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 아빠가 아이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
"나는 우리 보리한테 내 유산 전부 물려줄 거야." 친구는 단호하고도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조금 정확히 말하자면, 채팅창에 적었다. 주말 저녁, 오랜 친구 셋이 맥주 한 캔씩 들고 모인 랜선 회동 자리에서다. 한 친구가 요즘 들어 부쩍 속을 썩이는 중학생 첫째 아이 이야기를 꺼내며, 훗날 가진 재산 전부를 자식들이 아닌 반려견 푸들에게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굳이 채팅창에 적는 이유는, 가족들이 들을까 봐서란다.
소위 명문대 출신의 엄마 아빠 사이에서 아이가 공부 압박을 어지간히 받겠구나 싶어 애 적당히 잡으라고 농담 섞어 말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나라고 뭐가 다를까 싶은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더 이상 마냥 귀여운 꼬맹이가 아니게 된, 몸도 마음도 부쩍 자라 버린 아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아빠들의 기분은 다들 비슷한 것일까? 나도 괜스레 혼자 잘 놀고 있는 우리 집 반려견 하루를 데려다 무릎에 앉혀놓고 쓰다듬었다.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좋은 아빠 되기"라는 교육 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 큰아이가 유치원생이 되면서, 나는 내가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행여나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불안했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배울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교육 내용 하나하나를 뚜렷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첫날 자기소개를 하면서 내가 했던 이야기만은 생생하다. 나중에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같이 캐치볼을 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친구와 내가, 굳이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가 되고 싶다는 등의 낯간지러운 대화를 나눈 기억은 없다. 하지만, 가끔 술자리에서 서로에게 털어놓는 유년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내 아버지보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권위적이지도 무뚝뚝하지도 않으며, 비밀을 공유하거나 취미 생활을 함께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소위 “베프”같은 존재 말이다.
우리는 나름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늦지 않게 퇴근해서 아이가 잠들기 전에 얼굴을 마주하고, 주말이 되면 좋다는 곳을 찾아 데리고 다니고, 틈나는 대로 주방을 어질러가며 아빠표 요리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에게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공들여 키운 아이들의 키가 제 엄마를 훌쩍 넘어섰을 무렵,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이 아이들이 대체로 게으르고, 간혹 말버릇이 경솔하며, 종종 행동이 야무지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목소리도 우렁차다.)
내가 좋은 아빠가 되면 아이도 멋진 사람으로 성장할 줄 알았는데. 이제 겨우 중고등학생이라고는 하지만, 나만큼 커버린 녀석들이 집에서 하는 행동거지를 보고 있자니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엄격한 아버지가 되어 훈계를 늘어놓고 기강을 잡으려 해 봤자, 태세 전환을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맘에 안 드는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는 기분이 이와 비슷할까? 꼰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아빠는 반려견을 끌어안고 안방이라는 동굴로 숨어드는 것이 고작이다.
어쩌면 자식을 못 미더워하는 심리는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의지만으로는 극복 불가능한, 인류라는 종의 특성일지도 모르겠다. 기원전 소크라테스도 “요즘 젊은것들”을 무척이나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하니 말 다했지 싶다. 어쩌면 나와 내 친구가 그토록 야속하다 생각했던 우리 아버지들도 지금의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것은 어쩌면 무관심이 아니라, “나의 분신인 줄 알았지만, 어느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인격체가 되어버린” 자식을 바라보는 씁쓸한 시선이었을까?
아이들에게 재산을 남겨주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는 친구에게 조금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었다. 평범한 직장인인 우리에게는 아마도 남겨줄 재산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슬프지만 개의 평균 수명은 길어야 15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던 우리는 결국 실패하고 만 것일지, 아니면 아직은 아이들과의 시간에 어떤 반전이 남아있을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