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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벼락 Jul 05. 2022

임신도 벼락치기 Ep. 1 - 말하는대로

15년 넘게 염원한(?) 쌍둥이 임신

이게 얼마만에 돌아온 브런치인가.. 거의 두 달 만인 것 같다. 이렇게 돌아오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니다. 육아와, 회사를 병행하다보니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정신을 모아 글을 쓸 짬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지난주 금요일 갑작스러운 남편의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토요일에는 둥이들이 확진, 일요일에는 내가 확진이 되면서 온전히 육아만 하게 되니 브런치를 켤 수 있게 되었다.


각설하고, 나의 임신은 내가 대학생이던 약 15년전부터 시작된(?) 장고한 스토리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벼락치는 삶을 살았던 대학생 양보라는 그럭저럭 괜찮은 학점과 스펙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그 당시 나의 꿈은 외교관이었는데, 외무고시를 치겠다는 마음을 먹고나서 부모님에게 고시 준비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엄마와 아빠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엄마는 '여자는 외교관 되면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낳는다'며 반대를 했고, 아빠는 '결혼하느니 외교관 되는게 낫다'며ㅡ엄마 의문의 완패ㅡ두 분이 또 한바탕 언성을 높였다.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어차피 외교관이 못될 팔자였는데 두 분이 왜 그렇게 싸우셨나 싶지만, 하여간 두 분이 공통적으로 어그리한 부분이 있었다면 '여자 외교관은 결혼 못한다'였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외교관이 되면 나를 따라다닐 남자를 만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패기어린 생각을 파워당당하게 엄빠에게 말했지만, [그런 남자 없다, 그리고 그런 남자가 있다고 해도 그런 남자는 100프로 별로인 사람이다] 라고 말했다. 세상에 100프로가 어딨어? 하고 생각했지만 99프로는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스물남짓 어린 마음 한 켠에서는 외교관과 결혼은 등가교환만 가능한 관계라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나는 결혼을 못할 것 같았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은 퍽 많았지만, 내 단점까지 받아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단점이라 함은 '성격 더럽다'로 표현하면 될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도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성격이 더럽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그 생각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그런데 결혼을 못하면 아기를 못 낳는 것 아닌가? 라는 유교걸스러운 생각이 있었고, 여자로 태어났으면 내 몸에 있는 모든 장기를 기능대로 다 사용하고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단순한 본능이 있었다. 또 애는 아들 하나, 딸 하나는 있었으면 해서 둘을 꼭 낳고 싶었고, 만약에 아들아들 혹은 딸딸이 나오면 한 번 더 시도해서 두 성별을 모두 낳아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아기를 낳으려면 결혼을 해야하는데, 외교관이라는 내 꿈은 어쩌란 말인가! 하는 과대망상 속에서 힘들어했다. 세 번이나 호되게 낙방을 하였으니 제대로 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외시를 접는 것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할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어차피 공부를 그닥 잘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더 자유롭고 방대한 세상 속을 누비면서 발 닿는 데로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 결혼도 이제 선택가능한 옵션이 되었다.


그런데 외교관이 되지 못하고 나서도 임신은 여전히 두려운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대외활동이나 연구, 토론회 등 다양한 커리어 패스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사회적 성공을 열망했기 때문에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임신을 하면 어쩔 수 없이 기동력이 떨어질 것이고, 출산을 하면 내 건강을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쉬어야 할 터였다. 내가 대학생일 때 대한민국은 육아휴직도, 출산휴가도 그리 쉽게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임신은 더욱 사회적 성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임신과 출산을 하겠다는 여자를 안 뽑는 기업이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었다. 사회적으로 성공 못하느니 아기를 안 낳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기는 너무 늦으면 못 낳기 때문에 내 인생에 꼭 한 번은 낳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충돌을 하였다. 그 고민을 얼마나 했는지, 나는 어떤 묘책을 떠올렸다. 임신 출산을 한 번을 하되 생명을 둘을 낳으면 되는 것 아닌가? (다분히 양벼락스러운 사고방식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뭘 알지도 못하면서 되게 당연하단 듯, 무조건 그렇게 될 거라는 듯 뻔뻔하게 말했다. "나는 쌍둥이 임신해서, 아들 하나, 딸 하나 낳을거야!"


유재석과 이적이 무한도전에서 만들어낸 노래 '말하는대로'를 정말 좋아했다. 그 노래가 나온 것은 내가 대학을 막 졸업했을 때였다. 그 노래를 그렇게 좋아해서, 무언가가 이루어졌으면 할 때 그 노래를 틀어놓고 "말하는대로오오오오오 말하는대로오오 허우허우어어~~" 하고 불러댔는데. 인생이란 보이지 않는 손은 15년 전부터 내가 틈만 나면 말했던 그 말 그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나를 여기까지 데려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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