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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벼락 Nov 06. 2022

임신도 벼락치기 Ep. 3 - 난임병원

내가 임신을 할 상인가?

좀 웃긴 말일 수 있는데, 나는 임신이 하기 싫으면서도 산부인과는 왕왕 다니고 있었다. 인간이란 본디 이중적인 속성을 가진 탓일까? 어렸을 때부터 생리 때만 되면 잦은 졸도를 해왔던 나의 체질은 엄마로부터 고대-로 물려받았는데, 엄마가 나를 갖기 전 약 4년동안 임신이 되지 않아 큰 걱정을 하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인지 으레 나는 어쨌거나 엄마를 닮아 임신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왔었다.


나의 부모님은 햇수로 7년을 연애하고 결혼 후 몇 개월 만에 미국으로 가 유학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유학길을 떠난 것이 몇 년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결혼 전에 임신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역사를 가진 두 분인데 결혼 후에도 4년 동안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다고 한다. 때는 바야흐로 유교적 사관이 대한민국을 꽉 잡고 있던 80년대, 조국으로부터(?) 걸려오는 시어머니의 안부(?) 전화에 진절머리가 나셨을만도 한데, 또 한 편으로는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도 있으셨나보다. 내가 하도 나타나질 않아서 엄마아빠는 두 분 다 혹은 두 분 중 한 분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병원을 가야하나 고민하셨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충분히 걱정하였으니 내가 나타나겠소, 휴먼' 하면서 내가 엄마 뱃속에 딱!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거짓말 1도 보태지 않고 초등학교 때부터 들어왔다. 엄마도 열심히 이야기했고 아빠도 주구장창 들려주었다. 덕분에 나는 '오메 임신은 쉬운 일이 아니구나. 나는 엄마를 닮아서 임신이 잘 안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해왔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임신이 잘 되지 않았다 -_ -..... 앞서 적었던 에피소드에도 있듯이, 나는 생기면 그만 안생기면 그 또한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마음 놓고(?) 결혼생활을 하였는데(?!) 결혼 후 3년이 지나도 4년이 지나도, 아니 5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질 않았다. 결혼 후 약 3년이 되던 해 쯤부터는 나도 우리 부모님처럼 '혹시 내가 임신이 잘 안되는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분당넘버원여성병원을 가보기로 하였다. 밝고 친절하고 긍정적인 황유* 과장님이라는 분이 내 담당의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코로나가 없어 마스크를 끼지 않고 진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세상에 그런 시대가 있었다니!) 늘 밝게 웃어주시는 황과장님을 만나는 것이 기분 좋아서 진료 날짜는 꼬박꼬박 잘 지켰던 것 같다. 황과장님 역시 나라는 내원자에 대해 여러가지 가능성을 점치고 계셨겠지만, 일단은 가장 기초적인 단계부터 밟게 해주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계속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려고 노력하셨는데 아무래도 난임병원이다보니 마음을 졸이는 부인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별 다른 의학적 조치 없이 초음파로 난포의 성숙도를 보고 배란 일을 유추하여 과업(맘카페에서 유명한 단어 '숙제!')을 치르는 식의 진료를 몇 번 받아보았다. 숙제는 매일 빠꾸를 먹었고, 그럴 때마다 황과장님은 나에게 '그럼 이번에는 어느날 오세요~ 다음엔 꼭 성공해봅시다!' 라고 힘을 주었다. 밝고 예쁜 웃음과 함께 전달되는 그 응원이 기분 좋으면서도 '글쎄 내가 과연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인가?' 싶었다. 게다가 사람의 미래는 믿는 대로 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나는 '이렇게 생길 거면 진작에 생겼을 것이다'라고 생각했고, 덕분에 매번 임신은 되지 않았다. 임신이 되지 않을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나 자신을 보며 '돈 쓰고 시간 쓰면서 도대체 이런 짓은 왜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과장님은 가끔 '아 너무 지치실 수도 있는데 걱정 마세요~ 여러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걸 하고 있는 거니까요 ^^' 라며 내게 힘을 주려 하셨다. 매번 실패해도 실망한 내색이 없는 난임병원 내원자를 보니 과장님은 어떤 기분이셨을까? 지금 돌아보니 정말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아이를 안 갖는게 아니라 못 갖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던 것 같다. 내 운을 시험해봤던 것이다. 내가 임신을 할 상인가?


약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난임병원을 들락날락 거렸던 것 같다. 그러다 자연히 사업이 바빠지면서 병원도 가지 않게 되었다. 더 정확히는, 사업이 바빠지면서 사업을 먼저 안정화 시킨 후에야 아이를 가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의도적으로 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시간은 틱톡택톡 흘러가 어느새 삼십대의 중간을 걷는 중이었고 '오,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다' 라는 마음으로 운명을 점쳐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더 진지하게 내 인생에게 물어보았다. 관상가 양반, 내가 임신을 할 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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