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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서 Feb 02. 2021

너는 모른다

프로불편러


"너는 MBTI가 뭐야?"


  요즘 아는 사람을 만나면 MBTI가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MBTI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사실 몇 년 전부터 MBTI를 검사해봤다. 물론 정식 검사는 아니었고 그때도 인터넷에 떠도는 검사였다.


그때 한참 MBTI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봤었는데, 정식 검사를 하려면 한 시간 정도 걸리며, 돈을 내고 해야 한다. 그래서 인터넷에 나오는 MBTI 유형별 성격, 궁합 같은 것을 믿지 않는다. 내 MBTI는 과거 몇 년 전에는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나왔었으며, 지금도 가끔 한번 해볼 때마다 조금씩 바뀌곤 한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MBTI를 맹신한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MBTI를 물어보면 장난식으로 “뭐 같은데?”하고 되묻는다. 그럴 때마다


 “0000 아니야?” “0000 같은데”, “에이 쟤는 무조건 0000이지” 같은 말이 오간다.

그래서 “그거 정식으로 한 검사도 아닌데 너무 믿지 마”라고 하면

“에이 그래도 이건 과학적인 방법이잖아” 라며 어느 정도 믿을만한 부분이 있긴 있단다.


그런데 이 말, 어디서 들어본 거 같지 않은가? 맞다. 예전에 혈액형별 성격, 유형, 궁합 등에 대해서 유행이 돌았을 때 들었던 말과 똑같다.


"너 A형이지!" "아니야 쟤는 B형이야 맞지?" "에이 AB형이야" 같은 말들 말이다.


물론 그때도 혈액형별 분류를 믿지는 않았다. 전 세계 인구수가 70억 명인데, 인간의 유형이 고작 4가지(물론 세부적으로 분류하면 그보다는 좀 더 많다)라는 을 믿을 수 없었다. 차라리 별자리는 낫다. 별자리는 적어도 인간을 12가지 유형으로 분류해준다. 우주에는 우리가 규정하나 관측하지 못한 셀 수 없이 많은 별자리가 있으니 어쩌면 그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간을 유형화시키려는 노력은 과거부터 계속 있었다. 우리는 지금도 알게 모르게 사람을 관찰하며 이를 통해 얻은 정보로 그 사람을 단정 짓는다.


‘저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럴 거야 ‘


때로는 그 사람이 자신의 기대치에서 벗어났을 때 실망한다.


‘에이 도덕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나도 예전에는 누군가를,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과거에는 종종 저 사람은 나랑 안 맞아, 하면서 나만의 기준을 만들고 사람을 가려서 만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

그 사람이 살아온 몇 년, 혹은 몇십 년의 세월을.

그 사람이 겪어온 나날과 거기서 비롯된 생각과 감정을.

눈앞에서 보이는 말과 행동 같은 단편적인 모습으로 그 사람을 평가한다.



이런 나의 믿음을 깨 줬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을 참 별로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랑은 맞지 않는다고 믿었다. 어느 날 그 사람과 길게 진솔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을 때, 나의 믿음은 깨졌다. 나는 그 사람을 오해하고 있었구나 싶어서 괜히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많은 사람이 인간을 유형화시키고 거기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찾으려고 한다. 어쩌면 이게 우리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심한다.


이런 유형화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나와는 다른 사람, 너는 나와 달라.

너는 이단이야, 너는 흑인이야, 너는 저쪽 라인이야. 너는 빨갱이야. 너는 그 사람 편이야.

'그러니까 분명 이럴 거야'

그리고 그 사람이 나의 예측과 맞는 행동을 하면,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나는 나 조차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알리 없다. 우리의 본성이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해야 한다면, 나는 본성을 거부하겠다.


그래, 나는 모른다. 그리고 너도 모른다.


아참, 그래서 내 MBTI가 뭐냐면...

그게 사실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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