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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벼락 Oct 14. 2022

임신도 벼락치기 Ep. 2 - 사람들은 왜 애를 낳지?

아이가 있든 말든 상관 없다 생각했는데 시험관 하게 된 썰

여러 날들이 있지만, 오늘은 내가 아이들을 낳은 이후로 아이들에게 가장 못해준 하루인 것 같다. 남편이 오늘 1박 2일로 회사 워크샵을 갔는데 하필 오늘이 돌봄샘도 휴가를 내신 날이라서 오랜만에 회사 일을 완전 놓고 독박다운 독박을 하니 온갖 우울한 생각이 다 들었다. (아이들이 이유식을 번갈아가면서 거부하는) 고된 하루를 보내고 아이들 밤잠을 드디어 재우고나니 무언가 이 감정을 리프레쉬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세 달이 넘도록 들어오지 못한 브런치가 생각이 났다. (미안해 브런치. 이렇게 힘들 때만 생각이 잘 나네.) 이번에 쓸 내용이 무엇인가 <작가의 서랍> 탭을 뒤져보니 임신을 하고 싶지 않았던 시절, 그런데 임신이 돼도 어찌 되겠지 했던 시절, 때로는 임신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던 시절 대한 고민을 적자고 되어 있다. 와우, 날 한 번 잘 잡았네. 오늘 같은 날들이 있을 것을 알았기에 임신 자체를 고민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사실은, 임신이 하고싶다 하기싫다를 넘어서서 "사람들은 왜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자 고민이라고 봐야 정확하다는 걸 이제 깨닫는다.


나는 사람들이 왜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지 늘상 궁금해했다. 아이를 갖고 싶은 이유가 뭘까가 궁금해서 네이버에 '왜 아이를 가지고 싶나요'라는 질문에 여러 베리에이션을 적용하여 검색해본 적도 있다. 아이를 낳고 10개월이 지나 아이가 참 이쁘고 아이가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는 지금까지도 나는 그 욕구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종족 번식의 본능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표현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있는 행복한 가정을 상상하고 바라고 노력하는 부부들을 보면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욕구는 본능을 넘어선 고차원의 정신적 작용의 산물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종족 번식의 본능도 없었고, 고차원의 정신적 작용의 산물도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은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항상 이렇게 말했다.


내가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존재들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고 그 존재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깊게 교류하면서 더 긴밀한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에서야 이 말이 맞는 말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도 애기를 낳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아이를 갖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얻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결혼하면 으레 아이를 낳는 사회에서 '아이를 가져야 하나?'라는 고민은 문득문득 머릿속을 헤집어놓긴 했었다. 아기를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던 시기에 있었던 많은 고민들 중 하나는 역시 나의 커리어였다. 아이를 낳게 되면 여러가지가 멈춰져야 할 것 같았고, 실제로 많은 엄마들의 활동이 늦어지거나 멈춰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의 경우는 사업에 몰두하던 생활에 큰 변화가 불어닥칠 것이 확실했고 내 남편이 과연 육아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나보다 더 열심히 해줄 것인지를 믿을 수 없었다. 왜 남편들의 삶은 선형적으로 계속 이어지는데 부인들의 삶은 이어지던 선이 끊어지거나, 출렁거리거나, 지그재그로 흔들리는 것인지에 대한 불만이 항상 있었다. 게다가 임신과 출산은 여자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약 1년에 해당하는 여성의 희생이 이미 전제가 되어 있고 출산 후에도 모유수유라는 어마어마한 산이 버티고 있는데, 임신과 출산이라는 거대한 허들을 넘어서서 육아라는 현실에 당도하면 적어도 1년은 당.연.히. 남편들이 두 손 두 발 다 걷고 전담해야 공평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 나의 삶이 너무나 만족스러웠고 더 나은 것이 있든 말든 관심 없던 상황이었기에 이 유토피아에 그 어떤 변화를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결정적으로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들이 정말로 아이를 낳고 싶지 않게 했다. "아이를 일단 낳으면 엄마는 정말 밤낮 없이 힘들다"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모유수유는 엄마가 주는 가장 좋은 선물이다" "엄마가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정신적 신체적 발달이 달라진다" "요즘은 초등학교 들어가면 엄마가 일을 그만둬야된다 그만큼 엄마 손이 많이 간다" 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가엄마가엄마가엄마가엄마가엄마가엄마가엄마가엄마가... 오죽하면 이런 우스갯 소리가 있을까. 아이를 잘 키우려면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노력이 있어야한다는. 아빠는 왜 무관심을 담당하지? 지금 삶에 새로운 긍정적인 변화가 온다고 해도 그것이 확실히 긍정적인지를 알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임신이 하고 싶지 않은데, 부정적인 현실이 다가온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되돌아보니 나는 남편과 약 3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임신, 출산, 육아에 관련된 다양한 논의를 해왔었다. 위에서 나열해놓은 모든 생각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우리의 논의는 항상 나의 질문으로 인해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다. "난 지금도 좋은데? 남편은 지금이 부족해? 왜 아이가 갖고 싶어?" 그래도 남편은 늘 침착하고 부드럽게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해주었다. 지금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이 분명히 올 것이라고. 나는 좋은 미래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갑작스럽게 임신이 될 수도 있었기에 남편에게 다음과 같은 주문을 100번 하고 100번 모두 확답을 받았다.


애기를 임신하고 낳는 것까지는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내가 할게, 키우는 건 남편이 주도적으로 해줘.


