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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기즉생

자신을 찾아가는 길

시간이 갈수록 옅어지는 것

by 아메리 키노

마지막 글 발행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직장에 입사한 것까지 쓰는 약간의 호기를 부려봤는데 이후의 행적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글을 다시 쓰기까지 1년여의 시간이 흐를 동안 다양한 이벤트를 경험했다.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던 길은 빙 도는 어려운 길이 되어 돌아가지도 못한 채 걸었다. 아마 돌아갈 용기도 못 내고 그리 정처 없이 걸었을 것이 틀림없다.


지난해 4월, 전자제품 상담원으로 수습생 기간을 마치고 수습직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처음 일주일은 처음 하는 일의 적응기간으로 생각했다. 모든 것이 어려운 일 투성이었으니까. 2주 차부터 어려운 상담을 한 두 개씩 맡을 때마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은 앞서 있었지만 일의 진도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이 일을 선택한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무럭무럭 키워나갔다. 당연히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인데도 매일 성실하게 자신을 깎아내렸다. 주변의 격려와 응원도 도무지 먹혀들지 않았다. 그러다 견딜 수가 없어서 퇴사를 했다. 퇴사사유는 '업무부적응'이었다.


그러다 5월의 어느 날, 병원에 입사했다. 치료실 업무와 수술실 업무보조 인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상담원일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지만 사실 병원일을 해왔고 가장 익숙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결혼하고 1년 정도 쉬었다가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얼른 적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직접 부딪히고 나니 업무도, 인간관계도, 적응도 모두 어려웠다. 지금까지 뭘 해왔나 싶을 정도로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내 모습은 스스로 느껴도 불쌍할 정도로 처참했다. 그래도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이미 위기감을 느끼는 마음에 지치고 일의 의욕이 떨어져 매일 하는 노력의 가치는 거의 0에 가까웠다.


전 직장에서 이 일을 하지 말라던 직장상사의 직언이 매일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와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고 있나 싶었다. 앞으로 더 나은 모습으로 일할 수 있을까 두려웠고, 어느 날부터인가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나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무슨 실수든 다 내 탓'의 마인드가 바이러스처럼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고 그 엄청난 스트레스를 이길 수 없어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우울증 초기증상과 불안장애라는 내 상태를 알 수 있었고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6개월 이상 복용하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듯했으나 본질적인 습관과 행동양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실천은 작고 어리숙하게만 느껴졌다. 일 특성상 예민한 사람들과 일하는 속에서 예민하게 대처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 그게 그렇게 괴로웠다. 물과 기름 같아서. 영원히 섞일 수 없는 것 같아서.


입사한 지 1년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결국 병원 측과 협의하여 퇴사를 결정했다. 병원 측에서도 길게 봤을 때 원활하게 함께 일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나 역시도 길게 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지만,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섣불리 퇴사를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계속 여기에 남아있는 것은 병원에도, 나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을 것 같았다. 병원에선 대체부서에서 일하는 것도 고민해 본다고 했지만 사실상 그렇게 진행되리란 보장이 없었다. 어딜 가든 일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을 것이 분명했고, 나조차도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호전을 보이지 않는 증세만 봐도 더 이상의 근무는 오히려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라는 판단에 도달했다.


지금껏 오래도록 스스로를 괴롭혀왔다. 그 괴로움이 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을 더디게 만들었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야를 좁게 만들었으며, 내가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를 내지 못하게 했다.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당연히 그렇게 괴롭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정해버렸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이 나에 대한 확신과 미래를 옅어져 버리게 만들었다. 첫 직장에 다닐 때는 미래에 대한 탄탄한 스케치를 분명히 그려놨던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색깔도 칠해져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희미해지고 옅어져 버린 거의 흰 도화지에 가까워진 지금의 모습이 착잡하다.


이젠 죽이 되는 밥이 되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나를 표현할 창구는 언제나 여기에 있었다. 기꺼이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이제는 다양한 모습의 자신을 마주하고 표현하고 그려나가려고 한다. 퇴사 후 생기게 된 잉여의 시간에 대환장 잡생각들이 여전히 함께하고 있지만 틈틈이 족적이라도 남겨야겠다.

몇 날 며칠 후에 글을 남기더라도 그때만큼은 온전하게 나를 담아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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