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조바르 Mar 21. 2024

단편 소설 <3일간의 향기>

나만의 향기는 무엇일까? 3일간의 일상에서 느끼는 인간의 향기

<2024년 3월 19향기라는 착각>

 내 이름은 천 만근. 오십 세 살 중년 남성이다. 서울시에서 공무원으로 27년째 근무 중이다. 늘 깔끔하고 감각 있는 패션으로 인싸에 속하는 편이다. 향수 대신 바디 미스트를 사용한다. 나는 진한 향수 보다 금방 샤워를 마친 산뜻한 비누 냄새가 좋다. 강하지 않고 은은하게 퍼지는, 기분 좋은 향이다. 그래서 50대 같지 않은 패션 감각과 향기를 뿜는 남자로 불린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더 관리에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이름을 가지고 농담을 많이 한다. 오늘도 동기 녀석을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언제나처럼 놀렸다. 

 “아, 피곤해. 몸이 천근만근이야!”

 “천 만금을 줘도 못 사는 게 나야. 파이팅!”

 나는 괘의치 않는다. 내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이 즐거울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그래서 나는 내적으로도 좋은 향기를 품고 있는 남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신임 국장이 부임했다. 최초로 여성국장이 임명되었는데 나보다 3년 선배였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해본 적은 없다.      

 그날도 나는 푸른 하늘 - 사무실 공기보다 아직은 찬 바람이 불지만 - 바깥 공기를 쐬며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드르륵드르륵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으로 탈출할 것 같았다. 얼른 꺼내서 받았다. 허 팀장이었다.

 “어, 허 팀장. 왜?”

 “과장님. 국장님께서 찾으세요.”

 “어, 알았어. 바로 갈게.”

 ‘담배를 끊어야 하나. 담배 피울 때만 찾으니, 뭐 이것도 못 해 먹겠다. 아니지 못해 먹겠다가 아니라 담배도 제대로 못 피우겠으니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말이다.’ 어떨 때 보면 나는 꽉 막힌 사람이다. 마음속으로 말하는 것조차 말이 씨가 된다는 생각 때문에 얼른 주워 담는 말을 한다. 그리고 ‘퉤퉤퉤’를 세 번 외치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나는 잘 안다. 내가 스트레스를 만들고, 그 스트레스 속에 나를 밀어 넣고, 후회하고, 남 탓하고…. 나는 그런 생활이 반복되는 인생을 살고 있다. 

 ‘어제 계약 건은 보고했는데 뭐가 궁금하신 거지? 새로운 프로젝트 이야긴가?’ 국장실로 바로 달려갔다. 문 앞에서 옷매무시를 단정하게 고쳤다. 담배 냄새 제거를 위해 입속에 방향제를 뿌렸다. 내가 생각해도 완전히 가셔지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들어갈까? 아니야 늦으면 안 돼. 그냥 들어가자.’ 

똑똑

“천 과장입니다.”

“들어오세요.”

 국장은 자리에 일어서 있었다. 나는 국장 가까이 다가갔다. 국장이 자리에 앉으라고 할 때까지 소파에 앉지 않았다. 소파에 앉으라고 할 때는 긴 이야기고, 앉으라고 하지 않으면 간단한 지시사항이다.

 “자리에 앉으시죠. 조금 무거운 이야기에요.”

 “네?”

 “천 과장님 담배 피우시죠?”

 “네.”

 “제가 담배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제 방에 들어올 때는 담배를 안 피우셨으면 좋겠어요.”

 “아, 네. 죄송합니다. 끊는다 끊는다 하면서 아직도 못 끊고 있네요. 주의하겠습니다.”

 “뭐,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제가 천 과장님 생각하면 담배 냄새가 먼저 떠올라요. 옷도 잘 입으시고, 좋은 향이 난다고 다들 그러는데요 나는 유독 담배 냄새만 느껴져요. 그것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요. 요즘 제가 허 팀장을 많이 부르는 이유도 그거에요. 천 과장님을 생각해서 드리는 말이니까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세요.”

 “아이고 그럴 리가요. 이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기회에 끊어보겠습니다.”

