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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 Jun 03. 2023

스트레스는 얼마나 나쁜가

남편이 보드카 소스와 시금치를 넣고 스파게티를 만든다. 그동안 나는 닭 허벅지살에 이탈리안 허브를 갈아 넣고 소금과 후추 간을 한 뒤 오븐에 넣는다. 다이닝 룸에 있는 원형 테이블에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남편과 아이 이야기를 한다. 대학원을 함께 다니던 친구 집에 다녀왔다. 처음 친구 아이의 방에 아이를 살짝 내려놓았을 때 아이는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에 울음을 터뜨리려고 했다. 얼른 아이를 안아 내 무릎 위에 앉혔다. 아이는 처음에는 내 무릎 위에서만 놀더니 곧 친구 아이의 근처로 갔고, 이내 내가 곁에 없어도 잘 놀기 시작했다. 낯선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새로운 곳과 사람을 탐색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이 작은 아이의 회복탄력성에 감탄한다. 저녁을 다 먹고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서재로 향한다.


서재 벽 하나를 가득 채운 창으로 거리의 불빛이 밀려 들어온다. 서재 방 불을 켜고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린다. 나를 압도하는 34인치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는다. 한숨을 쉰다. 어제 쓰다 만 논문의 서론을 마저 쓰기 위해 컴퓨터 전원을 켠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 남편과 아이가 없는 텅 빈 서재에 혼자 앉는다. 워드 프로그램의 빈 페이지 위에 문장을 하나, 둘 타이핑하면서 힘들다고 생각한다. 논문의 초고를 쓰는 것은 모든 논문의 과정 중에서 가장 힘들다. 좋은 데이터가 있고 좋은 결과가 있어도, 아무것도 없는 빈 페이지를 단어로 꽉 채우는 과정은 괴롭다. 이 단어들은 내가 왜 이 연구를 시작했고 이 연구가 왜 중요한지 논리적이면서 재미있게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처음 쓴 글은 논리적이지도, 재미있지도 않다. 이 연구가 중요한 건 너무 당연해서 어떻게 더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이 연구가 너무 하찮아서 그 중요성을 설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서재가 아닌 침실에 들어가서 쉬고 싶다고 생각한다. 침대 옆에 있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주말에 읽기 시작했던 소설책을 마음껏 읽고 싶다. 아이와 죄책감 없이 주말 하루 종일 놀고 싶다. 아이 낮잠을 재우고 서재가 아닌 거실 소파에 앉아 쉬고 싶다. 밤에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쓴 글과 영상을 보고 싶다. 이런 욕구가 끝도 없이 밀려온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돌보면서 한동안 연구하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죄책감 없이 아이와 놀고, 요가와 웨이트 리프팅을 하고, 글을 쓰는 대신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기만 하는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랑해서 커리어를 쌓기로 결심한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매일 저녁을 먹고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논문을 출판을 해도 계약직 연구원 자리에 6년간 머물러 있는 나를 돌아보면서 내가 고른 이 업에 대해서 많은 회의를 했다. 지난 10년 동안 이 분야에서 글을 썼는데,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다니. 더 이상 힘들고 싶지 않았다.


더 애틀란틱 매거진에 심리상담사에게 어떤 남자가 고민을 호소한다. 그는 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아내는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와 사랑에 "빠진" 감정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면, 직장 동료와 출장을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그녀가 자신을 진정 이해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이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심리상담사에게 묻는다.

오래된 깊은 관계는 힘들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거의 싸우지 않던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고 많은 빈도와 격렬한 강도로 싸우기 시작했다. 아이를 함께 키우는 관계는 단순한 즐거움에서 나아가 육체와 감정 노동을 필요로 하고, 그 노동은 결국 스트레스가 된다.


