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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 VS 옥황상제

알쏭달쏭한 용어에 대한 생각, 그 첫째

   오랜 세월을 거치며 우리네 삶에 영향을 준 사상 및 종교를 말할라치면 유교와 불교, 도교를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생각으로는 유교는 학문, 그와 결합된 정치에 가장 영향을 미쳤다면, 불교와 도교는 민간의 풍습, 문학 및 예술에 큰 영감을 주었다고 본다. 특히 불교와 도교는 인간의 삶이 시작되는 태초부터 함께 했던 민간신앙과 한 덩어리로 융합하여 그 갈래를 나눌 수 없을 만큼 친밀하고도 유사한 문화 형태를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용어 중 염라대왕과 옥황상제에 대하여 개괄해보고자 한다. 


  염라대왕과 옥황상제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친숙한 신들의 이름이다. 염라대왕은 최근 천만 이상의 관객을 자랑하는 '신과 함께'라는 영화를 통해 죽은 자가 자신의 죄업을 판단받기 위해 가는 곳, 바로 저승의 신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옥황상제는 그 자체보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타서 인간 세계로 내침을 당한 여러 '선녀' 이야기와 더불어 등장하는 천상을 다스리는 신으로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종교의 갈래가 다르다는 것과 어떤 종교와 각각 연결된 상징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기에 좀 더 상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육체만 없어질 뿐 생전에 행한 선행과 악행에 따라 앞으로 어디에 태어날지가 결정된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사후 심판을 받는다는 시왕(十王) 사상이 나오게 되었다. 시왕이라 함은 죽은 자가 가는 곳인 명부(저승)에서 죽은 자의 죄업을 심판하는 열 명의 대왕, 즉 진광 왕(秦廣王), 초강 왕(初江王), 송제 왕(宋帝王), 오관 왕(五官王), 염라대왕(閻羅大王), 변성 왕(變成王), 태산 왕(泰山王), 평등 왕(平等王), 도시 왕(都市王), 전륜 대왕(轉輪大王)을 일컫는 말이다. 어디서 많이 보거나 들은 단어이지 않은가? 맞다. ‘신과 함께’ 덕분에 눈에, 귀에 익숙한 신들이다. 이중 염라대왕은 저승에 간 죽은 자가 다섯 번째로 맞이하는 칠일을 관장하는 신이라고 한다. 우리는 염라대왕 앞에는 '업경'이라는 거울이 있어서 저승에 온 죄인의 세상에서 한 일체의 선행과 악행이 비친다는 것은 많이들 알고 있는 지식일 것이다. 그런데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는 원래 염라대왕이 천상을 다스리는 존재였으나 지옥 신앙이 발달하면서, 지장보살과 함께 지하(지옥)의 세계를 관장하는 주재자로 변신하였다고 전하며, 야마, 염마 등의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세상을 빛과 어둠, 선과 악, 하늘(천당)과 지하(지옥) 등의 둘로 나누어 이해하는 사고의 틀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그리고 이 종교는 아마도 주변 여러 지역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나는 이 종교가 고대에나 존재했고, 현재는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조로아스터교 사원이 존재하고, 특히 '퀸(Queen)'이란 전설적인 팝그룹의 보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의 집안이 조로아스터교 신도였다는 사실은 매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경험이 있다. 어쨌든 조로아스터교는 주변 여러 지역의 사상과 종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서양 사상의 중심이라 할 유대교(기독교와 이슬람 종교는 유대교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이니, 세계 3대 종교 중의 두 개의 뿌리가 바로 유대교이다)의 '천당과 지옥', 대표적 동양 사상인 불교의 '극락(천당과 같은 개념)과 나락(지옥과 같은 개념)'의 이분법적 구분은 조로아스터교가 세상을 빛과 어둠이라는 이분법적인 틀로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페르시아 바로 옆 동네였던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실크로드를 통해서 기원 1세기 정도에 중국으로 전래되었다.


  한편 중국에서는 불교의 사후 심판에 대한 생각이 전해지기 이전부터 이미 장생불사를 믿는 도교의 영향으로 선행과 악행에 따라 수명이 결정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진시황이 영생불사를 위해 불로초를 찾았다는 이야기는 바로 도교적 발상인 것이다. 이렇게 불교인 듯, 도교인 듯 다양한 생각의 경향성으로부터 지옥의 천자(현실세계의 우두머리가 황제, 즉 천자라면 지하 세계의 황제라는 의미)로서 부하들을 거느리고 지옥을 지배하며 나아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염라대왕의 이미지가 정착되었다고 하겠다. 간단히 말해 염라대왕은 지옥을 다스리는 주재자로, 이는 '불교의 신'이다. 