 국장실을 나와서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담배 때문에 불렀어? 어떻게 인간의 향기를 담배 냄새로 말을 하지? 자기는 뭐 좋은 향기만 나는 사람인 줄 아시나. 여자라서 봐 준다. 남자였으면 제대로 한 방 먹였을 거다.’ 세면대 수도를 틀어서 물 한 움큼을 입속에 넣고 헹궜다. 몇 번을 반복했다. 비누로 손을 씻었다. 티슈를 뽑아서 손을 닦고 입 언저리 물기도 닦았다. 입과 손에 있는 니코틴 냄새는 많이 없어졌다. 콧등 물기를 닦는 순간 코안에 박혀 있던 니코틴 냄새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아, 안 없어지네. 내가 생각해도 역겨워. 정말 끊어야겠다.’  


 <2024년 3월 20타인의 향기>

 아침에 샤워를 하는데 국장의 말이 떠올랐다. 거울 속 나를 보며 ‘나만의 향기는 무엇일까? 덧입혀진 향기가 아니라 아무것도 더한 것이 없는 날것 그대로일 때 나는 어떤 냄새가 날까?’를 생각했다. 모르겠다. 언제나처럼 바디미스트를 뿌린 후 출근길에 나섰다. 출근길 내내 ‘향기’라는 두 글자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홍대입구역에 내렸다. 추웠다. 재빨리 지하철 역사로 내려갔다. 에스컬레이터를 두 계단씩 내려갔다. 그냥 추워서 빨리 내려갔다. 이른 시간인데도 제법 사람들이 보인다. 아무도 없는 대기 줄로 가서 첫 번째 탑승 줄에 섰다. 지하철 이동상황을 나타내는 전광판을 보니 합정역에서 막 출발해서 오고 있었다. 지하철 출입문에 붙어 있는 시 한 구절에 눈을 뺏겨 잠시 추위를 잊어본다. 그래도 머릿속에는 ‘향기’라는 글자가 계속 맴돌고 있었다.     

 지하철 입장 행진곡이 울리고, 선로에서 열차 오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선두 객차가 지나갔다. 나는 열차 속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자리가 있어야 할 텐데. 이른 시간이라….’ 열차가 정지했다. 다행히 빈자리가 보였다. 출입문 바로 오른쪽 난간 쪽에 6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 두 자리가 비어 있었다. 두 자리 건너 또 다른 남자가 앉아 있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빈자리로 갔다. ‘앗, 뭐야 이건?’ 난간 쪽 남자는 쩍벌남이었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 사람들이 지나가도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운데 앉은 중년 남자도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팔짱까지 끼는 바람에 자리가 비좁게 느껴졌다. 분명히 자리는 두 자리가 비었는데 앉을 수 있는 공간은 1.5자리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0.5자리만큼 걸터앉았다. 그리고 엉덩이를 좌우로 비비면서 정확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양옆의 남자들은 자세를 고쳐앉지 않고 내가 그러는 둥 마는 둥 신경 쓰지 않았다. 

