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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 키노 Apr 21. 2022

나에게 넌, 너에게 난

chapter 3 다시 찾아올 용기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친구'라는 말은 익히 들어왔지만 진심으로 십몇 년 친구로 남기려고 작정하고 끊어 낸 적이 있었다. 이 친구 옆에 내가 있는 건 왠지 손해보지 않을까 하는 저세상 낭떠러지 자존감도 한몫했지만 결정적 문제는 항상 내가 안고 있었는데 풀어내는 것을 못했다.


 직관적이기보단 현실적으로 사고하는 성향이 강한 친구의 현실적인 이야기, 특히 경제적인 분야의 대화는 언제나 화젯거리 1순위였다. 그러한 이야기들이 삶에 가장 밀접한 부분인 걸 알지만 그저 피하고 싶은 '강아지 똥'이었다.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작아졌기 때문이었다. 적은 수입, 많은 지출, 늘 제자리걸음인 20대였지만 부의 확장은 꿈꾸지 않았다. 좋은 상황도 아니었지만 가장 가까운 친구나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쥐꼬리만 한 급여를 받는다고 하면 자신이 일하는 곳에 함께 일하자고, 이제는 돈을 좀 모아보자면서 주기적으로 제의해왔었다. 고맙기도 하면서도 내 인생은 내 힘으로 살아보겠다고 튕기고 또 튕겨냈다. 돈 때문에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똥고집으로 매번 거절했지만 친구는 포기하지 않고 경제 라이프, 이직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전국을 덮쳤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족과 친구, 지인 등 모두와 거리 두게끔 만들어버렸다. 여태까지 유지해오던 인간관계에서 만남이 줄고, 늘 해오던 대화 줄어드니 타인에게서 오는 스트레스까지 줄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늘 보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의 여유가 넘쳐흘렀다. 문제는 관계 유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드문드문 연락을 유지하던(엄밀히 말하자면 친구의 연락을 늘 받았다)것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다가 결국 끊어내기로 결심했다. 지금까지 이야기해왔던 내용 모두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낮아지는 자존감은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이제 그만 연락하자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고 관계를 정리해버렸다. 친구도 미안했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왔지만 더 이상 연락을 이어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선택한 관계 정리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구멍이 마음에 생긴 것 같았다. 누구도 채울 수 없고, 대체할 수 없는 공허함이 찾아왔다.


몇 달이 지났다. 공허함 늘 존재하고 있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것에 매달리기보다 적응해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비어있는 마음의 자리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쓴소리에 적어도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니까. 친구의 한마디 한마디에 작아지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어느 밤에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 친구와의 재회는 꽤 내키지 않은 만남이었다. 침묵을 이어가다가 친구가 먼저 침묵을 깼다.

잘 지냈냐?
어... 뭐...

잘 지냈을 리 없다. 그냥저냥 지낸 게 전부지만 늘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고 내뱉을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만남에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어떻게 찾아올 마음을 먹었는지, 날 만나겠다고 온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 친구였다.

전에도 말했잖냐. 친구 중에도 제일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너라고... 그래서 모든 걸 편하게 이야기했는데 불편했다면 진짜 미안하다...

매섭게 부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 친구는 차근차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있는 그대로 친구의 마음을 들으면서 그 응어리가 조금씩 조금씩 풀어지는 듯했다. 이야기하다 격해진 감정에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는 친구(대학생 시절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한참을 옆에서 토닥였던 그때도 생각났다). 그 모습에서 이 친구에게서 '내가 정말 중요한 존재'구 나하고 느낄 수 있었다. 비로소 내 마음속 구멍도 쥐도 새도 모르게 메워졌다. 부담으로 느끼고 일방적인 손절 통보를 했던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게도 느껴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처럼 그냥 좀 힘들다고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조금만 단호하게 이야기라도 해볼 걸'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래도 다시 찾아올 용기, 어떤 어른스러움(내가 성숙하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을 발현해준 친구를 생각하니 너무 고맙고 나만 생각했던 이기적으로 대처했던 내 행동에 미안하고 그렇다.


서로 바쁜 현생을 살아가느라 연락도 뜸하지만 찐 우정 글감 덕분에 오래간만에 근황을 나눴다. 전화받아줘서 고맙다.

네가 어쩐 일로 전화를 다했냐?

아니 그냥~생각나서 전화해봤어
2016.01.01 일출을 만끽하는 ET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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