  이제 옥황상제에 대하여 알아보자. 옥황상제는 옥황(玉皇) · 천황(天皇) · 옥제(玉帝)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염라대왕이 불교적 신(神)이라면, 옥황상제는 도교의 신이다. 도교의 여러 신들 중에서도 하늘의 최고 통치자이다. 도교는 우리 삶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과 현상을 신격화한 종교?라고 말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애니미즘, 샤머니즘 등의 원시 신앙과 가장 친밀하게 결합한 종교(사상)가 바로 도교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주 쓰거나 알고 있는 단어들에는 도교와 관련되는 말이 많다. 불로초, 십장생, 신선, 선녀, 사신도, 산신령, 도깨비, 용왕, 조왕신, 성황당 등등. 무수히 많지 않은가. 또한 이런 단어들이 나오는 민간의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도교가 전하는 옥황상제의 탄생설화는 다음과 같다.


 ‘ 광엄묘악국의 왕인 정덕 왕은 후손이 없자 여러 도사들을 불러 기도를 올리게 하였다. 도사들이 힘을 모아 기도를 올린 지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정덕 왕의 왕비 보월 비가 태상노군에게 간청하여 아기를 받는 꿈을 꾸고 일어나 임신을 하게 되었고, 이렇게 태어난 아기가 옥황상제이다.’


  이런 탄생의 비화를 갖는 옥황상제는 자비심과 인정이 많은 인물로 성장하였고, 나라의 보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 정치를 펴다가,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고는 자신은 산속에서 수행에 힘쓰며 800겁(劫, 불교의 시간 단위로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무한한 우주의 시간을 말함)을 거쳐 도가의 비법을 깨달아 인명을 구제하였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이렇게 본다면 옥황상제는 처음부터 신적인 존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식의 신에 대한 관념은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는 생각을 설파하는 종교가 불교이니, 부처는 본래부터  스스로 있다거나, 세상을 창조했다거나 하는 절대적 존재는 아닌 것이다. 이렇게 불교와 도교는 약속이나 한 듯이 매우 인간 친화적인 신관을 갖는 종교이다. 


  도교가 설명하는 방식에 따르면, 인간이 1만 번의 선을 행하면 옥황상제가 된다고 한다. 1만 번? 옥황상제 되는 거 그리 어렵지 않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한 번의  악행으로 지금까지 쌓았던 공덕이 다 사라진다고 하니 계속하여 1만 번의 덕행을 쌓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민간에 전하는 무영탑에 얽힌 전설이나 화훼탈 이야기와 같이 하룻밤 계율을 어겨 일을 그르친다는 스토리 구조는 모두 도교적 설정이지 않을까 한다. 


  그럼에도 원론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인간으로서 선행을 거듭 쌓은 결과 천상계의 왕으로 군림하게 된 옥황상제는 그래서 인간에게는 친근할 뿐 아니라 하나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천계와 인간계를 두루 아우르는 옥황상제 이야기가 이러한 가능성과 친근성을 바탕으로 많이 회자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도교는 우리의 삶과 정서 속에 너무도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는 종교이다. 그리고 다른 종교들과의 결합력도 강해서 민간신앙 및 무속신앙과 불교 등과의 콜라보는 거의 환상적이다. 그래서 불교인 듯, 도교인 듯, 미신인 듯 그 갈래를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특징을 가질 뿐 아니라, 너무 격의 없고 친밀해서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약점을 갖는다. 그래서 조직력이 약하고, 교리를 객관화하여 이론적인 틀을 만드는 것이 타 종교에 비해 약할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도교를 미신 정도로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민중들과의 친밀성은 가끔 혼란기에 혁명적 사상으로 급발전하거나, 민족의 시조와 관련된 종교로써 강력한 응집력을 갖는 종교로 나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교과서에서 만나는 황건적, 오두미교와 같은 중국의 도교 조직이나 우리의 대종교(단군교)는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염라대왕과 옥황상제를 살펴보고자 했는데, 이야기가 옆으로 많이 새어버렸다.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이를 잘 꿰어낼 내공이 없음에서 기인하는 산만한 글이 아닐 수 없다. 독자들은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오늘 글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심플하게 말하자면 천국은 옥황상제, 지옥은 염라대왕이라는 이분법으로 이해해도 무방하겠으나, 이 두 존재가 유래하는 사상은 도교와 불교의 차이가 있다는 것 하나와, 종교의 갈래 이전에 삶과 죽음, 선과 악의 문제와 관련해 가장 민중과 밀접한 두 신이 바로 옥황상제와 염라대왕이라는 사실 두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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