좁은 앞 뒤 간격이 불편했지만 불평하지는 않았다. 배 나오고 어깨가 벌어진 김 피디가 가운데 앉은 것에 비하면 그래도 편안한 자리였다. 김 피디의 오른쪽에는 카메라 감독이 앉았다. 털이 덥수룩하고, 머리는 뽀글 파마를 한 모습이 옷만 몇 군데 찢어놓으면 영락없는 노숙자였다. 거기다 선글라스는 벗지도 않았다. 길게 자란 구레나룻, 까만 콧수염과 턱수염으로 가려진 얼굴은 도대체가 어떤 얼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수정은 카메라 감독과 인사를 나누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뭐지? 이 거지 같은 놈은? 꼭 저렇게 하고 다녀야 하나? 자기관리가 그렇게 안 돼? 마누라가 참 답답하겠다.’

“박아중이라고 합니다.”

“네? 아, 네. 백수정입니다.”

그리고 말이 없었다. 아니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거지 같은 놈이 이름도 거지 같네. 박아중이 뭐야 뭘 박겠다는 거야?’ 수정이 불쾌한 표정을 짓자 김피디는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말했다.

“백 대표. 여기 박 감독은 예술사진 작가로 유명해. 사진 전시회 경력도 많고. 아마 이번 촬영을 마치고 나면 왜 최고 작가로 불리는지 알게 될거야.”

박 감독은 아무 말도 잇지 않았다. 표정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그를 보며 수정이 멋쩍게 말했다. 

“와, 그렇게 대단한 분인 줄 몰랐네요. 그런데 위장을 너무 철저히 하셔서 다음에 보면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아요. 모른 척 한다고 오해하지는 마세요. 숨기는 자가 범인이니까요. 호호호.”

수정의 말에 박 감독은 전혀 미동의 움직임도 없이 등을 등받이에 기댄 채 정면만 주시했다. 여자의 말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수정은 자신의 말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 박 감독이 불쾌했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천하의 백수정을 뭐로 보고. 아이, 기분 더럽네.’ 수정이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김 피디가 어색한 분위를 감지했는지 가운데서 몸을 비틀며 말했다.

“이거 뚱뚱한 사람이 가운데 앉으니까 양쪽으로 피해를 주네. 박 감독이 날씬하니까 가운데로 앉지. 이거 원 내가 영 불편해서 말이야.”

수정은 김 피디의 말에 털복숭이가 옆에 앉을까 봐 불쾌한 투로 말했다.

“김 피디. 그냥 가. 몇 시간 가는거도 아니고.”

김 피디는 수정의 말에 그럴까 생각했다. 그런데 영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야야 좀 봐줘라. 나 숨도 못쉬겠다. 박 감독! 일어나 봐.”

김 피디는 박 감독을 밀면서 복도로 일어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강제로 가운데 자리로 앉혔다. 자신은 복도 쪽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휴, 이제 좀 살 것 같네. 진작 이렇게 할 걸.”

박 감독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수정은 김 피디가 가운데 앉은 것보다 좀 여유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털복숭이가 옆에 앉은 것에는 여전히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로봇처럼 전방만 주시하고 있는 박 감독. 그런데, 자리를 옮기고 나서 5분 만에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이건 뭐지? 이 남자 왜 이렇게 향이 좋아!’ 수정의 눈은 창밖으로 향해 있는데 그녀의 코끝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아니 콧속으로 야릇한 향을 더 깊숙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향기 한 모금도 놓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코로 집중했다. ‘마치 방금 향기로운 비누로 샤워를 한 듯한 살 냄새. 달콤하면서도 청량한 향. 향수인가? 뭐지? 왜 이렇게 마음이 설레지?’ 수정은 고개를 살짝 돌려 정면을 바라보면서 눈동자를 굴려 오른쪽 위아래를 훑었봤다. ‘여전히 털복숭인데 이 인간 눈을 볼 수가 없네. 선글라스 때문에. 아아, 내가 왜 이러지? 그깟 향이 뭐라고. 그런데 궁금하기는 하다. 어떤 인간인지. 이렇게 향이 좋은 남자와 잠자리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향기에 폭 파묻혀서 헤어나지 못하겠지?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보이는 속살이 근육질인데! 머리카락만 펴고, 수염만 깍으면…. 옷만 잘 입으면 꽤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럼 내가 데이트해 줄 수도 있지. 호호호.’ 수정은 박 감독의 향기에 취해 끝없는 상상의 세계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수정은 박 감독과 단 둘이서 용 바위 해변가를 거닐었다. 바닷바람이 박 감독의 향을 더욱 몰아서 수정에게 퍼붓듯이 보내왔다. 정신이 몽롱해질 만큼 향기로웠다. 아니, 향기에 샤워를 하는 것 같았다. 관광객들이 용 바위를 뒷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박 감독은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촬영 장소를 찾고 있었다. 

“저기가 좋겠네요. 시선은 카메라를 보지 말고 용 바위를 바라보세요. 날 배신하고 떠난 남자를 저주하듯이 마음속 울분을 눈으로 집중시켜서 레이저를 쏜다고 생각해요. 입술이 파르르 떨려도 좋아요. 상처받은 마음을 모조리 뿜어낸다고 생각해요.”

