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만날 수 있는 선배가 있다. 드문드문 통화하기도 하고 어쩌다가 한 번 만나도 편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형 같은 선배다. 간만의 연락에 커피를 마시기로 약속하고 퇴근시간을 기다렸다.
약속 장소에서 가까운 혼잡한 카페에 들어서서 키오스크 주문을 하려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조용한 카페로 가자는 선배. 나도 조용한 곳이 좋겠다 싶어 아이스 아메리카노 헤이즐넛을 시키려다 취소하고 따라 나왔다. 곧 우리 일행밖에 없는 조용한 카페를 찾았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일은 어떤지, 경제적인 부분은 어떤지, 결혼 준비는 잘 돼가는지 본론부터 훅 들어오는 선배의 질문. 오히려 그 질문이 반갑다. 짝꿍이 멀리 있는 한 나에게 피부에 와닿는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일까.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가 이해와 타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선배가 말했다.
가만 보면 너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기어이 이해시키려고 할 때가 있어.
와우. 편협한 내 시각에서 새로운 시각이 다가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란!
몇 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지금까지의 내 생각과 행동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정한 행동들이 어떤 면에선 이해를 고집하진 않았을까 하는 부분들이 스쳐 지나갔다(특히 가치관에 대해서 짝꿍과 이야기했던 부분들이 떠올랐다).
반면 타협은 이해와 인정 중간쯤에 있는 듯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안정감이 몰려오면서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듯 설레기까지 했다. 상대방과의 타협. 특히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다면 이건 이해와 인정시키는 방법으로는 자칫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타협은 상대방을 최대한 배려하면서도 나의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최선의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정리해볼 수 있었다(타협을 새롭다고 느끼는 내가 유별나다는 생각도 든다).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도 자기반성, 자아성찰의 회로가 마구 돌아가고 있다. 지독한(?) INFP성향이 여기서도 발현되는구나 싶다. 그리고 종지부를 찍는 선배의 한마디.
열등감 아닌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열등감이라... 물론 내적으로 깊이 숨어들어 있는 녀석인걸 인지하고 있지만 지금의 대화흐름에서 열등감이 툭 튀어나올 일인가 싶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열등감 아닌 열등감... 열등감 아닌 열등감......'
선배와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 되뇌게 하는 그 문장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안개처럼 희미한데 어렴풋이 떠오르는 무언가는 있다. 이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선배는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