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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벼락 Feb 23. 2023

임신도 벼락치기 Ep. 5 - 인공수정 실패

안될 줄 알았는데 역시나 안되었다.

인공수정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다. 인공수정은 자연임신보다 수정될 확률을 높이는 것은 맞으나 왠지 나는 '내 뱃속에서 수정이 아예 안되기 때문에 오랜기간 임신이 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상상 속의 생각이긴 하지만 나의 난자가 생존시간이 짧은 것일 수도 있고 남편의 정자가 내 난자를 만나기까지의 여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 전사해버렸기 때문에 내 몸 속에 수정란이라는 것이 생겨본 적이 없었을 것 같았다. 


의지도 믿음도 없이 그저 황과장님이 만들어주시는 인공수정의 일정에 따라 과배란 주사, 난포를 터뜨리는 주사를 맞는다. 내가 난포 터뜨리는 주사를 맞은 다음 날 오전에 남편이 병원에 내원하여 정자를 채취하고 후처치(?)를 한다. 몇 시간 뒤 내가 다시 병원에 내원하면 담당의가 내 경부 안으로 넣는 정자를 주입하는 시술을 하한다. 인공수정 장소는 의외로 늘 진료를 봐주시던 상담실 바로 옆 산부인과 의자가 있는 곳이었다. 평소보다 더 높게 의자를 올린 상태로 시술이 진행된다. 과장님께서 이런저런 소독을 하신 후 시술을 시작하기 전 "시작합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의외로 간단했다. "끝났습니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는 '응 오늘은 아니야'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은 아마도 이런 식으로 수정란이 생겼다면 진작에 생겼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공수정을 하든 시험관을 하든, 시술일로부터 약 10일 뒤에 피검사를 한다. 피검사에서 HCG 수치가 100 이상이 나오면 착상이 된 것으로 보고, 100 이하가 나오면 착상이 약하게 되었거나 착상이 되었으나 수정란이 탈락한 것으로 보는 것 같았다. 피검사를 한 시점으로부터 몇 시간이 흐르면 전화로 수치를 알려준다.


나는 0이 나왔다.


내 삶은 대부분 내가 믿는대로 이루어지곤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내가 안 될거라 믿었더니 안 된 것 같았다. 사실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되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컸기도 한 터다. 정말 대책 없는 예비엄마가 아닐 수 없었지만 내가 과연 엄마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출산 직전까지 이어졌으니 인공수정 시술 날도 역시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고민이 어떻든지간에 안된 것 같은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들어서 크게 마음이 힘들거나 조마조마하지도 않았다.


피검사 수치가 나온 이후 잡힌 외래 일정에서 황과장님은 아주 아쉬워하셨다. "많이 노력하셨는데 이번에는 안타깝게도 잘 되지 않았네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해주셨다. 나는 조금 이 장면이 생경했다. 왜냐면 나는 수정 자체가 안 이루어졌을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고 이번 텀은 그냥 넘어가는 텀으로 이해한 채로 별 생각 없이 병원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인공수정은 뭐 확률게임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판은 안 된거죠. 확률이 아예 높은 시험관으로 아예 넘어가는 건 어떨까 싶어요!"라고 물어봤다.



아니 도대체 나는 왜 엄마가 될 자신도 없었고 아기가 있는 삶을 바라지도 않았으면서 시험관 이야기를 꺼낸걸까?


물론 인공수정 시술을 한 날 남편에게 "왠지 이번에는 아닌 것 같아. 인공수정 한 번 해보고 안되면 바로 시험관으로 가든지 하자!"라고 먼저 말을 하긴 했다. 우리 남편은 늘 그렇듯이 "그래~"하고 만다. 아기를 너무너무 가지고 싶지만 모든 것을 내 결정으로 진행할 수 있게 해주느라 참 많이 기다렸던 사람이다.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됐다는 말, 나는 지금도 행복하다고 아이 없이 남편만 있으면 죽을 때까지 잘 살 수 있다는 말, 아이가 있으면 내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싫다는 말을 매일매일 하면서도 갑자기 "시험관 고!"를 외치는 나를 보며 우리 남편도 참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일단 목표가 생기고 무언가가 시작되면 감성보다는 이성을 따르는 성격이라서 그런 것인지, 그 당시 내 머릿속에는 '어디 내 인생 어떻게 되나 보자, 기왕 시작했으니 할 수 있는 데까지 밀고 나간다'라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시험관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3차까지만 한다고 남편에게 누누이 선언하였다.)



내가 아차! 하는 동안 황과장님은 기다렸단듯이 "그래요! 시험관을 하면 확실히 확률이 높아져요. 시험관은 인공수정과 다르게, 과배란을 유도한 후에 시술을 통해 난포를 직접 터뜨려서 난자를 채취하고 연구실에서 난자와 정자를 수정시킨 후 수정란을 자궁 내에 주입해요. 난자 채취를 한 후에 복수가 차거나 힘든 경우들이 발생할 수 있지만 수정란이 착상만 하면 되니까 이번엔 시험관을 해보도록 합시다!"라고 말씀하셨다. 늘 밝은 과장님이셨지만 유독 더 밝아보이셨다. 그날 따라 과장님 책상 위에 한 남자아이 사진이 붙어있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과장님이 엄마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면 본인 일터에 저렇게 사진을 놓을까 싶으면서도 아이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알기에 이번 인공수정이 되지 않은 것을 나보다 더 안타까워 하신 것만 같았다.


여느 날처럼 과장님과 웃으며 헤어졌다. 다음 외래 일정은 시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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