수정은 용 바위를 바라보며 두 놈을 떠올렸다. 한 놈은 쓰리썸을 하려고 했던 놈이다. 그것도 미성년 여자아이와. 분노가 치밀었다. 입술이 떨렸다. 철썩하는 파도 소리와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욕이 뿜어져 나왔다. 씨발놈! 쓰레기 같은 놈! 멀리서는 들리지 않았다. 박 감독은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수정은 두 번째 놈을 떠올렸다. 지금쯤 울릉도 어느 호텔에서 뜨거운 여체를 탐하고 있을 남편 정호였다. 넌 그냥 호구새끼야. 넌 절대 나를 충족시킬 수 없어. 이젠 끝이야. 너 따위는 남자로 보이지 않아. 넌 남자도 아냐. 넌 그냥 그 자리에서 얘들 아빠 역할만 해. 난 진짜 사랑을 찾을 테니까. 수정은 고개를 돌려 박 감독을 바라봤다. 털복숭이에 선글라스. 찢어진 청바지에 뽀글 파마머리. 그래도 180정도의 훤칠한 키에 잘 관리된 몸매가 야성미를 불러일으켰다. 야! 박아중! 넌 어떤 놈이냐? 그 향기는 뭐고! 솔직히 너 참 맘에 든다. 알고 싶어졌어. 오늘 밤 나랑 잘래! 수정은 파도 소리에 맞춰 온 몸으로 표현했다.     

“좋습니다. 여기까지 찍을게요.”     

박 감독은 카메라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수정은 파도 소리에 박 감독의 말이 또렷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카메라를 내려놓는 모습을 보며 눈치껏 알아들었다며 손을 흔들었다. 수정이 바위를 건너며 박 감독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박 감독이 있는 바위까지 다가 왔을 때 갑자기 미끄러지며 넘어졌다. 그 순간 박 감독은 카메라를 놓치며 두 손으로 수정을 잡았다. 그런데 하필 두 손이 잡은 것은 수정의 가슴이었다. 물컹하는 손바닥 센서가 박 감독의 뇌를 자극했다. 박 감독은 재빨리 수정을 안으면서 자신 쪽으로 당겼다. 수정은 허리가 꺽이면서 한 번 휘청거렸다가 박 감독의 품에 안겼다. 찰나의 순간에도 온몸을 자극하는 세포들의 반란은 야릇한 느낌으로 솟아났다. 


“흑, 감, 감사합니다.”     

수정은 박 감독의 품에서 벗어나며 말했다. 그런 수정을 바라보며 박 감독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치지 않으셨어요? 괜찮으세요?”     

일 외에는 한 마디도 하지 않던 박 감독이 그녀를 걱정하며 말했다. 수정은 박 감독의 걱정스런 말투와 향기에 다시 한 번 빠져들었다. 혼미한 정신에서 자신도 모르게 박 감독을 보며 말했다.     

“야, 박 감독. 너 참 맘에 든다. 하나만 물어볼 게. 내가 여자로 보이니?”     

박 감독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수정의 눈 높이에 얼굴을 맞췄다. 자신의 눈을 수정의 눈 속으로 집어 넣으려는 듯 가까이 다가서며 말했다.     

“바람이 전해주더라고요. 당신의 분노를. 파도소리가 전해주더라고요. 당신의 마음을. 멀리서 말하는 당신의 이야기를 난 다 알아들을 수 있어서 신기했어요. 난 당신이 말 할 때마다 여기서 대답했어요. 당신은 듣지 못 했겠지만. 이젠 쎈 척 하면서 자신을 숨기지 말아요. 수정씨 당신은 아름다운 여자에요.”     

수정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지금껏 자신을 아름다운 여자로 말해준 남자가 없었다.      

“키스 할까요?”      

수정은 박 감독의 눈을 바라보며 몸이 먼저 말했다.     

“다음부턴 물어보지 말고 느낌 가는대로 하세요.”      

박 감독은 부드럽게 말하며 수정의 입술에 살포시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이어서 입술이 열리면서 낯선 세계로 두 혀가 드나들었다. 지금, 이 순간 수정은 이 남자를 마셔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온몸이 화염에 휩싸여 죽을 것만 같았다. 달라붙은 입술의 열기가 나머지 몸을 달고 있을만큼 강렬하게 끌어당겼다. 입속에서 마주 닿는 혓바닥의 열기로 입술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파도 소리도, 바람 소리도 둘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오직 요동치는 심장 박동 만이 다음 코스로 가자고, 어서 서로의 세계로 들어가자고 더욱 요동치고 있었다.      

