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주택에 사는 수고로움, 번거로움, 그리고 큰 즐거움
주재원 파견이 결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홀로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가족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미리 현지에 가서 준비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업무 인수인계가 가장 중요한 일이겠으나,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을 새로운 환경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만큼,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 또한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한 전학 수속부터 운전 면허증 발급까지, 한국에서 익숙했던 모든 것이 바뀌고, 많은 것들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집”을 장만하는 것이다. 주재원들은 회사의 주거 지원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본인들의 선호에 따라 아파트, 단독 주택 등을 골라 계약할 수 있다. 나는 회사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나름 교육 여건과 생활 환경이 양호하다는 동네의 단독 주택을 찾아보기로 했다.
부동산 중개인이 소개해 주는, 적당한 가격 범위의 집들 중에서 몇 개를 골라낸 뒤 직접 보면서 괜찮은 집인지 따져봐야 한다. 단층을 원하는지 아니면 이층집을 원하는지. 대부분 카펫 생활을 하는 미국 사람들의 특성상 마루 바닥이 깔린 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집이 너무 낡지는 않았는지, 방의 숫자와 마당의 크기는 적당한지,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는 포함되어 있는지 등을 잘 따져봐야 한다. 애완동물을 키울 수 있는지 여부도 당연히 미리 확인해야 한다.
이렇게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일순위의 집을 누군가 간발의 차이로 먼저 계약하는 바람에, 결국 나는 이순위였던, “붉은 벽돌의 이층집"을 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곳은 마루 바닥에, 커다란 거실 창으로 해가 잘 들고, 뒷마당이 아주 넓은 집이었다. 얼마 뒤, 나는 사람 좋은 얼굴의 집주인과 계약서를 쓰고 악수를 한 뒤 집 열쇠를 받았다. 한동안 묵고 있던 호텔에서 나와, 겨우 마련한 매트리스 한 장을 바닥에 깔고 누워 앞으로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을 상상했다.
텅 빈, 커다란 이층 집에서 홀로 첫날 밤을 보내면서, 나는 조금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이중 도어록이 설치된 튼튼한 아파트의 현관문에 익숙한 내게, 고작 자물쇠 하나 달린 고풍스러운 나무 현관은 영 불안할 수밖에. 게다가 현관에, 뒷마당에, 차고에 단속해야 할 문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그뿐인가? 마당을 둘러싼 나무 펜스는, 성인 남자가 맘만 먹으면 훌쩍 뛰어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처럼 허술했다. 이쯤 되니, 낯선 환경이 가져다주는 불안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회사 사무실에서 첫날 밤을 보냈다는 예전 어느 주재원의 심정이 이해됐다.
단독 주택에 살면 해야 할 일이 많다. 2주에 한 번 잔디를 깎아야 하고, 잔디가 죽지 않도록 아침저녁으로 스프링클러를 작동시켜 충분히 물을 줘야 한다. 잔디가 죽거나, 혹은 무성하게 자라 미관을 해치면 소위 입주민 위원회(HOA, Home Owner Association)라는 곳에서 친절하게 경고장을 보내준다. 때가 되면 사다리를 타고 다락에 올라가 시스템 에어컨 필터도 갈아야 한다. 적당히 연식이 경과한 목조 주택은 때가 되면 알아서 하수구가 막히고, 차고 문이 고장 나고, 스프링클러 밸브가 망가진다.
집을 수리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비용을 청구하기 위해 집주인에게 연락하는 번거로움은 그나마 참을만했다. 수시로, 허락도 없이 내 집을 드나드는 무언가가 출몰한다는 사실에 비하면 말이다. 집을 계약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그 통통하게 살찐 바퀴벌레와 마주한 순간 나는 진심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날짜를 헤아렸다. 수시로 출몰하는 바퀴벌레와 함께 살아갈 자신이 없었던 나는 결국 방역 업체와 계약을 했고, 그들이 집안 곳곳에 설치한 트랩(덫)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가급적 쳐다보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가끔 그 붉은 벽돌의 이층집 이야기를 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집 앞마당과 커다란 참나무를 직접 전구로 장식했던 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면 차고 문을 열고 캠핑 의자를 꺼내어 앉아 비 구경을 했던 일, 종종 뒷마당에 출몰한 토끼를 쫓던 우리 집 개 하루를 보며 웃던 일들을 떠올리며 참 재미있었다고. 정말 그랬다. 굳이 거창하게 바베큐를 준비하지 않아도, 날씨가 좋은 날이면 뒷마당 테이블에 밥상을 차리고 네 식구가 둘러앉았다. 소풍과도 같은 시간들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우리는 종종 그때 인연을 맺은 이웃들을 통해 "붉은 벽돌의 이층집"의 안부를 묻고는 한다. 우리가 떠난 뒤 집주인은 제법 큰돈을 들여 집을 수리했고, 새로운 세입자를 들였다고 했다. 미국을 떠나던 무렵, 가족들이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고 이삿짐들을 모두 내보낸 뒤 다시 4년 전의 처음과 같이 텅 비워진 집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은 조금 쓸쓸하게 느껴졌다. 집주인에게 열쇠를 넘겨주고 공항으로 향하던 미국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그에게 부탁해 집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 붉은 벽돌의 이층집도 오래도록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