100번의 확답을 받고 나서도 왜 아이를 갖고 싶은지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낳고 싶다, 낳고 싶지 않다라는 감정 자체가 없었다. 생기면 생기고, 말면 말고라는 생각 뿐이었다. 항상 그랬다. 결혼한지 5년이 넘어가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는데 나는 그냥 생기면 생긴대로 살아가면 되고 안 생기면 안 생긴대로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남편과 둘이 살아가는 삶에 부족함을 하나도 느끼고 있지 않았고 우리 관계에 다른 존재가 더해지는 것이 과연 필요한 일인가 싶었다. 뭐, 귀여운 꼬물이들이 생긴다면 당연히 좋은 점이 있겠지. 그런데 굳이 그 상황으로 가야할 유혹은 없었던 것이다. 혹자는 시험관으로 아이를 가졌다고 하면 아기를 엄청 바라고 기다렸나보다라고 생각한다. 나도 시험관을 했기 때문에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를 가지려고 엄청 노력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서 시험관을 한 케이스는 아니다. (쓰고보니 정말 설득력 없는 말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낳는 삶 자체에 대한 거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남편에게 자주했던 질문 중 하나가 "아이를 낳으면 우리집 고양이들보다 이뻐보일까..? 애기가 아무리 이뻐도 고양이보다 더 이쁘기 힘들 것 같은데..."이긴 했지만(와 지금의 현실을 비추어보니 고양이들에게 너무 소홀해져서 정말 미안하다), 아기가 생기면 생기는 대로 또 잘 적응하면서 살겠지 싶었다. 물론 내가 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가 생긴다는 것은 무섭기도 했다. 나는 그러기 싫었다. 내 인생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이 그러는 것이다. "응 니 인생을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살면 돼. 그래야 애들도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잘 클거야." 그러고보니 그럴 것 같았다. 내 아이와 내가 성향적으로 잘 안 맞는 아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런데 그러거나 말거나 어떻게든 잘 맞춰서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만약 내 인생에 아이가 있다면 지금 낳는게 나을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다. 나이를 더 먹어서 아이를 낳는 것은 이러나저러나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아이라는 존재가 없어도 상관은 없었다. 그래서 한 번 베팅을 해본 것이다. 내 인생에 아이가 있는지. 이미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더 시간을 들여서 자연 임신이라는 헛된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생식기능에 이렇다할 문제가 없었기에 진행 과정을 낱낱히 볼 수 있는---말하자면 난자의 수가 적정한지, 채취된 난자가 건강한지, 채취된 정자가 건강한지, 수정은 잘 되는지, 배아는 잘 분열되는지---그래서 불확실성이라곤 딱 두 개, '착상'과 '건강한 임신의 유지'만 남아있는 시험관을 하자고 내가 남편에게 어느날 갑자기 먼저 제안했다. (작가명이 양벼락인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마음 속으로 정해둔 회수는 세 번이었다. 왜냐면 우리 부부는 정부로부터 난임지원을 받을 수 없는 소득구간에 (나름 억울하게) 들어와 있어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세 번까지만 해보기로 한 것이다. 한국인은 삼 세 판. 세 번 시도해서 안 생기면 나와 남편 인생에 아이는 없나보다 하고 지낼 요량이었다. 물론 세 번이 다 실패했어도 남편은 2세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겠지만 나는 지금이 우리의 다음 스텝을 테스트해볼 적기라고 생각했고 생기면 생기는 대로 잘 키우고, 안 생기면 안 생기는 대로 내 인생을 요란하게 살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매우 철없게 시험관을 결정했던 만큼 시험관을 하는 과정 속에서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내 나이도 나이지만 우리 남편의 나이를 보니 분명히 어떤 결정을 해야하는 시점인 것 같긴 한데 어느 쪽으로도 마음이 기울지를 않으니 하늘에 맡겨보자는 심산이었으리라.


되면 되는대로 안되면 안되는대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어느 쪽으로 결론나도 내 인생은 잘 풀리게 돼 있다.


사업할 때 스스로를 설득시키기 위해 뱉었던 말들을 임신 앞에서도 펄펄 날리고 살았다.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아이를 가지고 싶다'라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은 인간으로서 정신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한다. 그러나 이런 나의 저차원적인 정신활동을 기록하는 이유는, 분명 나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것이 완벽한 가정을 이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경제구조도 그렇게 짜여져있다. 마트에는 아직도 4인가족을 기준으로 한 상품들이 즐비하고, 나라는 아이 있는 가족을 디폴트로 놓고 정책을 펼친다.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놓은 다음 그것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제.는. 결혼을 해야지?" "결혼하면 당.연.히. 애기를 낳아야지." "나의 후손을 낳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 아니니?" 이제는, 당연히,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낳기 싫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둥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무 생각이 없어서 아무 글도 남기지 않기 때문에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노출이 덜 될 뿐이다. 물론 출산을 마친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임신과 출산을 후회한 적이 없고, 남편이 한 말이 맞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아이를 낳고 싶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세상을 반쪽으로 나눠서 생각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를 비난할 수도 있지만, 모든 여성들이 결혼 후에 아이를 낳고 싶어하고 벌써부터 아이를 사랑하는 모성애를 장착했다는 환상은 이젠 사라졌으면 한다.


브런치를 쓰다보니 오늘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많이 해소되었다. 맨날 벼락치기로 우다다다다다다 타이핑 마구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서 미안해, 브런치. 오늘은 그래도 미안한 것보다 고마운게 더 많네,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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