강렬한 키스 후에 둘은 서둘러 짐을 챙겼다. 누가 먼저일 것도 없이 손을 잡고 육체가 합쳐질 장소로 뛰었다. 숨결이 빨라졌다. 뛰는 게 힘든 게 아니라 가는 동안 참아내는 게 힘들었다. 손 끝으로 전해지는 욕망은 벌써 불덩이가 되었다. 수정은 아래가 벌써 촉촉해졌다. 박 감독은 낭중지추를 넘어 우주로 로켓을 발사할 태세였다. 이윽고 호텔방에 들어섰을 때 숨을 헐떡이며 서로를 쳐다봤다. 욕망에 젖은 유혹의 정점에서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 박 감독은 단숨에 수정의 입술을 파고 들었다. 수정도 박 감독의 혀를 휘어 감았다. 달콤한 신음이 더욱 깊게, 거칠게 서로를 빨아들였다. 견디지 못한 물건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수정은 혀를 맡긴 채 박 감독의 물건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크다. 한 손으로 부족하다. 빨리 넣고 싶다.’ 수정은 꿈틀거리는 남자의 물건을 정확히 느끼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미치겠다. 이게 천국일까?’

박 감독도 뜨거운 땀이 흘렀다. 오른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왼손으로 치마를 걷어올렸다. 그 속에 있는 촉촉이 젖은 골짜기를 쓸어올리며 꿈틀거리는 물건을 밀착시켰다. 다시 오른 손은 수정의 가슴으로 올라갔다. 헐떡이는 숨소리와 함께 손은 수정의 등으로 가서 브래지어를 풀었다. 스르르 풀리는 브래지어 끈은 수정의 어깨를 자동으로 움츠리게 만들었다. 남자는 여자의 웃옷을 벗기며 브래지어도 같이 떨구었다.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봉긋이 솟은 수정의 가슴은 남자의 숨소리마저 잠재웠다. 

“수정. 너무 예뻐.”

“흑”

수정은 대답 대신 가볍지만 긴 신음으로 표현했다.

박 감독은 수정의 신음에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의 세계로 진입했다. 수정은 이 남자의 향기를 만끽하며 더욱 깊이 빨려 들어갔다. 박 감독은 수정의 볼을 스쳐 목덜미를 훑었다. 수정은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이 충격으로 굳어졌다.

“으악, 흑. 하악, 하악”

박 감독은 목덜미를 거쳐 수정의 가슴으로 선을 긋듯이 입술을 내렸다. 봉긋한 수정의 가슴을 뜨거운 혀로 빨아들이고는 다시 혀끝으로 튕기듯이 휘어감았다. 수정은 짜릿하다 못해 온몸을 떨었다.

“하악, 하악. 나. 나. 숨을 못 쉬겠어.”

박 감독은 수정의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수정이 끌어당기는 팔에 이끌려 침대로 갔다. 수정은 치마를 벗었다. 옹달샘의 마지막 가림막도 내렸다. 팔꿈치를 침대에 대고 무릎을 기억자로 세운 자세에서 옷을 벗고 있는 박 감독의 육체를 바라봤다. ‘이 남자 정말 근사하다.’ 박 감독의 육체는 수정이 예상한대로 근육질로 다져진 작품이었다. 수정은 호흡이 가팔라지면서 엉덩이가 저절로 씰룩거렸다.

“나, 급해. 지금. 빨리 넣어줘.”

박 감독은 확 달아오른 수정의 뜨거운 육체를 바라보며 그녀 위로 올라갔다. 

박 감독의 물건이 수정의 계곡 속으로 숲을 헤쳐 미끄러지며 들어가는 순간 수정의 입은 탄식을 자아냈다.

“아, 아악”

수정의 신음은 호텔방이 떠나갈 듯이 온몸으로 욕망을 표현하고 있었다.

수정의 자지러지는 신음에 박 감독은 흠칫 놀라며 그녀를 바라봤다.

“계속해. 흐윽, 멈추지 말고. 흑흑.”

숨이 막힐 듯 짜릿하고 뜨거운 열정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수정의 두 팔에 힘을 들어갔다. 수정은 두 손으로 박 감독의 엉덩이를 꼭 감싸 쥐었다. 그리고 마지막 폭발을 위해 힘껏 끌어당겼다. 호흡과 신음이 리듬을 타고 절정으로 다다랐다. 그리고 마침내 폭발했다.

“이대로 죽어도 좋아. 하악 하악.”

“수정.”

“아 아악!”

마지막 신음은 호텔방을 뚫고 하늘 끝까지 울려 퍼졌다.

수정은 박 감독을 꼭 끌어안으며 생각했다.

‘이 남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갖고 싶다.’       

(비행기 안)

“백 대표. 도착했어. 이제 일어나야지.”

수정은 ‘넌 내 꺼야. 나만 바라보게 만들 거야. 음냐, 음냐.’

“야, 백 대표. 정신 차려. 도착했다니까?”

수정은 눈을 떴다. 옆에 있는 털복숭이를 바라봤다. 여전히 좋은 향기가 났다. 

‘아, 씨발. 꿈이었네. 아랫도리가 촉촉이 젖었어. 아이 쪽팔려.’

“너 꿈꿨냐?”

김 피디는 짐칸에서 캐리어를 꺼내며 웃긴다는 듯이 툭 던졌다.

박 감독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자기 가방만 챙기고 있었다. 수정은 그런 박 감독을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야, 박아중! 너, 나랑 잘래!’

작가의 이전글 좋은 시간, 나쁜여자(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