 몇 정거장을 지났다. 내 옆 한자리가 비어 있는데 쩍벌남 때문에 사람들은 앉으려다가 포기하고 서서 갔다. 쩍벌남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자세를 고치지 않았다. 내 오른쪽 중앙자리 다리 꼰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다리를 스쳐도 그대로 있었다. 남들 불편한 것 보다 자기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성질 같아서는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기도 했고, 상식이 없는 사람과 다퉈봤자 가치도 없을 것 같았다. 대신 나는 가방을 무릎 위에 놓고 서류를 꺼내면서 어깨와 팔이 옆에 있는 다리 꼰 남자와 부딪치며 불편하게 했다. 그러자 다리 꼰 남자가 벌떡 일어서더니 나를 쳐다봤다. 나는 지지 않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바라봤다. 그러자 그 남자는 을지로 3가 역에서 내렸다. 왼쪽 쩍벌남은 그대로 있었다. 다리 꼰 남자를 내려보냈으니 내가 승리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가 원래 내릴 역에서 내렸는지, 아니면 나 때문에 내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게 중요했다. 속이 시원했다. ‘아, 이제 저 쩍벌남만 내리면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안 받을 텐데.’ 옷차림새가 공사판에 막노동하는 사람처럼 거칠어 보였다. 신발은 산업 안전화를 신었다. 끈을 제대로 매지 않아서 너덜너덜해 보였다. 공공이용 시설에서 기본예절도 모르는 사람이라 격이 떨어져 보였다. 그래서 상종하기 싫은 감정이 들었다. 땀으로 범벅된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다리 꼰 남자가 내리고 나서 다시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네 명의 남자가 동시에 들어왔다. 공사판 막노동꾼처럼 보였다. 연장이며, 가방이며, 흙 묻은 청바지에 얼마나 빨지 않았는지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두툼한 패딩, 흙먼지로 새까매진 운동화, 감지 않아서 한쪽이 엉겨 붙은 머리, 면도날이 부러질 만큼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이건 노숙자인지 새벽 공사장 일 나가는 인부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내 맞은편에 빈자리가 3자리 있었고, 내 옆자리, 그러니까 다리 꼰 남자가 앉아 있던 자리가 빈자리였다. 4명 중 한 명은 확실하게 내 옆에 앉을 것 같았다. ‘오지 마라. 오지 마라. 맞은편에 3명 앉고 한 명은 서서 가라. 너희들끼리 무리를 만들어서 가라. 제발 이쪽으로 오지 마라.’ 오늘 일진이 사나운 걸까? 4명 중 가장 더럽게 보이는 남자가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나는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의 이상한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스멀스멀 스며들어왔다. 구역질이 날 뻔했다. 땀 냄새와 오래된 옷 냄새, 흙냄새, 원래 사람 냄새가 섞여서 최악의 냄새가 제조되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왼쪽에는 쩍벌남이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사람들이 앉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얼른 대각선으로 눈을 돌렸다. 왼쪽은 불편하고 오른쪽은 냄새나고 미칠 지경이었다. ‘그냥 다음 역에서 내렸다가 다시 탈까? 아냐, 옆 칸으로 갈까? 앞으로 20분은 더 가야 하는데. 와, 정말 미치겠네. 이제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오늘 왜 이러지?’ 고민하고 있는데 4명의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가 내 옆 남자에게 다가와 백 원짜리 동전 4개를 건네며 말했다. 

 “이거 잘 가지고 있어. 이따가 자판기 커피 뽑아먹게.”

 “네.”

 뭐지 이 시츄에이션. 이 사람들 노숙자인가? 어쩐지 더러운 옷이며 냄새가 진동하고…. 주변 사람들은 점점 피하기 시작했다. 이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앉아서 가겠다는 일념으로 버티는 젊은 사람(30대로 보이는 남자)과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는 젊은 여자(30대로 보임)가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앉아 있었다. 그런데 대화하는 말투를 들어보니 외국인 같았다.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남자가 오늘 할 일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그럼 노숙자는 아닌데. 아, 막노동일을 하는 외국인노동자?’ 순간 그 냄새가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고향을 떠나 낯선 이국땅에서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옷을 사 입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남의 시선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 같았다. 열심히 일해서 가족과 함께 살겠다는 생각만 해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정면을 바라봤다. 냄새는 여전히 내 코끝을 간지럽혔다. 참을 만했다. 그렇게 다섯 개 역을 지났다. 그들은 왕십리역에서 내렸다. 내 옆에 앉았던 남자가 내려서 걸어가는 모습이 차창 너머로 보였다. 열심히 사는 사람의 당당한 발걸음이 느껴졌다. 그가 떠난 빈자리에 남은 향기는 분명히 사람 사는 냄새였다. 처음 다리꼰 남자가 무색무취의 예의 없는 냄새였다면 외국인 노동자의 냄새는 책임감 있는 남자의 향기였다. ‘이 사람들은 나에게서 어떤 향기를 느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두 개 역을 더 지났다. 쩍벌남은 여전히 다리를 쩍 벌리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앞에 서서 불알을 걷어차고 싶었다. 그런 장면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내친김에 나의 상상은 걷어차고 고통스러워하는 쩍벌남에게 ‘쩍 벌린 대가야!’라고 말하는 것까지 이어졌다. 혼자 킥킥대며 웃었다. 쩍벌남의 옆모습을 쳐다봤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꿋꿋하게 벌리고 있었다. 