심리상담사는 남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당신은 당신의 결혼 생활에 더 이상 짜릿한 불꽃이 튀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어린아이들을 기르느라 힘든 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지루하고 룸메이트와 같아져 버린 배우자로부터 탈출하는 상상이나 기회를 매우 환영합니다. 당신의 경우 배우자와의 소통 역시 오랫동안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결혼 생활에 소통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배우자와 감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느낌을 자주 받고, 이렇게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반짝이는 새로운 짝을 만났을 때 신이 나고 활기찬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이 반짝이는 새로운 짝이 현재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힘든 일"들을 "나 대신"하고 있는지, 그리고 결혼과 관련된 문제에서 바로 나 자신이 한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힘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면 사랑하는 누군가와 어려운 일을 함께 헤쳐나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서로 많은 과거를 공유하고 있고, 서로를 향한 애정과 만족감, 그리고 가족 전체의 안정성 등 아주 많은 것들이 어려운 이 상황을 함께 잘 헤쳐나가는가에 달려있는 때 말이죠. 바에서 술을 마시면서 장난 삼아 추파를 던지는 대상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전달하는 것과, 함께 아이를 가졌고 둘째 아이를 임신한 아내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전달하는 것 사이에는 이 세상만 한 큰 차이가 있습니다.  


Alia Crum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아이를 기르는 것, 경력을 쌓는 것처럼 개인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어떤 경험들은 스트레스가 가득한 경험이다.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에서 가장 많이 배우고 성장하였거나, 굉장히 뛰어난 성취를 한 경험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하면 많은 경우 사람들은 그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밤은 깊어지고 나는 서재에 앉아 논문의 시작 부분을 쓰기 시작한다. 우리 주변에는 스트레스가 나쁘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는 관점이 만연하다. 하지만 이 내러티브를 확장하다 보면,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그들을 불행하게 하는 학교의 학업을 쉽게 만들자는 주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스트레스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어려운 수학을 열심히 배우는 것은 나중에 대학에 갈 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수학적 사고력을 증진시키며, 나중에 수학의 힘을 필요로 하는 여러 학문분야(통계, 공학, 과학)를 공부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런 분야들은 현재 더 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이래서 공부는 힘들다. 우리는 지금 공부를 하지만, 그 이득은 먼 미래에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먼 미래의 이득을 강조해서 현재 힘듦을 감수하라고 아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지연만족(delay of gratification)은 심지어 어른들에게도 힘든 일이다. 어려운 수학은 아이들의 먼 미래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금 당장 아이의 삶을 너무 힘들게 만들 수 있다.


아이를 낳고 몇 달을 평소보다 더 사납게 싸운 어느 날 나와 남편은 아이를 재우고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나는 울고 있었고 남편의 표정은 단단히 굳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상담을 받기로 결정했다. 아이를 낳고 이전과 달리 자주 싸우고 서로에게 더 뾰족한 말을 하는 우리는 서로에게 지쳤다. 하지만 이 경험을 극복함으로써 어려움을 함께 이겨낸 적이 있는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로 했다.


Alia Crum은 그녀의 연구 참여자들에게 "스트레스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비디오를 보여주었을 때 "스트레스가 우리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에 대한 비디오를 보여주었을 때와 달리 스트레스 호르몬(cortisol)과 피드백을 거절하는 정도가 현저하게 낮아짐을 보여주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논문은 아이들이 내가 스트레스를 잘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때 수학에 대한 스트레스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더 어려운 수학 내용을 더 많이 배우려고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업 스트레스가 극심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어른들과 또래가 적절한 도움을 주어 자신이 스트레스를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을 때 그 스트레스의 부정적인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다.


서재 앞 컴퓨터에 앞에 앉아 약간의 한기를 느끼며 나는 다시 한숨을 쉰다. 그리고 워드 프로그램의 빈 페이지에 단어를 쥐어 짜낸다. 이 논문의 서론 초고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나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침대로 가고 싶다고 열망한다. 하지만 동시에 내 연구에 참여한 9학년 미국 학생들을 생각한다. 힘들고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생각하는 날에도 이 스트레스가 견딜만하다고 생각하고 더 어려운 수학 수업을 신청해서 듣는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한다. 어떤 스트레스는 견딜만한 가치가 있. 나는 이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깊은 밤 서재에 홀로 앉은 나는 이 스트레스가 결국 나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믿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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