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중순쯤, 라디오 어플 방송을 시작하고 블루투스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방송에 들어오는 이들에게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라는 통상적인 인사보다 위와 같은 인사로 맞이했다. 방송콘텐츠는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 소통. 현생에서의 소통능력이나 범위는 넓지 않았지만 라디오를 시작했다 하면 최대 2시간 동안 목소리 하나로 모바일 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코로나 이전에는 현생의 사람들과 만나며 관계를 맺어왔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만날 사람들만 간간이 만나게 되고 관계의 끈이 단단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 와중에 시작한 라디오 방송은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진 삶 속의 소소한 재미였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활동이 줄어들면서 온라인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에 방송 게시판엔 다양한 개성을 추구하는 유저의 방송들이 즐비했다. 정말 FM 라디오처럼 사연을 받아 진행하거나 시작부터 끝까지 자신이 즐겨 듣는 플레이리스트만을 켜놓는 말없는 유저도 있었다. 매력 넘치는 목소리를 가진 DJ들은 하루하루 팬층을 두껍게 만들며 늘 상위 랭크를 차지했다. 한없이 길어져있는 방송 목록을 보고 있으면 정말 코로나가 많은 사람들을 집에 가둬 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를 포함해서...
그러나 집에서머무르게 된 사람들은 이 라디오를 통해서 새로운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했다.나 역시 들을 수 있는 음료 '아메리 키노'밖에 없는 '방구석 카페'라는 콘셉트를 내걸었다. 누구나 마시는 아메리카노처럼 누구나 편하게 듣고 편하게 떠나는 자극성 1도 없는 청정(?) 콘텐츠였다.
방송 시작 전까지 이야기를 나눌만한 주제나 화젯거리를 찾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였다. 대본을 준비하고, 이야기 나눌 사람을 정하는 등 틀이 정해져 있는 진행보다 방송하는 시간만큼은 자유롭게 의식의 흐름대로 이어갔다.
지금의 필명은 라디오를 시작했을 때부터 사용했던 닉네임입니다. 소중한 팬이 그려 준 그림이라 늘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만두를 좋아하는 초등학생, 학교생활이 힘들지만 방송에서 힐링하는 여고생, 애늙은이 같은 남고생, 사진에 진심인 누나, 수산물업에 종사하는 동갑내기, 일찍이 만난 적이 있는 취준생, 4차원 멘트를 가끔씩 날려주는 인천 남자, 20년째 가수 조성모를 열렬히 응원하는 강릉에 사는 형님 등 그들의 사는 이야기가 모두에게 나눌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다. 어떤 날은 결혼식 진행을 하는 전문 MC분과의 즐거운 인터뷰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즉석에서 이루어진 방송이었기에 말 그대로 대본 없는 인터뷰를 생방송으로 내 보낸 것이었다. 무슨 정신에 마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는데도 지나고 보니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장면들이 방송 속 작은 채팅창 한 줄 한 줄에서 그려졌다. 얼굴 한번 보지 못했지만 생각과 감정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나도 목소리로 나마 더욱 진심의 무게를 실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듣는 이들의 마음에도 관통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인연이 된 청취자 정예 10명은 단톡방에서 간헐적으로 생존 확인을 하며 지낸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청취자는 DJ에게, DJ는 청취자에 빠져들었지만 이어 사랑에도 빠져들었다. 카메라와 그림책을 좋아하는 짝꿍을 만난 곳은 햇볕이 좋은 공원도, 커피 향이 가득한 카페도, 고급 음식이 나오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도 아닌 손바닥만 한 크기의 스마트폰 안에서 만났다. 짝꿍을 만난 영향 때문인지 주변분들의 권유로 스마트폰 안에서 글쓰기로도 이어졌다.'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게 된 브런치에 글을 남기면서 수많은 방송 목록 속에 나를 찾아 준 청취자분들처럼 지나쳐왔던 나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었다.
캘리그라피를 하시는 능력자 팬분께서 보내주셨습니다. 배너로 걸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방송을 진행했었습니다.
코로나가 일찍 종식되었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저 소소한 취미로 시작했던 방송을 그다음 해 2월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진행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달렸었다. 그 일념이 가지고 온 결과물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인연'과'사랑'그리고 '글쓰기'가 되었다. 초기의 코로나는 걸리면 큰일 날 것만 같은 위험한 존재였다가 지금은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불편하게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일상에 늘 존재하는 코로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기록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준 것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고 새로운 삶을 선물해주었다. 코로나가 팬데믹을 이끌지 않았다면, 발병했다가 일찍 종식되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찌들어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을까(솔직히 이렇게 생각해본 적도 있다)? 아니면 또 다른 삶이라는 선물에 감사하며 살고 있었을까?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코로나는 자기 멋대로 나타나더니 사람마다 다른 모습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변덕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래도 코로나 종식 끝엔 긍정의 변화만이 가득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