 [다음 내리실 역은 성수역, 성수역입니다.]

 성수역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탔다. 이제 쩍벌남 다리도 접힐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쩍벌남 옆자리에 앉으려고 시도하다가도 다리를 오므려주지 않자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대신 내 오른쪽 옆에는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앉았다. 가방을 메고 깔끔한 옷차림에 머리는 스프레이로 잔뜩 힘을 줘서 세웠다. 뿔테 안경이 옷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속으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 나는 또 다른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너무나 강렬한, 아니 너무나 강력한 메가톤급 향수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순식간에 내 뇌에 전달되었다. 머리가 아팠다. 이런 향수는 처음이었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멋쟁이 신사로 보였는데 참을 수 없는 고통의 무기를 장착하고 있었다. 무색무취의 다리 꼰 남자, 악취가 났던 외국인노동자의 향기는 내가 고개를 돌리거나 조금만 참으면 되었었다. 이번 남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일단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곧이어 호흡도 곤란해졌다. 마른기침이 나오기 시작하며, 그대로 있으면 토할 것 같았다. 예의고 뭐고 없이 얼른 맞은편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크게 숨을 쉬었다.

 “휴우, 휴우.”

 호흡을 가다듬고 잠시 진정을 하자 다시 괜찮아졌다. 그 남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관심도 없었다. 나는 핸드폰 메모장에 지금의 생각을 적었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건 향기다. 불쾌한 영향을 주는 건 냄새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향기가 나야 한다. 냄새가 난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적자 어제 국장실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국장의 태도가 싫었다. 국장이 3년 선배지만 내 군 생활 3년을 빼면 나랑 동갑이다. 그래서일까 기분이 태도가 되어 말에 가시가 들어있다고 느꼈었다. ‘국장이 나를 불러서 담배 이야기를 하기까지는 많이 고민했을 거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차피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잘못된 걸 보더라도, 냄새가 나더라도 아무 말 안 한다. 피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국장은 달랐다. 날 불러서 직접 말해줬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일 거다. 하나는 부하직원들이 고충 사항으로 말했을 수도 있고, 나머지 하나는 - 맞출 가능성은 50%인데 - 진짜 나를 생각해서일 거다.’ 나는 맞은편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나도 냄새나는 인간이었구나!’ 씁쓸한 마음에 가방 속에 있는 담배를 움켜쥐었다. 있는 힘을 다해 구겨버렸다. 

[다음 역은 잠실역, 잠실역입니다.]

이번에 내린다. 나는 사람의 냄새에 대해, 아니 나의 냄새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나는 어떤 냄새일까? 기분 좋은 향기일까? 기분 나쁜 썩은 냄새일까? 그 모든 냄새와 향기를 뒤로하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아, 참 쩍벌남의 최후를 생각하니 아직 정의는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잠실나루역에 지하철이 섰을 때 지하철 형사대가 들어왔다. 그들은 쩍벌남을 한눈에 알아보고 양팔을 잡고 끌어내렸다. 

 “당신을 성희롱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불리한 진술에 대해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쩍벌남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래? 이거 놔. 난 아무짓도 안 했어. 놔 이거.”

 “당신이 다리 벌리고 변태 짓 한 거 영상으로 신고가 접수됐어요. 할 말 있으면 지구대로 가서 하세요.”

 형사들은 강하게 저항하는 쩍벌남을 양쪽에서 들고 강제로 끌어내렸다. 사람들은 고소하다는 듯 멸시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그때 쩍벌남 맞은편에 있던 아가씨의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 말했다.

 “아빠, 경찰이 와서 데리고 갔어. 아휴 소름 끼쳐. 해결됐으니까 걱정하지마.”

 나는 그녀가 영상을 찍어서 아버지에게 보냈고, 아버지가 객차번호와 영상을 지하철 형사대에 신고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어쨌든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던 빌런이 제거된 것이다. 다시 지하철은 평온한 향기 모드로 바뀌었다. 지독한 향수남을 제외하고 말이다.    

 

<2024년 3월 21나만의 향기>

어제 지하철 향수남 때문에 하루종일 냄새에 예민했다. 구내식당에서 나는 맛있는 냄새에 지독한 향수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냄새가 나면 계속 지독한 향수 냄새와 연결되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허 팀장에게 말했다.

