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벼락 Nov 14. 2022

임신도 벼락치기 Ep. 4 - 인공수정 커몬!

벼락이는 주저하지 않긔

어쨌든 임신이라는 것을 할 운명인지 아닌지를 시험해보기로 한 이상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이전에는 진짜 이러다 임신하면 어떡하지? 라는 비이성적이면서고 갈팡질팡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다녔다면 이번에는 진짜 되면 낳는다! 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날 남편에게 "인공수정을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시험관을 들어가겠어."라는 중대발표를 갑자기 했다. 오랜 시간 아이를 갖고 싶었으나 나의 마음이 준비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준 우리 남편은 그냥 "그래~" 하고 말았다. 시험관은 3차까지만 해보겠다고, 그 이상은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아서 안하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또 "그래~" 하고 말았다.


나는 원인 없는 결과에 의미 없는 노력을 더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더 정확히는 결정을 내린 후에는 더 이상 같은 문제로 같은 에너지를 쓰는 것을 싫어한다. 또한 이론을 벗어나는 노력을 더 하기가 싫었기에—예를 들면 임신에 도움이 되는 한약을 먹는다든지, 착상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든지, 기도를 한다든지, 그리고 자연임신 노력를 더 한다든지(이론을 벗어날 정도로 오랜기간 임신이 안되었으므로) 등등—임신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되는 원인이 없다면 아예 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물론 우리 아빠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면 이런저런 기복행위를 하게 되어 있고 그러다보면 그 마음이 어느새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라 했지만—이 와중에 우리아버지는 공학박사이고 과학자인데 참 소프트한 감성도 가지셨지—나는 그냥 내 운명이 어떤 길을 갈 것인지 궁금했고 빠르게 답을 얻고 싶었으므로 그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간 분당넘버원여성병원의 황과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참 반가워하였다. 차트를 휘리리릭 둘러보시더니 "어, 되게 오랜만에 오신거네요? 2년만이에요!"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어느 새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기에 나에 대한 기억도 그처럼 가려졌을 수 있었겠다. 나는 긴 말 할 것 없이 인공수정을 해보고 안되면 시험관으로 바로 넘어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과장님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확률적으로는 인공수정은 10퍼센트, 시험관은 그보다 훨씬 높다고 하시며 임신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자연임신 보다는 그 방법들이 더 좋은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 하셨다.


몇 년 전에 했던 난소나이 검사, 나팔관 조영술, 정자검사 등 차트가 다 남아있었고 혈액검사 외 추가적인 검사는 필요 없다고 하셨던 것 같다. 난소나이가 25세라고 했던 것도 기억난다. 초음파로 보아도 자궁에 작은 용종이 있는 것 외에는 나이에 비해 굉장히 젊은(!) 자궁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그동안 꾸준히 했던 운동의 결과물인가! 하고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때 한 검사를 통해 내가 혈압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황과장님은 내게 내과에 가서 심전도 검사를 하고 혈압약 처방을 받아와야할 것 같다고 말해주셨다. 나이도 어리고 비만도 아닌데 벌써 혈압이 있는 걸 보니 가족력 같다고 하셨다. 아, 아빠......


며칠 뒤 내과에 갔고, 고혈압 확진자가 되어(ㅠㅠㅠ) 황과장님께 진단서를 제출하였다. 처방받게 된 약도 말씀드렸다. 과장님은 비로소 인공수정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해주셨다. 생리가 시작한 후 2-3일 정도가 되면 병원을 방문하고 초음파를 본 후 과배란을 유도한다고 하였다. 배에 맞는 주사, 먹는 약을 통해 난포를 많이많이 키우고 나면 초음파로 난포가 자라난 상황을 보고 시기에 맞춰 난포터트리는(?) 주사를 맞는다고 하였다. 정상적인 주기로는 한 쪽 난소에서 하나의 난자만 배란되는데 과배란을 유도하면 한 쪽 난소에서 여러개의 난자가 한꺼번에 자란 후 배란된다고 하였다. 정자와 난자가 만날 수 있는 확률을 높혀주는 것이다. 문득 "그럼 내 난자가 너무 빨리 다 소진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아까움이 생겼다. 그러나 자연배란 과정에서도 여러개의 난포가 자라다가 단 하나의 난자만 배란되고 나머지 난포는 소멸(?)하는데, 과배란 유도는 어차피 소멸될 난포까지 영끌하여 배출시키는 것이라고 하니 내 난소가 단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네이버선생님이 친절히 알려주셨다.


오, 말로만 듣던 과배란 주사를 맞는구나 하는 생각에 실험정신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자가 주사라니!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생리가 시작한 후 이틀 째 쯤에 병원을 찾아갔고 초음파를 보았다. 그리고 이따만큼의 주사약 및 먹는 약을 처방받았던 것 같다. (좀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진료를 마친 후 간호사실에서 자가주사 및 약물 복용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던 때라 뱃살이 많지는 않았기에 간호사 분께서는 내게 배의 지방을 최대한 두텁게 잡고 주사를 놓아야한다, 안그러면 굉장히 아플 수도 있다고 하셨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주사를 맞는다면 뱃살을 잡을 필요도 없을 것 같지만, 간호사님께서 예시로 보여준 주사 바늘이 꽤 짧았기에 비교적 날씬했단 그 때도 굳이 뱃살을 영끌할 필요까진 없었다. 주사 이름은 고날에프(?)였던 것 같다. 작은 침이 나와있는, 마커펜 같이 통통한 주사기 통에 약을 넣고 짧은 침을 배에 지긋이 찔러 주사하였다. 주사는 냉장고에 넣어 보관해야했다. 나는 냉장고 맨 윗 칸 유제품 칸을 모두 비우고 주사제를 보관하였다.


어떤 주사는 매일 맞았고 어떤 주사는 주사 기간의 후반부 3일만 맞는 주사였기 때문에 주사 날짜를 잘 알아볼 수 있도록 간호사분께서 수첩에 직접 날짜와 투여방법를 손수 적어주셨다. 간호사님의 귀엽지만 날려쓴 글씨체를 여러번 읽으며 앞으로의 2주를 그려보았다. '일정 지키는 것은 내겐 아주 빅잼이지!'라고 생각하며 왠지 모를 투지(?)가 가득 생겨 발걸음이 아주 힘찼던 기억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임신도 벼락치기 Ep. 3 - 난임병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