 “허 팀장. 퇴근 후 족발에 소주. 어때.”

 “어제도 달려서 오늘은 쉬어줘야 할 것 같습니다.”

 “허허 약한 소리. 내가 살게 가자.”

 “과장님. 전 분명히 제 의사를 말했습니다.”

 “그래. 알았어. 이따 여섯 시 반까지 족발집으로 와. 허 팀장 안 오면 나 혼자 마신다. 상관을 혼자 두기 있기 없기?”

 나는 부하직원에게 술 먹자고 부탁을, 아니 사정을 하고 있었다. ‘아, 옛날이여. 나 때는 아랫사람이 먼저 술 먹자고 했었는데. 그때가 그립다.’ 그날 허 팀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혼자 족발 시켜놓고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며 술을 마시는 나 자신이 초라했다. 나를 인싸라고 추켜세우던 놈들은 다 어디 갔을까? 한 병을 비우고 나니 쪽팔림도 없어졌다. 에이 빌어먹을. 그때였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천근만근! 혼자 술 먹는 거야. 천하의 인싸가 왜 혼자 술을?”

 총무과 동기 이 과장이었다. 늘 내 이름을 가지고 농담하는 동기. 총무과 회식이라고 했다. 그는 나를 보고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천 과장. 게스트로 받아줄게. 와라.”

 “내가 미쳤냐? 허 팀장 기다리고 있어. 곧 올 거야!”

 아이 쪽팔려. 소주 한 병으로 수모를 감당하기는 부족했다. 오지 않는 허 팀장, 아니 오지 않겠다고 말한 허 팀장이 야속했다. ‘제기랄, 또 남 탓하고 있잖아. 못났다. 정말. 네가 그러니까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거야.’ 이쯤 되면 혼자 질문하고 혼자 대답하고 그런 경지에 이른다. 두 병을 깔끔히 비우고 일어섰다. 계산하고 밖에서 담배를 입에 물려고 꺼냈다. 모두 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한 개비를 꺼내서 쪼잔하게 연결 수술을 했다. 담배 속을 조금 들어내고 여유 공간을 만든 다음 필터 쪽 담배 끝을 압축한 뒤 분리된 여유 공간으로 밀어 넣었다. 간신히 붙였다. 불을 붙인 후 힘껏 빨아들였다. 연결 부위로 연기가 새 나왔다. 시원하게 쫙 빨리지 않아서 맛이 없었다. 냄새만 손가락에 배겨졌다. 나는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구둣발로 짓이겨 버렸다. ‘에잇, 되는 게 하나도 없네.’ 내 손가락에 담배 냄새만 베었다.     

 술을 마시고 지하철을 타면 항상 경로석이 있는 출입문 쪽에 줄을 선다. 술 마신 사람들은 으레 경로석 부근에 모여서 간다. 누가 조종하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덜 주려고 일부러 가운데 쪽으로 가지 않는다. 그래서 퇴근길 지하철은 술 마신 사람 구역, 안 마신 사람 구역이 대충 뉘어진다. 나는 지금 술 냄새, 담배 냄새 나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또 고개를 들어 인간의 향기가 날 것 같은 곳을 바라본다. ‘자리가 비면 잽싸게 달려가 앉으리라.’ 가운데 쪽에 한 아주머니가 일어나서 내리려고 했다. 나는 거의 다이빙하듯이 달려가 앉았다. 그 짧은 거리에 숨을 헐떡였다. 옆에 있던 젊은 아가씨가 손을 코에 가져다 대며 고개를 돌렸다. 술 마신 사람은 인간의 향기를 찾고, 멀쩡한 사람은 냄새나는 사람을 피한다. 그게 세상살이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본다. 내일 아침이면 샤워를 하고, 바디 미스트를 뿌리고, 지하철에서 냄새나는 사람을 피하고…. 그렇게 나는 향기로웠다가 냄새났다가를 또 반복할 것이다. 제기랄. 진짜 내 향기는 뭐야?     


작가의 이전글 좋은 시간, 나쁜 여자(1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